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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소리 Oct 21. 2023

아내와 사는 재미

  J는 요즘 아내의 입맛과 기력을 회복시켜 주기 위해 매일 퇴근 후에 아내와 함께 맛집 투어를 다니는 중이다. 지독한 감기를 앓고 난 아내는 어느 날 J에게 몸보신을 좀 해야겠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돈은 좀 들지만 저녁 준비를 따로 안 해도 되니까 편할 것 같기도 했다. 장어구이부터 시작하여 삼계탕, 전복죽, 민물장어... 아내 덕분에 매일 저녁 몸에 좋다는 음식들을 찾아서 먹으러 다니다 보니 무슨 이벤트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덕분에 몸을 챙기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J는 요즘 아내랑 같이 사는 게 재미있다. 아내는 재밌게 사는 방법을 아는 여자다. 그렇다고 아내가 웃기거나 재밌는 유머를 할 줄 아는 건 절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유머감각은 꽝인 여자다. 아내랑 같이 사는 게 처음에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조마조마하고 불안했다. 아내는 같은 일을 할 때도 틈만 나면 다른 방식을 시도해서 J를 긴장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런 아내랑 살다가 익숙해진 걸까? 예전에는 그런 아내를 비난하면서 핀잔을 주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아내를 따라 하는 게 재미있는 놀이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를 일반학교가 아닌 대안학교에 보내기, 아내와 옆집에 이웃으로 살아보기, 낯선 땅 베트남에 가서 2년간 여행하듯 살아보기와 같이 J 혼자서는 시도해 볼 엄두를 낼 수 없는 일들이 아내와 함께 하면 어렵지가 않았다.     


  항상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에서 안정을 느끼고, 변화를 싫어하는 J와는 다르게 같은 방식을 반복하지 않고 자꾸만 변화를 시도하는 아내 덕분에 일탈의 재미를 알아버렸다. 이제는 아내가 뭔가 새로운 일을 벌이려고 무심코 말을 꺼내면, J는 첫마디에 반대부터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 일을 어떻게 실행하면 좋을지를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J는 자신이 아내 옆에서 매니저처럼 관리하지 않으면 지금쯤 하늘에 집을 짓고 붕붕 날아다니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이렇게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J의 신경을 잡아당기는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 갱년기를 지나면서 아내의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 몇 년 전부터 퇴직하고 북카페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 아내의 성격으로 보아 언젠가는 큰 바람이 한번 몰아칠 것을 예감하면서 J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J에게 북카페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기에 이번에는 어떻게든 아내를 말릴 방법을 찾고 싶다.       


  어쨌든 지금, J는 아내를 따라서 제주에 내려와 살고 있다. 자신이 계획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뭔지 모르게 무계획적이고 충동성 강한 아내에게 자석처럼 끌려가고 있는 듯한 이 느낌이 J는 낯설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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