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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Jul 21. 2021

국제시장 영화를 보고

그의 등은 천장을 향해 있다.
둥그렇게 움츠린 그의 등은 몸을 더 왜소하게 만들었다.
하이얀 런닝구는 가느다란 그의 팔을 더 가늘어 보이게 했고 힘을 준 두 손은 근육들을 움지락움지락 거리게 했다.
그녀는 문틈 사이로 그를 보고 있다.
괴로운 듯 몸을 더 웅크리며 절규하는 그의 등은 그녀에게 공포다. 그는 세월을 거슬러 생사를 넘나들었던 폭풍우 속을, 월남전에서 전사한 전우를, 나무 해오라며 작대기를 휘두르던 아버지를 차례로 만나고 있다. 알 수 없는 옹알이로 한 동안 울부짖다가 그는 등을 바닥으로 내려놓는다.
그녀는 그의 등을 어루만져 달래줄 수가 없다. 차갑고 날카로와 손이 베일 것 같다. 약해서 부서져 버릴 것 같다.
저러다 며칠 후면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고, 날이 서게 반듯하게 잘 다려진 바지를 입고, 캐리어를 끌며 그는 한국을 떠날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돌아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의 등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러면서, 사랑한다고 주문을 외울 것이다.

그가 손 흔드는 그녀를 보든 안보든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자식의 도리로써 하는 행위이기에 스스로가 만족하면 된다고 위로하다가 사실이 되어 버렸다.
그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살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살 수가 없었다. 자신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아픈 모습으로 살았다.
큰 아들 뒷바라지하느라 늘 찬밥 신세였던 둘째 아들의 서러움을 품고, 월남전 후유증으로 심리적 불안감을 달고 원양어선 선원으로 외로움을 껴안고 스스로를 어찌하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흘러 흘러 살았다.

영화 국제시장. 세대를 넘나드는 진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전 국민적 공감. 공감이라고?
소시민적이라 하나 한국인이 바라는 아버지의 모습이, 가장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자신을 돌볼 겨를 없이 형제를 위하고, 가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고... 그래서 멀리 독일 광부로 가고, 월남전에 참전하고, 극악스럽기로 유명한 국제시장에 정착하고... 나이 들어 그는 숭고함과 숙연함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영화에 속지 않기로 했다. '그'는 너무 아팠다. 아픈 그를 보며 왜 다른 '그들'처럼 강하지 않냐고.... 원망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현실이다. 그래서 영화의 감동을 그에게 겹치고 이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영화는 너무 뻔하니까... 아니, 어차피 환상이니까. 
험하고 힘든 이 시대를 헤쳐나갈 정신을 가부장에서 찾고 그래서 정치인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훔치고 보수층을 더 끌어안고 현대사 속에 많은 부조리와 비리를 덮어버린 채 해결해야 할 숙제를 무시한 채 아련한 추억으로 만들려고 하니까...
 
그녀는 이제야 그를 인간으로 만나고 있다. 그 나름의 인생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똑같이 재단하고 이념화하지 않으리라. 
아버지와 딸보다 인간 대 인간으로 메말라가는 그의 등을 어루만져보려 한다. 그의 인생을.
그와 뗄 수 없는 그녀의 인생을 어루만져 보려고 한다.
그가 안 보일 때까지 손 흔들던 그녀가, 차갑고 날카로운 그녀의 등을 보이지 않도록, 그가 보지 않을 때까지 손 흔들어 주던 그녀가 여기 있음을 등이 아니라 가슴으로 '그'에게 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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