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릴라 Nov 05. 2021

아빠만 좋아하는 아이

그걸 지켜보는 나

아들은 아빠바라기다. 아이의 호불호를 알아차릴 수 있을 6개월쯤부터 그랬고, 23개월인 지금도 여전하다. 남편이 있으면 있는 대로 ‘아빠’를 찾고, 남편이 없으면 없는 대로 모든 물건을 보며 ‘아빠’라고 한다. 요즘 누구의 소유라든지 누가 해줬다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남편 물건을 보고 ‘아빠’, 남편과 같이 했던 장난감을 보고 ‘아빠’, 남편과 관련이 없고 나랑만 같이 놀았던 담요를 보고도 ‘아빠’를 외친다.


외출을 하면 주로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데 일이 생겨 내가 안고 있으려고 하면 손을 뿌리치고 울며 아빠를 찾는다. 어린이집에서 하원 할 때 ‘엄마 보러 가자.’고 하면 일어나지 않는데 ‘아빠 보러 가자.’고 하면 벌떡 일어난다며 선생님께서 매일 친절하게 전해주신다. ‘엄마’는 잘 때, 아플 때에만 찾아서 매달려 있다가 괜찮아지면 다시 ‘아빠’에게 간다.(토를 할 땐 나를 찾아내서 꼭 내 옷 위에 한다.)



나는 임신했을 때부터 시작해서 3년째 육아휴직 중이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계속 아이와 붙어 있다. 아이를 때리거나 화를 자주 내지 않는다. 남편보다는 통제를 더 하는 편이지만 엄하게 훈육하는 성향도 아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스킨십을 많이 하고 책을 읽어주고 몸놀이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아이가 남편을 더 좋아하고 찾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건 나인데 왜 남편을 더 좋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허리 통증 때문에 아이를 안지 못할 때였는데 나와 달리 남편이 아이를 많이 안아줘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픈 허리를 참아가며 아이를 안았다. 다음에는 남편이 아이의 요구를 모두 다 들어줘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한동안 아이가 달라는 대로 간식을 다 주고, 해달라는 대로 다 들어주기도 했다.


가설은 모두 틀렸고 아이는 여전히 또는 갈수록 더 남편만 찾는다. 몸과 마음의 상태가 좋을 때는 괜찮다. 아쉽지만 아이 마음이 그렇다는 걸 뭘 어쩌겠는가. 그런데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몸과 마음이 좋지 않을 때 한번씩 서러움이 북받친다.



주말이었다. 아이가 2층으로 가겠다고 계단을 올랐다. 계단은 위험해서 꼭 어른이 따라가는데 내가 계단을 따라가려 하니 아이가 나를 밀어내며 ‘아빠’를 찾았다. 남편이 다른 일을 하는 중이어서 내가 그냥 올라가려 했는데 아이는 계속해서 나를 밀어냈고 ‘아빠’를 찾았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 날은 서럽고 억울하고 화나고 슬펐다.


방에 들어가 한참 울었다. 아이에게 언젠가는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고(당시에는 진심이었다), 2년여간 내가 뭘 잘못했는지를 돌아봤고, 왜 반성 같은 걸 하고 있어야 하는지 분노했고, 이 모든 것은 아이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남편 탓이라고 생각했고, 차라리 남편이 집에 없으면 아이랑 둘이서 더 재밌게 놀 수 있을 것 같았고, 남편이 미웠고, 아이가 미웠다.


아이가 무조건 엄마를 제일 좋아하라는 법도, 오래 같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라는 법도 없다. 아이 고유의 선호가 있을 테고, 더 잘 맞는 사람이 있을 거고, 자신을 더 섬세하게 돌보는 사람이 더 좋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내 아이의 선호에서 내가 1위가 아닐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아이를 낳으면 그 작은 생명체에게 전적이고 무한한 첫 번째 사랑을 오롯이 받을 거라 생각했다.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이니까. 더군다나 나는 세상이 찬양해 마지않는 엄마이고, 아이랑 단둘이 오랜 시간을 보냈고, 나의 최선을 주었으니까. 아이가 남편과 나를 얼마나 어떻게 차별해서 사랑하는지를 신경 쓰고, 속상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남편과 내 행동을 비교하는데 이렇게 시간을 많이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건 여동생이다. 조카 역시 하루 종일 ‘아빠’만 찾아서 동생이 여러 번 울었고, 자주 하소연한다. 엄마보다 아빠를 좋아해서 하루 종일 아빠만 부르고 다니는 일이 그리 보편적이지는 않은데 서로를 보며 ‘너보다는 내가 낫다’고 위로받는다. 속상할 때는 동생에게 연락해서 푸념하고 자조하다 보면 마음이 풀린다. 우리 자매가 제일 많이 주고받는 말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이다.


가끔은 우리가 따뜻한 보살핌을 못 받고 커서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들 그렇게 엄마만 따라다닌다는데 왜 우리 자매의 아이들만 이런가 말이다. 몸이 편해서 좋을 때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아이의 사랑을 듬뿍 받고 싶다. 하루 종일 ‘아빠’라는 말을 환청처럼 듣고, 퇴근하면 열 일 제치고 함박웃음으로 뛰어나오는 아이를 보고, 2층에 같이 올라갈 동반자로 간택되는 그 아버님, 남편이 참 부럽다.


아이를 향한 짝사랑, 남편과 아이 사이에 대한 질투는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노력하지 않아도 자식에게 집착하지 않고 독립적인 존재로 살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괜찮다. 나에겐 나를 제일 좋아하는 고양이 복이 있고, 엄마보다 이모를 더 좋아하는 조카도 있으니까.(내 아이는 나보다 이모를 더 좋아하지 않는다. 역시 동생보다는 내가 나은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