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 외국어를 전공하게 된 이유 - 범인은 EBS
어렸을 때 동네 아저씨 한분이 내가 영어 잘한다고 '양글 박사'라고 별명을 지어주셨다. 나중에 박사를 따게 되면 아저씨한테 가서 '저 정말 양글 박사 됐어요' 해야지. 암튼 그건 따고 나서 일이고, 어렸을 때부터 외국어를 좋아했다. 왜 그런지 진짜 모르겠다. 우리 집은 뒤에는 동산이, 앞에는 저수지가 있고 읍내까지 나가는 버스도 하루에 딱 2대 다니는 진짜 시골이다. 집에서 할 게 없어서 ebs를 자주 봤는데 거기서 영어 가르쳐주는 방송을 보면서 영어를 배웠다. 중학생 때는 독일 유학을 잠깐 고려하던 외삼촌이 내게 독일문학책을 선물해주셔서 그거에 꽂혀서 혼자 독일어 책이랑 테이프를 들으면서 독일어를 공부했다. 수학 시간에 매일 독일어 문장 혼자 외워서 선생님이 너 무슨 주문 외우냐고 혼내셨다. 이렇게 학원도 마땅히 없는데 라디오로 인터넷으로 어렸을 때부터 혼자 외국어를 배우려고 많이 까불었다.
고3 때 수능 치고 배치표에서 '포르투갈어과' 적힌 거 보고 '우와 진짜 이런 과도 있구나. 신기하다.'라고 친구한테 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1년 뒤에 제가 그 과에 갑니다. 재수하면서 라디오를 많이 들었는데 그때 EBS 라디오에서 (이만하면 EBS에서 나 베스트 청취자 상 줘야 하는 것 아니니? 나 영어, 일본어, 중국어도 다 EBS 라디오로 공부했는데) 루시드폴이 진행하는 <세계 음악기행>에서 거기서 브라질 음악을 많이 들려줬다. 참 가사가 듣기에 예쁘다는 생각을 하다가 전공마저 그걸로 선택해버렸다. 그때 나는 중2병이 아직 덜 나아서 수시와 정시 모두 인문학부나 철학과나 국문학과로 지원을 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제발 그딴 데 가지 말고 포르투갈어과 가라고 했다.
대학교 1학년, 졸업생 선배와 만나는 자리에서 열 살 정도 많은 선배가 졸업하면 뭐하고 싶냐고 물어보셨다. "책 읽고 글 쓰면서 살고 싶어요" 했더니, 꽤 현실적이고 시니컬하시던 선배는 "그렇게 살려면 교수해야 되는데, 나 때 교수가 10년 지나서 너 때도 교수야. 자리가 언제 나겠냐?" 하셨다. 아, 그는 참선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