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솔 Sep 14. 2023

14. 수영

_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며 배우면 된다.

수영을 시작했다.


난 완전한 맥주병이다. 물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무서워하고, 내 몸은 물에 뜨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심지어 대중목욕탕에 갔을 때에도, 온탕이나 냉탕에서 수영(?)을 하거나, 물에 몸을 띄워본 적이 없다.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 기억은 없으나, 물이 정말 무섭다.


이런 내가,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아내의 권유도 결정의 큰 몫을 차지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쉬는 기간 중에 악기 하나와 운동 하나는 꼭 배우고 싶다는 개인적인 희망을 이제는 실천하고 싶었다. 악기는 기타를 몇 달 전부터 배우고 있고, 운동은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2~3년 전에 생긴 국민체육센터에 수영장이 있다. 새로 지은 시설이어서, 깨끗하다고 칭찬이 자자한 곳이다. 더군다나, 시에서 운영하는 곳이어서, 강습료가 매우 저렴하다. 그렇다 보니, 강습을 신청하려면,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수영강습을 신청했고, 내가 뽑혔다. 월화목금 오전 6시 ~ 7시에 하는 강습이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는 나에게는 완벽한 시간대이다. 오늘로 수영을 배운 지 약 6주가 되었다.


수영을 시작할 때, 내가 물을 무서워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부러진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깁스는 하지 않고, 자가접착식 밴드로 칭칭 감아서, 고정한 상태이니, 여기에 방수밴드만 더해서 감으면, 어떻게든 물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발 디디는 것만 조심하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부러진 새끼발가락을 끌고, 수영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모든 운동에 있어서, 엄청난 몸치이다. 운동을 할 때, 내 몸의 근육은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난 내 몸의 근육들을 내 의지대로 우아하게(?) 움직이는 법을 모른다. 특정 부위에 힘을 주거나, 몸의 무게 중심을 옮기는 등의 일은 나에게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런 몸을 가진 내가, 더군다나 물을 아주 많이 무서워하는 내가, 부러진 새끼발가락을 가지고 수영을 시작했으니, 다른 강습생들보다 진도가 아주 많이 늦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6주가 지난 지금, 난 여전히 발가락에 방수밴드를 칭칭 감고 수영을 배우고 있다. 나와 같이 시작한 다른 강습생들은 자유형을 어느 정도 하면서, 배영을 배우고 있고, 난 여전히 수평 뜨기, 킥판 잡고 발차기하며 앞으로 가기, 그리고 배영 흉내내기(?)를 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남들보다 2배에서 3배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수영을 배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과, 수영 강사님도 내가 다른 이들보다 늦음을 인정하고, 좀 더 신경 써 주신다는 것이다.


지난주, 목금에 수영강사님이 휴가를 가면서, 옆반 강사님이 임시강사로 지도해 주셨다. 옆반은 수영기초반이 아니라, 수영고급반이다. 그런데 이 분이 초급반인 우리들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내 생각에는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전체에게 하신 것 같기도 하다.)

'못하는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에요. 잘하면, 왜 배우러 와 있겠어요? 못 하니까, 배우러 온 거죠. 그리고 못 하면, 이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지금 주위에 웃음을 주고 있다고. 창피한 것이 아니라, 웃음을 주면서 배우고 계신 거예요. 그러니까, 좀 더 과감하게 해 보세요.'


'못하는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주위에 웃음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주위에 웃음을 주며, 배우면 된다.'라는 이 말이 왠지 내 뇌리에 꽂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난 내가 '못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못하는 것'을 주위에 보여주는 것은 나 스스로 내 경력을 깎아먹고, 내 능력을 주위 사람들이 폄하하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못하는 일이 있으면, 퇴근 후의 시간이나 주말 동안 어떻게든 익히려고 하였고, 사람들 앞에서는 내가 잘하는 것만 보여주려고 했었다. 덕분에 약간은 빠르게(?) 승진하였고, 덕분에 빠르게(?) 희망퇴직 후, 취준생이 되었다. 인생에 정답은 없으니, 이러한 나의 과거 직장생활에 대하여 판단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빨리 배운다. 운동도, 기도, 춤도, 노래도. 무엇이든 빨리 배운다. 아이들이 배우는 곳 앞에서 귀를 기울여보면, 그 안은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저학년일수록, 웃음이 끊이지 않고, 고학년이 될수록 웃음소리는 줄어든다. 그리고 고등학생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배우는 곳에서는 아주 아주 간혹 웃음이 들리고, 어른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배우는 곳에서도 웃음소리는 아주 간혹 들린데. 반면에 초등학교 1학년 교실 앞에 있어보면, 심지어 공부를 할 때조차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어쩌면, 아이들은 무언가 모르는 것을 배우면서, 서로에게 거리낌 없이 웃음을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창피해하지 않고, '모르니까 배우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주위에 웃음을 주고, 다른 친구들은 그런 친구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같이 웃고, 그리고 웃고 나면 서로 도와주고, 그리고 웃었던 아이가 다시 새로운 웃음을 친구들에게 주고. 이러한 것이 '배움의 즐거움' 혹은 '즐거운 배움'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것을 못하면 비웃음거리가 될 거야'라고 생각이 들게 되는 순간부터 배움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웃음도 사라지고, 친구 간의 도움이 아니라 경쟁만이 남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웃음이 사라진 교실이 지금의 고등학교 교실일 지도 모른다.


내가 다시 '배움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다짐하며 살아온 내가, '못할 수도 있지. 그러니까 배우는 거야. 배우면서 내가 못하는 건, 주위에 웃음을 주는 거야. 주위에 웃음을 주면서 배우면 돼.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웃으면서 나를 도와줄 거야.'라고 나 스스로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이렇게 나를 바꾸어야, 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빠르게 바뀌는 세상을 즐기며.


그래, '수영'이 나를 바꾸어줄 것이라고 믿으며, 난 내일 아침에도 웃음을 주러 수영장에 가야겠다.


P.S. 나 같은 50대 취준생분들에게 운동 하나쯤은 꼭 배우시라고 이야기드리고 싶다. 물론 비용적인 부담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구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체육센터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 잘 찾아보시고, 운동을 배워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특히 아침 6시나 7시에 배우시면, 하루를 나태하지 않게 보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