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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솔 Sep 18. 2022

역할에 대하여

_ 모든 사람은 현재 세상을 만드는 데에 기여했다.

집에서 아이들에게 무슨 일을 시킬 때, 우리 부부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 ‘너의 역할을 해야 해’라는 말이다. 초딩 2학년과 초딩 5학년이 과연 ‘역할’이라는 말의 무게를 이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맞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것은 어렴풋이 이해하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의 역할은, 놀면서 어지럽힌 것 치우기, 식사 준비할 때 수저 놓기, 학교 가기, 문제집 풀기, 밥 잘 먹기 등이 있다. 조금씩 부여되는 역할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자기가 할 일, 혹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한 가정의 분위기, 가족 간의 관계, 화목함의 정도 등등에 대한 책임을 찾는다면, 이는 누구 한 명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행한 역할들이 기여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론 가족 안에 한 명의 독재자가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집 안에 독재자가 존재한다면, 그 독재자를 인정한 것은 다른 가족이고, 이렇게 생각하면, 독재자 역시 가족 구성원 모두가 기여한 결과이다.)


‘현재의 세상’에 대하여, 왜 이런 모습의 세상이 되었는지에 대한, 원인 또는 책임을 찾는다면, 현재 이 세상의 모든 구성원들의 역할이 기여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물론 ‘나는 지금의 지도자(?) 혹은 리더를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지지하지 않는 이가, 현재의 지도자라고 해서, 현재 사회의 모습에 대하여 내 책임이 없다고 한다면, 그건 그냥 도피라고 보는 것이 맞을 이다. 내가 지지하지 않는 이가 리더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에, 난 어떤 형태로던, 역할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작게는 가족에서 출발해서, 친척, 친구, 회사, 정치까지 범위를 확대해볼 수 있으며, 아무리 범위를 확대해도 결론은 같다. 내가 속한 사회의 현재 모습에는 분명히 내가 기여한 나의 역할이 있었다.


인터넷의 각종 기사의 댓글을 보면, ‘네 탓에 이렇게 된 것이니,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던가, ‘너도 당해보니 어때?’라는 투의 댓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어떤 댓글을 읽다 보면, 마치 ‘지금의 사회를 만든 것에 나는 책임이 없고, 당신들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 같고, 그래서, 당신들이 만든 세상에 살아보니 당신들은 어때?’라고 놀리는 것 같기도 하다. 반대편의 사람들 역시, 너희들이 그동안 만들려고 각종 역할을 했던 세상은 틀린 거야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정말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과거의 세상도, 지금의 세상도 이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기여한 역할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이었고, 세상이다. 그리고, 나도, 너도, 과거에도, 지금도 그 세상 안에서 우리는 아웅다웅 열심히 살고 있다.


내년의 세상이 지금의 세상과 달라진다면, 5년 후의 세상이 지금의 세상과 달라진다면, 10년 후의 세상이 지금과 달라진다면, 그 원인은 나와 너와 우리가 행한, 지금 이 사회에서의 각자의 역할이 기여한 결과 일 것이다. 즉 과거의 세상에서도, 지금의 세상에서도, 내일의 세상에서도, 우리 모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역할이 세상의 모습에 기여하고 있다. 그 역할이 크건, 작건,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간에 말이다. 물론 역할에 대한 판단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임으로 남의 역할을 내가 판단하기 어렵고, 매 역할을 남이 판단하기도 어렵다.


그냥, 내 오늘의 행동과 결정에는 항상 ‘내 철학’과 ‘내 가치관’이 담겨 있는 것이고, 이는 ‘누군가의 것을 빌린 것’이 아니라, ‘나의 엄청난 고민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종종 남의, 혹은 거대한(?) 조직의 가치관을 따르면, 그것이 잘못된 것일 지라도, 나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주위에서 보곤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조직의 일원으로서 본인의 기여한 역할은 반드시 있었을 것이고, 그 조직이 사회 전체에 미친 영향에는 내 역할이 일정 부분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마도 조직의 가치관을 따랐다고 해서, 면죄부를 받지는 못할 것이다. 그냥 조직과 같이 스스로를 끝없이 합리화하며, 버텨나간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 조직의 가치관이라는 말이 타당한 말인 지는 모르겠다. 요즘 사회의 각종 조직들은 가치관은 없고, 목적만 있는 것 같다. -


정답은 없다. 내 가치관, 그리고 철학에 따른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렵다. 남에게 선택을 맡기고, 본인의 책임을 내던지고, 계속 나를 합리화해줄 사람이나 조직을 찾아서, 의지할 수도 있다. 그어나, 그러기에는 내 인생은, 내 가족의 인생은 매우 매우 소중하다. 자, 그럼 난 그동안 내 역할에 대해서 어떤 선택을 해왔고, 앞으로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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