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세상과 줄다리기하기
사람들은 주체적 혹은 자기 주도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학생들은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직장인은 주체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동기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취업준비생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사회생활을 설계하여야 하고, 퇴직자는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그동안 살아온 세상에서, ‘이래야 한다’는 구호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작년 수능에서 자녀를 대학에 보낸 지인들이 주위에 있다 다행히 아이들이 ‘in-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서, 이번 겨울은 행복하게 즐기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전공을 선택해서 갔어요?’라고 묻는 것은 우문이다. 어쨌거나, 목표를 정하고, 고등학교 시절, 그 목표한 곳의 전형에 맞추어 스펙도 쌓고, 준비하여 합격한 것만으로 충분히 축하받을만하다. 예체능에 특출난 재능을 보인 것이 아니었다면, 대학이 중요하지, 전공이 무엇인지는 앞으로의 삶에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부모세대도 학부전공이 현재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의대나 치대 같은 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나 역시 대학교 학부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친구들을 보아도, 학부전공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는 직업을 가진 녀석들보다 간접적이거나, 아예 생뚱맞은 직업을 가진 녀석들이 더 많아 보인다. 내 아내도 마찬가지이다.
언론을 보면, 유명한 교육 전문 교수들이 나와서, 어린 시절에 재능과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고, 그와 관련된 공부를 하게 하고, 그와 관련된 직업을 가질 때, 행복하다고 한다. 물론 일의 성과도, 일의 효율도 훨씬 좋고. 그러나, 나조차도 대학응시를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교였지, 내 재능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아니었다. 아마 대부분의 내 또래 친구들은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학원의 선행학습을 하면서, 정말 특출 난 소수를 제외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 내 재능을 찾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현재 아이들이 '학습'을 하는 이유는 뭘까? 학교를 아니고, 학원을 다니면서, 인터넷강의를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 난 내 딸들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네가 나중에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았을 때, 그 일을 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예를 들어, 네가 요리하는 것을 정말 좋아해서, 요리를 배우러 유학을 가게 된다고 하면, 그 나라의 언어를 알고 유학을 가야지, 그 나라 사람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요리를 배울 수 있을 거야. 요리만 배우면 되지, 대화가 왜 필요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요리 역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발전되어 온 것임으로, 그들의 삶을 이해해야, 그 나라의 요리를 배울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언어는 매우 중요해. 그런데 지금은 어느 나라의 요리를 좋아할지 모르니, 일단 어느 나라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영어를 배워두면 좋은 거야. 그리고, 사실 지금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지를 못했으니,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요리만이 아니라, 무궁무진해. 그러니까,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때까지는 어떤 일을 시작하더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공부해 두는 것이 좋아. 그것이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 영어, 국어, 사회, 역사 등등이야.'라고.... 물론 내 딸이 이 말을 얼마나 공감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난 사실 직업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내가 잘하는 일'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업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하고, 나에게 돈을 지불하는 고용주는 내가 '고용주가 원하는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어야, 나를 계속 고용하고, 급여를 준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내가 잘하는 일이라면, 정말 정말 행복한 인생이겠지만, 애석하게도 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잘하는 일 사이에 거리가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지만, 난 글을 아주 잘 쓰는 편이 아니고, 그래서, 글을 쓰는 것으로 돈을 벌지는 못한다. 그래서, 난 내가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다.
요즘 챗GPT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영화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가 현실이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챗GPT와 같은 AI기술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라고 한다. 사실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살면서, 생계걱정을 하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아마 단순히 생산성의 향상을 논한다면, 생산성의 향상은 AI가 달성해 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생산성만 향상된다고, 내가 원하는 세상이 될 것 같기는 않다. 그럼 지금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난, 인문학, 윤리, 가치 등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기술 시대에 웬 인문학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해치지 않을지를 판단해 주는 것은 인문학일 것 같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기술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AI가 할 수 없는, 아니 AI가 하게 해서는 안 되는, 인간이 지켜야 할 영역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나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 가치관을 주장하기보다는 상대방의 가치관이 담긴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또 하나, 나이가 들면서 나 자신이 변하고 있는 것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주된 이유는 '현재의 내 자리를 지키는 데에 유리하기 위해서' 혹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주장했을 때,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희생(?)을 할 자신이 없어서'이다. 그래도, 나 스스로 내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관의 마지노선은 만들어두고, 지키려고 한다. 이 마지노선도 매번 뒤로 조금씩 밀리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세상'의 최소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선은 지켜보려고 한다. 난 세상과 항상 줄다리기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힘들기도 하지만, 이 줄다리기가 내가 AI가 아닌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가치를 지켜준다. 그리고 이 줄을 계속 당기는 한, 아직은 난 내 인생의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