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라디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솔 Jul 04. 2023

18. 육아, 보육, 교육, 그리고 대물림

- 저출산은 아주 복잡할 수도, 아주 단순할 수도 있는 문제인 듯

스마트폰에서 포털사이트에 뜬 기사들을 보다가, 우연히, 소아청소년과 오픈런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간단히 요약하면, 소아과를 전공하고자 하는 의사들이 많이 부족해서, 응급실 운영조차도 힘든 병원이 많으며, 부모는 아이가 아프면, 응급실 여는 시간에 맞추어, 오픈런처럼 줄을 서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연관기사로는 소아과 파업(?) 선언, 필수의료인력부족, 소아청소년과 학회장 인터뷰 등이 있었고, 좀 더 타고 들어가다 보면, 저출산으로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소아과 의사가 부족한 것과 저출산으로 인해, 아이들이 줄고 있는 것은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일 수도 있으나, 아닐 수도 있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 고령화 등의 문제를 안고 있었던 다른 나라들이 중에는 소아과의사 부족사태에 허덕이고 있지 않은 나라들도 있는 것을 보면, 저출산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어쨌거나 저출산은 매우 심각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저출산으로 검색을 해보면, 연관 기사는 거의 모든 사회 이슈와 연관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저출산에 대하여 생각해봤다.


정말 젊은 세대들이 '이기적'이어서, 결혼도 안 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일까? 내 주위를 둘러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내 주위의 젊은 이들은 결혼도 하고 싶어 하고, 아이도 낳고 싶어 하며, 심지어는 아이를 여럿(둘 이상) 낳고 싶어 하는 이들이 꽤 많다. 물론 내 주위의 사람들만으로 한국 전체의 젊은이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내 주위의 젊은 이들은 결혼도 하고 싶어 하고, 아이도 낳고 싶어 하나 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즉, 결혼도, 출산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이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적어도 내 주위에는.


과거 어른들은 '지 먹고살 숟가락은 가지고 태어난다.'라는 말을 했었다. 낳기만 하면, 사는 것은 어떻게든 된다는 뜻일 것이다. 이 말이 언제부터 통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조선시대부터 통용된 말이라면, 이 말속에는 신분제도에 대한 순응, 즉 본인의 계급이 다음 세대에 물리는 것에 대한 순응이 녹아있는 말인 것 같다. 그리고, 만약 이 말이 해방 이후,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부터 통용된 말이라면, 본인의 현재 상황보다는 자식세대의 상황이 더 좋아질 것이며, 본인의 사회적 계급보다 자식의 사회적 계급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이 담긴 말일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내 부모님이나 내 부모의 부모님들이 이 말을 사용했을 때에는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담긴 말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에 명문대 입학 조건이 세 가지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첫 번째는 할아버지의 재력, 두 번째는 엄마의 정보력, 세 번째는 아빠의 무관심이라고 들었다. 10년 전쯤 들은 이야기인 것 같은데, 지금의 상황도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사교육비를 감당하는 것이 부모의 경제력만으로는 어려운 상황에서, 사교육비를 지원해 줄 할아버지의 재력이 필요한 것이고, 복잡해진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정보력(학원에 대한 정보, 입시에 대한 정보 모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아빠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참견하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것이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좀 씁쓸하기는 하다. 어쨌거나, 이 세 가지 조건에는 '대물림'이라는 의식이 숨어있다. 자녀의 미래가 부모로부터 대물림된다는.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충분한 시간 따위는 없으며, 부모의 사회적 부와 권력이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대물림'된다는 잠재의식이 깔려있는 말이며, 애석하게도 내 주위에는 이 조건을 부정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부모가 출산만이 아니라, 육아, 보육, 교육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특히 경제적 부담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대물림'이라는 말은 대부분의 사람을 움추러들게 만든다. 내 아이의 사회적 지위가 나로부터 대물림된다고 할 때, 자신 있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이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과 행복보다, 끊임없는 미안함이 몰려온다면, 누구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나 역시 지금 가장 고민이 되는 일은 '내가 내 두 아이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때까지 지원해 줄 수 있을까?'이다. 물론 이 고민을 하는 것에 대하여 불행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주는 행복감이 너무 크기에, 이 고민은 행복에 대한 당연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갈수록,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과 비교가 될수록,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저출산대책은 '육아, 보육, 교육의 경제적 부담을 사회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사회적 지위가, 내 경제적 지위가 내 자식세대에게 대물림되지 않으며, 내 자식세대는 경제적 차별 없이 본인이 원하는 교육을 받으며, 자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 아이가 나보다 나은 삶을, 나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기고, 내 자식에 대한 미안함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되어야,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가지기 위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여러 신화적인 인물을 예로 들면서, 현재도 본인만 똑똑하면, 본인만 능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화는 신화일 뿐이다. 매년 전체 수험생 중에, 한 명을 예로 들면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한 명 이외의 모든 수험생을 좌절하게 만드는 일이다. 연봉 몇억을 번다는 유투버를 이야기하며, 지금 취준생들에게 '유투버해, 돈 많이 벌던데.'라고 말하는 것만큼 사람을 좌절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부담이 문제라면, 해당되는 사람만 찍어서 지원하면 되지, 모든 아이에 대한 육아와 교육을 사회가 책임지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찍어서 지원한다면, 그 과정에서 낙인효과가 발생하기 마련이다.('휴거'라는 말은 이미 보편화된 말이다.) 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지원을 받는다면, 지원은 지원대로 하면서, '세금'을 통해서 다시 회수하여, 다시 전체를 지원할 재원을 마련하면 될 일이다. '선정하기 위한 비용, 그리고 선정한 이들에 대한 낙인효과'보다는 '전체를 지원하고, 과도한 지원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본인의 재산에 비례한 세금을 통해 다시 사회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난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육아, 보육, 교육에 대해서는 말이다. (물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도 있을 것이며, 난 이들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은 다를 뿐이지, 누군가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희망이다. 내 사회적 지위가, 경제적 지위가, 정치적 지위가 내 자녀에게 대물림되지 않는다는 희망. 내 자녀가 본인의 삶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줄 것이며,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빠르고, 늦음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이런 희망과 믿음이 있는 사회시스템을 구축해나가야 한다. 물론 사회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며, 지금의 사회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 책임이 있듯이, 앞으로의 사회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도 내 기여는 분명히 있다. 말로는 쉬운데.... 난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17. 잊혀진다는 것, 잊는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