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서열이 다양한 사회가 행복한 사회가 아닐까?
난 동물 다큐를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동물의 왕국이나 동물과 관계된 TV 프로그램을 빼먹지 않고 챙겨보았었다.
챙겨보지는 않지만,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심심치 않게 반려동물을 길들이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문제(?)가 있는 반려동물이 나오고, 전문가(조련사)가 카메라를 통해 관찰한 후,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아준다. 그런데, 많은 경우, 문제는 반려동물이 자신의 서열을 잘못 인식해서 발생하고, 해결책은 서열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다.
동물 다큐에서 보면, 집단의 서열 1위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대신, 막중한 책임도 지고 있다. 천적으로부터 무리를 보호해야 하고, 무리의 이동도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서열 1위의 자리에 도전하는 젊은것들도 상대해야 한다. 동물도 분명히 행복을 느낄 텐데, 서열이 높을수록, 더 행복할까? 다행히도 딱히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일단 서열이 정해지면, 변동이 생기기 전까지는 각각 자신의 위치 (순위)에서 삶을 영위하며,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 같다.
사람은 어떨까? 사람도 분명히 동물이다. 그래서일까? 내 눈에는 서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자주 보인다. 사람의 서열 싸움은 동물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한 번에 결판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은 서열이 높아지면, 더 행복해진다고 믿는 것 같다. 아니, 정확하게는 불행한 이유가 서열이 낮기 때문이라고 믿는 것 같다.
예전에,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그 나라의 초등학교과 한국의 초등학교 교육을 이렇게 비교했었다. ‘학년이 끝나면, 상을 주는 데, 모든 학생이 상을 받는 것 같다. 별의별 명분을 만들어서, 모든 학생이 상을 타고, 상을 탄 모든 학생들은 그 상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런데 한국은 성적 이외의 것에 대해서 가치를 두지 않는 것 같다. 간혹 공부 외의 분야에서 특출 난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그 재능을 어려서부터 인정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극소수의 아이만 해당되는 것 같다. 성적만이 서열인 학교가 한국인 것 같다.‘라고. 지금의 학교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이제 초등학교는 시험을 보지는 않으니, 성적에 따른 서열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학교는 선생님과 어른들이 매겨주는 성적이라는 서열과, 아이들 끼리 매겨주는 인기라는 서열, 그리고 힘이라는 서열만이 존재하는 곳인 것 같다.
사람이 서열의 순위와 행복을 연결시키는 것을 바꿀 수 없다면, 여러 다양한 분야를 만들고 각 분야에서 다양한 서열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남과 비교한다는 말자체가 서열에서 순위를 만든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행위는 삶에서 끊이지 않고 지속된다. 그렇다면, 서열과 행복이 관계없음을 알게 하기 위해, 자존감을 키우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말은 현실에는 적용되지 않는 구호일 수 있다. 그보다는 측정기준(순위를 매기는 기준)이 다른, 아주 이주 다양한 카테고리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그래서 ‘각자가 다른 모든 이들과 비교할 필요조차 없이 절대적 우위에 있는 것’을 찾아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그런 것이 없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에게는 더 잔인한 것 아니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조금만 상상력을 가동하면, 모든 사람 개개인에게 당신이 최고인 분야를 찾아줄 수 있다. 놀고 나서,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도,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을 만큼만 덜어서, 깨끗이 먹는 것도, 어디에 가서도 불필요한 불을 끄는 습관도.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이며, 남과 비교할 필요 없이 1등이 될 수 있는 분야이다. 이런 개개인 맞춤형 카테고리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일 수도 있다.
매해 연말, 연초가 되면, 한국의 행복지수가 낮다는 기사가 난다. 그리고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의 예를 들으며,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해결책은 대부분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도록 자존감을 높일 것’, ‘경쟁우선주의인 문화를 바꿀 것’, ‘다양성을 인정할 것’ 등이다. 그러나 이 기사 외의, 대부분의 기사에서는 다양성은 점점 더 무시되고, 모두를 한 방향만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정치, 경제, 교육의 이야기들뿐이다.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자존감을 높이면 된다는 허공 속의 외침보다는,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그리고 이것만이 옳다고 외치며 한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방향은 무수히 많으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간다고, 사회가 잘못되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것이, 훨씬 실천가능한 해결 방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