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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Aug 09. 2021

도깨비 언니

  대학교 다니면서 임용고시를 앞두고 공부를 많이 했다. 대학생이 되던 그 순간부터, 머릿속은 온통 임용시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 찼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여자아이를 대학까지 뒷바라지한 부모님은 동네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자 비아냥의 대상이었다. 그 종이같이 얇디얇은 양면성을 성공의 시나리오로 완결하기 위해 학교까지 왕복 3시간 거리를 단 한 번의 불평도, 지각도 없이, ‘늘 잘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는 무언의 부담감을 어깨에 얹고 다녔다. 

   3학년 2학기가 되면서 엄청난 불안은 나를 엄습해왔고, 친구들과 교육학 학원을 다니며 독서실에서 고등학생 때 보다도 더 암기를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는 여태껏 친했던 학과 동기가 경쟁자로 보이기 시작했고, 주시하며 정면을 보기보다는 무엇을 공부하나 곁눈질로 슬쩍 훔쳐보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동기들과 같이 스터디하기엔 뭔가 모르게 숨이 막히고 미쳐버릴 것 같았다. 동기들은 학교 도서관에서 모여 함께 하자고 제안하며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 주겠다고 말했지만 염치없이 부탁만 하는 처지도 싫어서 집 앞 독서실을 선택했다. 학교를 많이 나가지 않아도 되었던 4학년 2학기에는 홀로 고군분투하며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며 살았던 것 같다. 동기들 보기에 내가 은둔형 외톨이로 보였는지 간혹 삐삐로 호출했다.  마음 넉넉한 친구 한두 명이 내가 우리 과 소속이며 한 팀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기도 했다.  한 번씩 등교를 하면 꼭 챙겨주었던 친구는 너무나 따뜻했다. 그리고 함께 공유했던 새로운 정보들을 알려주기까지 해서 고마웠는데 한편으론 부담스러움이 밀려왔고, 그 넉넉함이 내 속좁음을 오히려 드러내고 부각하는 것 같아 질투하고 미움이 올라오기도 했다. 

가운데 손가락에 굳은살이 올라올 때까지 필사하고 외우며 부지런히 준비하였다. 하루를 쉬는 시간 없이 알차게 보냈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텅 비어 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카세트 이어폰을 들으며 다시 책을 펼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불현듯 4년 전 그 언니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고 3 독서실을 다녔을 때 3달이 지났을까 독서대에 쪽지와 함께 음료수가 하나 놓여있었다. 한결같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격려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고개를 쓱 돌려 돌아보니 화장을 이쁘게 한 언니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잠깐 나오라고 손짓을 해서 어리둥절 따라가 독서실 로비에서 마주했다.  

    

  “나는 자격증 따려고 공부 중인데 학생이 너무 열심히 하는 모습 보니까 자극되더라고.” 

    

  늘 종종거리며 늦은 밤까지 내 주위에 누가 있나 살펴볼 틈도 없이 다녔는데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지켜보면서 격려받는다는 게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언니는 여상을 졸업하고 회계업무를 보다가 필요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날 이후 독서실에서 우리는 급격하게 친해졌다. 10살이나 많았던 언니는 늘 나에게 격려를 해주었다. 차도, 간식도, 밥도 참 많이 얻어먹었건만 대학을 가고 나서는 그 언니와의 인연은 끊어졌다. 신입생이 되고 나서 독서실로 갈 일이 없어서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않고 무심하게 연락이 이어지지 않았다. 대학 생활을 하며 어쩜 그토록 한 번도 생각나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갑자기 언니 얼굴이 내 기억에 스쳐 지나갔을까?     

  열공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을 훑어보며 일 년이 넘게 다니면서도 그녀들과 눈 한번 맞추고 아는 척하지 않았음을 문득 깨달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목표인 대학에 다니면서도 더 치열하고 여유 없이 그리고 하루에도 몇 장의 종이를 외우며 써 내려가는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까 궁금해졌다.     


  고등학생인 딸이 독서실을 다니고 있다. 딸이 다니는 사립고등학교는 성적이 우월한 아이들 40명을 선별하여 심화반을 운영한다.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심화반은 우리 가족의 ‘공동의 적’이 되어 버렸다. 교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파괴하는 교육 행태라고 맹비난을 퍼부으면서 내 딸이 속하지 못하고 배제된 속상함이 더 얹어져 더욱 싫었다. 딸은 심화반 아이들과 그리고 성적을 우선시하는 선생님과 갈등을 겪으며 자존감이 하락하고 있었다. 딸을 보며 내 공부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유경험자로서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과 주위 사람들과의 거리감을 두기를 이야기하였다. 일단 ‘너도 심화반에 들어가 봐야’ 욕을 하고 비난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냐, ‘좋은 대학 들어가면 인성도 좋아진다’하는 말을 아이와 마주칠 때마다 이야기했다. 딸은 여름방학 동안 성실히 독서실을 다니며 집을 오갔다. 방학 동안 학교에서 운영하는 심화반 프로그램 못지않게 쉬지 않고 공부를 했다. 물 좋고 산 좋은 곳 휴가도 포기하고 아이와 함께 나는 협공 모드로 들어갔다. 학원을 데려다주고, 건강식을 챙기고, 늦은 시간 귀가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밤늦게  딸을 데리러 독서실 앞에서 기다린다.     

  독서실 입구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보니 뭔가 머리를 한 대 때리듯이 누군가가 휙 지나간다. 아는 얼굴인데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실존 인물이었나도 의심이 되는 희미한 기억 속의 인물. 이제 그냥 흐릿한 형태로 남아있는 바로 그 독서실 언니!

  임용고시 합격 후 교직에 있던 20년 동안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던 인물. 아이의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건네받으며 언니가 생각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까만 밤, 늦은 시간, 피곤함, 허한 마음을 안고 독서실을 빠져나와 아이와 나는 집으로 향한다. 아마도 독서실로 데리러 가면 이 언니를 자꾸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니의 모습, 말투, 형체 등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언니와 함께 있으면 그저 이상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는 것 밖에는.....

새벽까지 공부하고 곤히 자는 아이 방에 들어간다. 영락없는 애 모습이다. 세상 근심 없이 새근새근 잘도 자는 아기 모습이다. 

사실 나는 경쟁에서 성공한 者가 아니다. 다만, 성공에 목마름을 느끼며 그것이 지독한 외로움과 무한의 경쟁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해 불안감에 젖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者이다. 그걸 알면서도 아이가 승자가 될 수 있다고, 되기를 바라며 어느새 몰아가고 있다. 

 독서실 언니는 나에게 그 존재만으로  ‘도깨비 시간 마법’으로 따뜻하고 편안한 순간순간을 만들어 선물로 주었다.  아마도 도깨비 언니는 소소한 일상과 행복을 누리고 귀중하게 여기도록,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느끼며 살라고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며 혼내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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