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행복한 존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이용 그림책을 아이와 같이 읽다가, 그 속에 담긴 풍자와 세계관에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다. ‘미어캣의 스카프 (임경섭 글/그림, 고래이야기 출판)’ 역시 그런 그림책이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 중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형성되는 관계’와 ‘내가 남과 다름을 알고, 이 다름에서 자존감을 갖는 것’이 있다. 이 두 가지는 상반된 것 같지만, ‘사회’ 혹은 ‘관계’ 속에서 얻게 된다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얻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나 스스로 내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풍요로운 미어캣 마을에, 먼 여행에서 돌아온 미어캣이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나타난다. 이 미어캣이 ‘빨간 스카프는 사냥을 잘하는 미어캣의 상징’이고, ‘나에게 먹이를 가져오면 빨간 스카프를 주겠다’고 하자, 그동안 스카프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미어캣들에게, ‘빨간 스카프는 내가 다른 미어캣과 다르다는 혹은 우월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상징’으로써 꼭 필요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 빨간 스카프를 모든 미어캣이 가지게 되었을 때마다, 새로운 색깔의 스카프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이제 미어캣들은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색깔의 스카프를 얻기 위해 (혹은 사기 위해)’ 많은 사냥을 하게 된다. 사간이 흐를수록, 미어캣들의 집에는 다양한 색깔의 스카프가 쌓여가지만, 미어캣 마을 주위는 사냥할 수 있는 먹이가 없어져, 황폐해진다. 그리고, 황폐해진 마을을 떠나는 미어캣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제, 먹이가 없는 황폐한 마을이 된 미어캣 마을에는 형형색색의 스카프가 나뒹굴고, 남은 미어캣들은 스카프를 한 올 한 올 풀어서 실타래를 만들며 노래를 한다.
누군가가 미어캣에게 ‘너를 다른 사람과 다르게 해주는 것은 스카프 색깔이 아니라 너 자신이야’ 라던가, ‘네가 다른 미어캣과 어울렸을 때, 너의 장점을 친구들이 알아보게 될 거야. 그게 진짜 너의 장점이야’라던가, 아니면 ‘스카프는 추운 지방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고, 아프리카는 더운 지방이어서, 필요하지 않아’, 혹은 ‘너를 표현하는 것은 너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이어야지, 네 몸에 걸친 물건이 아니야. 너와 같은 물건을 다른 이가 걸치는 순간, 넌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을 원하게 될 것이고, 그건 너의 참모습을 친구에게 보여주는 방법이 될 수 없어’와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면…… 미어캣 마을은 여전히 풍요로웠을 것이다. 물론 형형색색의 스카프는 없는 마을이었겠지만……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물건들이,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부족한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차별과 분배의 잘못으로 어느 한쪽에서는 기아에 허덕이고, 어느 한쪽에서는 쌓인 쓰레기로 인한 공해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래도, 생산하는 물질의 총량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면, 부족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배출되는 쓰레기 처리를 고민하는 나라들의 기업들이, 더욱더 새로운 필요를 만들어낸다. 그 필요의 대부분은 ‘나를 남과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서 팔려나간다. 이 ‘필요의 창조’가 성공하면, 그 나라에서는 더 많은 쓰레기가 배출된다. 그리고 이 쓰레기들은 ‘원조’ 혹은 ‘기부’라는 이름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로 이동되어서 쌓여가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형형색색의 스카프가 아직도 가치 있다고 믿고 있는 거대한 미어캣 마을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사냥할 먹이가 있는…… 하지만, 누군가가 빨리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질 수도 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