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솔 Sep 21. 2023

15.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것은 일상이다.

_ 일상에 감사하기

어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올해 놀이공원들이 핼러윈축제는 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 가족에게, 놀이공원에서 하는 핼러윈축제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내의 생일이 10월 31일이어서, 결혼 후, 거의 한해도 거르지 않고, 10월 31일에는 에버랜드에 가서, 핼러윈 축제를 즐겼다. 처음에는 아내와 나였고, 몇 년 후에는 아내와 나, 그리고 첫째 딸이 함께였고, 그리고 둘째 딸까지 같이 하면서, 가족의 행사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두 딸 모두, 10월 31일은 온 가족이 에버랜드에 가서, 핼러윈축제를 즐기는 날로 알고 있다. (그동안은 학교에 체험학습신청서를 내고, 난 회사 휴가를 내고 갔다.) 이제는 핼러윈축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다른 모든 일을 제쳐두고, 반드시 하루를 같이 보내는 날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올해는 핼러윈축제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1년 전 핼러윈에 이태원참사가 있었고, 올해 핼러윈은 축제보다는 1년 전 참사를 당한 이들을 추모하면서 지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물론 찬반양론이 모두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찬반양론 중에 어떤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찬성하는 이도, 반대하는 이도 1년 전 이태원참사에 마음 아파하는 것은 동일한 것 같다. 단지 그 방법적인 측면에서 핼러윈축제를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의견의 다름일 뿐이니까. 아무튼 우리 가족은 올해 핼러윈축제를 하지 않는 것을 그대로 이해했다. 그러나, 10월 31일에 에버랜드는 갈 계획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것은 '핼러윈축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일상이 된 '10월 31일 가족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일상의 소중함을 대부분 잊고 산다. 오히려 소중하게 생각하기보다는, 변함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따분하게 여기고, 새로운 이벤트를 찾는다. 그리고 각종 오락시설들은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줄......'이라는 말로 홍보를 한다. 그러나, 이태원참사 같은 큰 사고가 일어나면, 그 희생자들의 '일상'을 이야기하며, 모두들 가슴 아파한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희생자 하나하나의 사연에 담긴, 그들의 '일상'에 공감하고 가슴 아파하는 것이다. 삶에 있어서, 소중한 것은 '일회성 일탈'이나 '이벤트'가 아닌 '일상'인 것이다.


얼마 전, 친구와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했다. 친구가 물었다. 

'너 회사 그만두고 나서, 가장 잘한 일이 뭐야?'

'집에서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어디 여행을 다녀왔다던가,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했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고?'

'음.... 물론 가족과 가까운 곳 여행도 다녀왔고, 수영을 배우는 것도 시작했고, 악기를 배우고 싶어서 집에서 기타 연습도 하고 있기는 해. 하지만, 아침에 아이들 학교 가는 것 보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맞이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 이야기 듣고, 그리고 집에서 문제집 풀다가 모르는 것 물어보면, 같이 풀기도 하고, 학교 숙제 같이 해달라고 하면, 같이하고. 난 이런 것이 더 좋은 것 같아. 회사 다니면서 하지 못했던 일이고, 아마 다시 취직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취준생 신분인 지금만 할 수 있는 일일 것 같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다.'


가족은 같은 집에 산다. 그러나 각자에게는 각자의 다른 일상이 있다. 한 집에 살면, 많은 일상을 공유할 것 같지만, 사실은 공유하는 일상이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공유하는 일상은 더더욱 줄어든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아이가 어렸을 때, 주말에 많이 데리고 다녀라'라고 이야기해 준다. 즉, 주말에 가족과 이벤트를 가지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속에는 '평일에는 가족과 일상을 공유하지 못하니, 주말에 이벤트라도 가족과 공유해라'라는 의미가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취준생이 되고, 이제 6개월이 되어간다. 가끔은, 솔직하게는 자주, 나 자신에게 초조함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초조함을 느끼면, 내가 평소와 다름을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아챈다. 그리고 그런 날은 틀림없이 아이들과 내가 공유하는 일상이 어그러진다.


지금 이 시간뿐이다. 과거에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더 높다. 가족과, 아이들과 하루하루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 것은 지금, '취준생'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일 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상'을 가족과 '공유'할 수 있는 순간이다.


이전 14화 14. 수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