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천천히 해도 괜찮아. 조금 더 천천히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지 반년이 훨씬 넘었다. 5학년인 첫째 딸과 같이 배우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내의 권유였다. 당시 여러 가지 상황(특히 회사 상황)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던 나에게, ‘무언가 배워보면 어때?’라고 말해줬다. 사실 난 악기를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악기를 연주하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그래서 결혼할 때에도 굳이 디지털 피아노를 샀고, 최근에는 우쿨렐레도 산 상황이었지만, 피아노도 우쿨렐레도 집에서 연주해본 적은 없었다. 악기를 사 두면, 레슨은 받지 않더라도, 유튜브 등을 보며, 혼자 연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때까지, 악기라고는 초등학교 1학년 때쯤 피아노를 잠깐 배운 것이 전부인 첫째에게 ‘아빠랑 같이 기타 배울래? TV에서 기타 치는 언니들 멋지던데. 기타는 배우면, 언제나 가지고 다니면서 칠 수 있어’라도 말을 건네니, 바로 배우겠다고 했다. 그날로 아내가 동네 기타 학원을 알아보았고, 그 이후 나와 첫째가 같이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고 있다.
처음에는 내가 약간 나았다. 대학시절, 과방에 굴러다니던 기타를 가지고 딩딩 거린 덕분에 기본 코드 몇 개는 알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딸이 나보다 훨씬 잘 친다. 코드를 익히는 것도, 스트로크를 익히는 것도 나보다 훨씬 빠르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나도 나보다 잘 치는 딸을 보며, 뿌듯하기도 하고, 의욕도 생기고 그렇다.
새로운 코드가 포함된, 새 곡을 배울 때, 나에게 선생님이 꼭 해주는 말은 ‘천천히 하세요’라는 말이다. 코드 변환이 서툴게 되면, 스트로크도 무너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박자는 항상 빨라진다. 서툰 일, 잘 못하는 일을 할 때는 ‘천천히’하게 될 것 같은데, 내 기타 연주는 절대 그렇지 않다. 서툴수록, 잘 못할수록, 스트로크 박자는 점점 더 빨라진다. ‘내가 잘못된 것인가’ 싶어서, 선생님에게 나만 이러느냐고 물어보면, ‘누구나 그래요. 서툴수록 박자가 빨라져요. 그래서 천천히 하는 연습을 해야 해요’라고 이야기해주신다.
서툴러서 급하게 하는 것은, 내 경우에는 기타 연주만은 아니다. 첫째 딸과 배드민턴도 레슨을 받고 있는데, 배드민턴 선생님도 항상 하는 말씀이 ‘너무 빨라요. 천천히 하세요’이다. 새로운 자세를 배울 때마다 듣는 말이다. ‘빨리 할 필요 없어요.’
회사에서도 가끔 영어로 발표를 해야 할 때가 있다. 난 정말 단 한 번도 ‘해외 연수’를 받아본 적이 없고, 영어는 책으로 배웠기에, 영어 회화는 말 그대로 ‘생존 영어’이다. 나 자신도 영어가 서툼을 알기에, 영어 발표를 할 때는, 예상 질문을 포함하여, 주어진 시간보다 많은 양을 준비한다. 하지만, 항상 내 발표는 주어진 시간보다 짧게 끝난다. 무의식 중에 빨리 말한 것이 원인이다. 영어가 서툴러서, 천천히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빨리 쏟아내듯 말을 해버린 것이다.
생각해보면, ‘천천히 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자라면서 들어본 기억은 거의 없다. 항상 ‘빨리 좀 해’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내가 하기도 했다. 특히 학교 공부는 ‘빨리 진도를 따라잡아’야 했고, 회사 일은 야근을 하지 않기 위해서, ‘모르는 것은 최대한 빨리 배워서 업무를 끝나야’했다. 식사도 ‘빨리 먹고, 좀 쉬어야’했고. 무언가를 하는 과정을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기보다는, ‘남들보다 빨리 결과를 내는 것’이 미덕이고, 내가 쉴 수 있는 내 개인 시간을 확보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빨리 끝내서’ 확보한 내 시간에 무언가를 하려고 하니, 난 ‘천천히 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기타 연주도, 배드민턴도 결과를 빨리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닌, 배우는 과정을 즐기려고 하는 것이니, 천천히 즐겨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 물론, 연주나 운동을 직업으로 하시는 분들에게는 상황이 나와는 반대일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살아오면서 ‘빨리빨리’ 해왔던 일들을 ‘천천히 음미하며’했다면, 난 실패했을까? 분명히 시간은 좀 더 걸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도 실패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성공과 실패의 정의를 조금만 다르게 생각한다면, 지금의 내 인생보다, 더 성공(?)한 삶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지난 일을 가정하는 것도, 그래서 현재의 모습을 아쉬워하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일 지도 모른다. 아마도 10년 후에, 난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니 아마 십중팔구는 1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만이라도 나에게 이야기해주련다. ‘조금 천천히 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