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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솔 Feb 18. 2023

잊혀진다는 것, 잊는다는 것

_ 사람은 10의 행복한 기억을 기억하기위해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녀석의 장례가 끝나고, 그 녀석을 그리워하는 이들끼리 카톡으로 ‘오래오래 잊지 말자’는 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정말 그 녀석을 잊지 않는다면, 그 녀석의 남은 가족들은 매우 힘들 것 같다. 물론 어떤 기념일이나 명절 등등에 남은 가족들이나 벗들은 불현듯 그 녀석이 생각나고 그리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현듯이 어야지, 항상 그 녀석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 것이다.


잊는다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임에 분명하다. 감사함도, 원한도, 사랑도, 미움도 모두 잊을 수 있기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만약 잊을 수 없다면, 우리네 세상은 아마도 좀 더 각박할 것이고, 사람들끼리 관계를 맺는 것은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 잊음의 능력이 사람마다 달라서, 문제가 생긴다. 아직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잊혀지지 않았는데, 상대방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이 행동할 때, 나는 상처를 받는다. 상대방은 기억하지 못하는 척하는 것일 수도,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난 상처를 받는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다. 난 기억하지 못하는 척, 아니면 정말 기억하지 못해서,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말하는 나에게 누군가는 상처받는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내 경험에는 상처를 준 사람이 더 잘 잊는 것 같다. 상처를 준 이는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하고,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인지하였더라도, 그것이 별 것 아니었을 것이라고, 내가 잊었듯이 상대방도 잊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상대방도 나처럼 잊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은 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간이 흐르면, 아픈 기억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일까? 난 좋은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좋은 기억으로 여전히 남아있고, 아픈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안타깝게도, 적어도 나는 좋은 기억보다는 아픈 기억이 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 스스로 좋은 기억을 되새기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사실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마트폰 사진앱의 기능은 지난 사진과 동영상을 추천해 주는 기능이다. 내 스마트폰 사진첩에는 좋았던 순간들, 행복했던 순간들의 기억들이 남아있다. 어쩌면 사람은 100이라는 인생의 기억 중에서, 10이 행복한 기억이라면, 그 기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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