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솔 Jul 24. 2022

약속의 유효기간은?

_ 루이스 새커의 ‘구덩이’가 주는 답은?

내가 하루에 하는 약속의 개수는 몇 개나 될까? 아마 ‘약속’의 정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기한과 범위, 대상을 모두 정확히 정하고 하는 약속만이 아니라, 특정한 기한이나 범위, 대상 등을 정하지 않고 하는 말도 ‘약속’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면, 매일매일 수 십 개의 약속을 하며 살고 있다. 예를 들어, ‘언제 술 한잔 같이 하자’, ‘내가 조만간 연락할게’ 등의 말도 약속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렇듯 지나가며 한밀도, 상대방에게는 분명한 약속일 수 있다. 특히나 상대방이 그 말을 정확히 기억하고, 기다리고 있다면, 이건 분명히 중요한 약속이다. 내가 내가 한 말 자체를 잊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기억하고 있다면, 이건 언젠가 지켜야 할 약속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언제까지 라는 기한을 지키지 않은 약속, 나는 잊어버린 약속들에도 유효기간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유효기간은 얼마일까? 물론 법률적 유효기간(혹은 공소시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인간관계에서의 유효기간 말이다.


루이스 새커의 ‘구덩이’는 그 답을 말해준다. 놀랍게도 그 답은 4대, 110년 이상이다.


루이스 새커의 ‘구덩이’는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책이다. (물론 내 어린 시절에는 없었던 책이다.) 어른인 내가 읽어도 흥미진진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짜여있는 재미있는 한 편의 소설이다. (미국에서 영화로 만든 것도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개봉하지 않은 듯하다,)


우연한 사고(?)로 자선경매에 출품될 신발을 훔친 것으로 오해를 받아, 재판을 받게 된 소년 스탠리는 소년원 대신 초록 호수 캠프에서 노역(무엇을 찾는 지도 모르는 채, 바닥이 마른 호수 바닥에서 구덩이를 파는 일)을 하게 된다. 스탠리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가문에 내려오는 불운 때문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스탠리 가문의 불운에는 스탠리의 고조할아버지가 집시 여인과 지키지 않은 110년 전 약속과 초록 호수마을의 슬픈 사랑이야기와 그 자손들이 함께 얽혀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시작인 스탠리 고조할아버지와 집시 여인과의 약속은, 스탠리의 고조할아버지가 지키기 싫어, 지키지 않은 약속이 아니라, 사랑을 이루지 못한 슬픔에 빠져 기억하지 못한 약속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저주(?)가 대대로 내려서, 스탠리에게까지 이어진다. 초록 호수 캠프에서 아이들에게 구덩이를 파게 하는 감독관은 110년 전 초록 호수마을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의 가해자(?)의 후손들이며, 스탠리 증조할아버지와의 얽힌 운명에 의해 초록 호수에서 보물(?)을 찾기 위해 아이들에게 소년원 대신 노역을 시킨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특이한 점은 ‘절대적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위 블럭버스터라고 불리는 영화들을 보면, ‘절대 악인’이 존재한다. 관객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 악인에게도 서사를 부여하지만, 주인공에 의해 제거되어야 할 악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구덩이’에는 이러한 악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악인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지켜지지 않은 약속의 업보에 갇혀있는 것일 뿐, 제거되거나 사라져야 할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110년 전 약속이 지켜지도록 하기 위한 조력자로서의 역할 중, 악인의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책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궁금한 사람은 직접 읽을 수 있도록.


요즘, 뉴스를 보면, 국내 뉴스, 해외 뉴스 모두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혼란을 우리만의 혼란이 아니라, 전 세계적 혼란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이 혼란의 원인이 되어줄 악인을 찾아 헤매고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이 혼란을 덮어줄 다른 혼란을 찾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혼란의 원인을 ‘약속’에서 찾아본다면, 꼬인 실타래를 풀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빨리 변하는 세상에 산다는 핑계로, 너무나 많은 약속을 하면서, 동시에 너무나 많은 약속을 잊고 있으며, 너무나 많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많은, 나 혼자 잊어버린 약속들, 지키지 않은 약속들의 유효기간을 내 마음대로 짧게 정해버린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어? 언제 적 이야기를 아직도 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자꾸 과거를 이야기하면 안 돼! 난 다 잊어버렸는 걸. 중요한 일을 생각해봐. 그럼 그런 건 너도 나처럼 잊게 될 거야!’라고…… 어떤 이는 ‘과거를 해결해야 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과거에 지키지 않은 약속’을 지키려기보다는 ‘남이 한 과거를 통해, 현재의 혼란을 덮으려’ 할 뿐, ‘내가 한 약속 중, 지키지 않은 약속’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내가 하루하루 하는 모든 약속들을 그동안 다 지키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지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떤 저주에 빠진 듯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생각해볼 거다. ‘내가 지키지 않은 약속이 오늘의 나를 저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지금 내 주위에서 나에게 고난을 주고 있는 이들은, 내가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악역을 하고 있는 조역자들은 아닐런지. 그렇다면, 이 약속을 기억해내서, 지킨다면, 지금 나를 에워싸고 있는 저주를 풀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문제는 나는 얼마나 오래전에 한 약속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