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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솔 Aug 31. 2023

13. 새끼발가락

_ 취준생이 아픔을 대하는 방법

4주 전쯤 집에서 문지방(문틀)에 오른쪽 새끼발가락을 세게 부딪혔다. 원래 주위에 관심이 없는 편이어서, 여기저기 잘 부딪히고 다닌다. 그래서, 이번에도 별거 아니려니 했는데, 새끼발가락이 퉁퉁 부으면서, 퍼렇게 멍이 들었다. 뭐, 하루 이틀 지나면 나으려니 생각하고, 파스를 붙이고 지냈는데, 점점 더 아파지고, 퍼렇게 든 멍이 사그라들지 않고, 옆 발가락으로 번져나갔다. 그래도 아이들과 약속한 워터파크를 다녀왔다. 워터파크를 다녀와서는, 오른쪽 발가락 모두에 멍이 번져있었고, 발을 디디면, 꽤 아팠다. 이거 좀 이상한데? 병원에 가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지방에 발을 부딪힌 지, 2주쯤 지나서, 동네 정형외과에 갔다. 허리와 무릎 전문병원이다 보니, 진료를 기다리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제일 아무 문제가 없는 환자인 것 같았다. 내 새끼발가락을 본 의사 선생님은, '만약 뼈가 부러졌다면, 2주 동안이나 병원에 안 오고 버틸 수는 없었을 것 같지만, 그래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엑스레이로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고 하셨다. 그래, 뭐, 설마 부러지기야 했겠어?라고 생각하며,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웬걸, 오른쪽 새끼 발가락뼈가 댕강 부러져있었다.


'많이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으셨어요?'라는 말과 함께, '반깁스 하시겠어요?'라고 의사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난, '가능하다면, 깁스를 안 하고 싶은데, 방법이 있을까요?'라고 답했다. 의사 선생님은, '보통 깁스를 하면, 3주 정도 하는데, 이미 2주가 지났으니, 깁스를 안 하고, 네 번째발 가락을 부목으로 생각하고, 새끼발가락과 묶어서 새끼발가락을 고정시키는 방법이 있어요. 다치고 바로 왔다면, 뼈의 위치를 잡고, 깁스를 했을 텐데, 이미 2주가 지나서, 부러진 뼈가 붙기 시작했는데, 약간은 삐딱하게 붙고 있기는 해요. 그래서, 다시 그 부분을 부러뜨려서 위치를 잡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보여요. 깁스가 싫으시면, 네 번째 발가락과 새끼발가락을 묶어서, 새끼발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키고, 조심조심 생활하시는 것으로 하죠.'라고 하셨다. '뼈가 완전히 붙으려면, 얼마나 걸릴까요?'라고 묻자, '완전히 붙으려면, 3개월이 걸려요.'라는 답이 나왔다. 그리고, 난 깁스를 안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만약, 내가 지금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 아마도 깁스를 했을 것이다. 매일매일 회사에 출근해야 함에도 말이다. 깁스를 하고, 회사에는 새끼발가락이 부러졌다는 진단서를 제출하고, 재택근무를 신청했을 것이다. 중요한 회의가 있는 경우에만 출근하는 것으로 했었을 것이다. 어차피 코로나 덕분에 모든 직원들이 재택근무에 익숙해졌으니, 회사일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왜 난 깁스를 안 하려고 했을까? 오른쪽 새끼발가락 때문에 깁스를 하게 되면, 오른발 전체를 사용하기 힘들어진다. 걷는 것은 목발을 사용하면, 불편하기는 하지만 돌아다닐 수는 있다. 하지만, 오른발에 깁스를 하게 되면, 운전은 전혀 할 수 없게 된다. 즉, '깁스'라는 단어는 나에게, '이동의 제약'을 의미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실 난 지금 취준생이다. 매일 출근할 회사도 없으며, 한 달 정도 돌아다시지 않고, 집에 있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 생활반경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깁스'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합리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하면, 취준생인 내가 '깁스'를 선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러나, 취준생인 내가 '깁스'를 안 하려고 한 것은, 주위의 시선에 대한 '자기 검열'때문이었다. 혹시나 누군가가 나에게 만나자고 했을 때, '나 발가락이 부러져서, 깁스를 해서, 가기가 어려워'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회사를 안 다니면서, 자기 몸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집에 있으면서도 다쳤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혹은 깁스를 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면, 아이들의 친구나, 아이들 친구의 부모들이, '** 아빠는 집에 있으면서, 뭐 하다 다쳤는지, 다리에 깁스하고 있더라. 도대체 집에서 뭐 하며 지내는 거야?'라고는 하지는 않을까? 혹은 이력서를 낸 곳에서 면접을 하자고 연락이 왔을 때, 지금 운전을 할 수 없으니, 날짜를 조정할 수 있느냐고 문의한다면, 분명히 그 이유를 물을 것이고, 그래서, 집에서 실수로 새끼발가락을 부러뜨려서, 지금 깁스를 하고 한다면, 면접을 하기도 전에 '감점'이 되지는 않을까? 등등.... 생각해 보면, 주위는 내게 아무도 관심이 없는데, 나 스스로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그래서 '깁스 안 하겠다'라고 결정한 것 같다.


나만 이런 것은 아닌 것 같다. 50대에 재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은 대부분, 있지도 않은 '주위의 시선'을 항상 경계하는 것 같다. 아무도 관심 없지만, 나 혼자, 남들에게 게으르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일찍 일어나고,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가면서도, 괜스레 옷을 갖추어 입고, 모자도 쓰고, 아이들이 학교에 있고, 직장인들은 회사에 있을 시간이, 가장 한가하게 주변을 산책할 수 있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에는 잘 안 돌아다니고, 그 시간에 무언가 배울 것이 없는지 찾게 되고...... 이 모든 것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주의의 시선'을 괜스레 나 혼자 느끼고 경계해서 생기는 일들이다. 괜스레.........


쉰둘, 취준생이 되었을 때,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가장 먼저 한 말은, '내가 재촉하지 않으면, 아무도 날 재촉하지 않는다. 초조해하지도, 불안해하지도, 그리고 스스로를 탓하지도 말자. 우리는 그동안 잘 살아왔고, 그래서 잠시 한숨을 돌릴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다. 이제 겨우 인생의 반을 살았다. 지금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해온 일이 많으며,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 그러니, 스스로가 스스로를 재촉하지 말자'였다. 그러나, 이번에 새끼발가락을 다치면서, 내 머리와 마음을 훑고 지나간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재촉, 초조, 탓, 그리고 있지 않은 주위의 시선에 대한 경계' 였던 것 같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어마셔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내쉬며, 다시 나 자신을 타일러 본다. '초조해하지 말자. 난,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더 잘 살아갈 것이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은 없다. 그러니, 존재하지 않는 주위의 시선을 생각하지 말고,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하자. 지나고 나면, 지금처럼 소중한 시간은 다시는 주어지지 않음을 깨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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