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향기 Jul 26. 2021

다 카포(da capo)

     “니는 절대 그라믄 안 된다. 알제?”   

  

  TV를 보던 엄마가 딸을 보며 단호하게 말한다. TV 속에는 파면, 해임된 전교조 교사가 아이들과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눈물바람으로 쫓겨나는 장면이 한창 나오는 중이다.   

  

“저 좋은 직업에 앉았으면 주는 돈 꼬박꼬박 받으면 되제. 저 부모가 울매나 고생하면서 키웠을 낀데 배불러서 저러제. 니도 그라믄 엄마는 아무 희망이 없다. 알제? 마이 배웠으면 그 값을 해야지. 저게 뭐꼬? 나라만 혼란시키고.”     


  주홍글씨 이미지로 뒤덮인 TV 장면과 세상 물정을 손바닥 보듯 잘 아는 엄마의 단호한 말투는, 어린 딸에게 두려움으로 각인될 만한 것이었다. 엄마의 모습이 세상의 전부였던 딸은,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렇게 살지 않으리라....

  신념을 가지고,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려는 저들의 노력은, 빈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엄마에게 뜬구름 잡는 모습이다.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흉한지 모르고 너무 편하게 돈을 버는 자들이기에 저들의 모습은, 밑바닥 인생이라고 믿는 엄마 자신의 삶과 너무나 달라서 하찮게 보이게 하여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 옆에서 국밥 식당일을 거드는 엄마는, 그 무거운 국밥 그릇을 이고 지고, 펄펄 끓는 뜨거운 열기에 온 몸이 데고 다쳐도 그것이 그녀의 숙명인양 열심히 살았다. 무식하나 돈 자랑이 낙인 식당 주인이 어마어마한 노동력을 요구해도, 나이 많은 자신을 고용해주는 것을 감사해하며, ‘성실만이 살 길이다’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점심시간.      

  법원 직원들과 판사들이 오갈 때, 그들이 가지는 여유로움, 인텔리라 불리는 사람들의 기품. 고생한다며 건네는 인사 속의 인자함. 엄마는 딸에게 생생하게 말해주며 사람은 왜 배워야 하는지,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지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자녀교육이라 믿었다.      

  뼈 빠지게 일해서 고단한 생활이 삶인 엄마는, 그녀의 딸만은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우고 싶었다. 마디마디가 튀어나온 손이 아니라 곱고 뽀얘서 귀하게 자란 티가 나게,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배운 티가 나게 그렇게 키워야 자신처럼 안 될 것 같았다. 우리 딸이 잘 배우기만 한다면, 똑똑하기만 하다면, 학벌이 좋아 직업만 좋다면야.   

  열 손가락 중에서도 가락지 끼는 손가락이었던 큰딸은, 엄마 바람대로 사범대생이 되었다. 큰딸이 대학생 신분으로 두꺼운 교육학 책을 들고, 국밥집을 갔을 때 엄마는 무식한 식당 주인 앞에서 처음으로 허리를 펴고 우쭐해했다.      


“아이고 임용고시 공부하느라 힘든데 왔나. 사장님. 오늘 국밥 하나 먹일께예. 돈 낼 테니까. 수육도 하나 주소..”     


  예비 교사인 딸은 그 국밥집을 드나드는 공무원들처럼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 뽀얀 손으로 숟가락을 들며 여유로움, 지성인다운 면모와 기품, 인자함의 아우라를 뿜어내며 앉아서 먹기 시작한다.  

    

“엄마. 나는 비위가 약해서 수육 못 먹는다. 순대도 징그러워서 못 먹는 거 알잖아..”


  국밥을 반쯤 남긴 딸은 엄마와 함께 식당을 나선다. 웬일인지 식당 주인은 일찍 집에 가라며 인심을 내어주고 예비 교사 딸에게 용돈 하라며 꼬깃한 만 원짜리를 쥐어준다. 평소 안 하던 행동에 어리둥절하던 엄마는 이내 자랑스러운 듯 딸의 어깨를 두드리며 살포시 웃음을 지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면서 엄마는 참았다 말하듯 딸에게 난데없이 옷 타박을 한다.     


 “니, 옷을 이래 입고 오면 우짜노? 저 번에 사준 하늘하늘한 원피스 있잖아. 그거 입고 오지. 옷이 너무 칙칙하다. 엄마 일하는데 올 때는 더 이쁘게 하고 온나. 알았제?”


  타박을 받은 딸은 왈칵 눈물을 쏟아낸다. 꼴랑 국밥집, 엄마 일하는 곳으로 불러 놓고 ‘자랑스러운 내 딸이네’ 하는데 사실 딸은 쪽팔렸다. 식당 허드렛일 하는 아줌마 딸. 그게 자신의 정체성이라 생각하니 하염없이 비참해진 기분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힘들고 거친 일을 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농협 지점장, 교감 선생님, 한의사, 대기업 부장인 아버지를 두어 전업주부네 취미생활이 서예네 하는 과 친구에 대한 부러움이 가슴을 파고든다. 꼬깃한 만 원짜리 용돈을 받아 나오며, ‘유럽 배낭여행을 간다고 하니 몇십만 원을 엄마 운동 동호회 친구들이 주더라’는 이야기를 상기하며 딸은 가슴속에 먹먹함을 느낀다. 배운 인텔리인지라 도의적으로 엄마를 탓하지 않으려 하는데, 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오라니...      

  그래서 딸은 이를 악물고 선생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현재로선 더 발전적이고 나은 환경을 만들려면 딱히 그 방법밖에는 몰랐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딸은 ‘임용 공부만이 살길이다’를 온몸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독서실에 틀어박혀 곱고 하얀 손으로 연필을 쥐고 쓰고 외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여 그녀의 손가락에는 볼록한 굳은살이 박혔다. 굳은살이 아려 올 때마다 그녀는 그 국밥집을 생각하며 치를 떨며 더 이를 악물었다.

모처럼 함께 저녁을 먹게 된 모녀 앞 TV에서 대학생 시위 소식이 나온다. 한총련 시위에 참여한 딸의 친구들이 잡혀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공부하기도 바쁜데 지 앞 가름도 못하고.... 배부른 소리들 하고 있네...”


  밑바닥 생활을 살고 있는 엄마와 밑바닥 인생을 거부하고자 노력하는 딸은, 삶을 두려워하며 같은 목소리를 낸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시위하는지 보다 내 앞의 삶이 절절하다는 공통된 생각이 그들의 두려움을 더 공고하게 한다. 이제 엄마는 딸이 엄한 짓을 할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 자기를 닮아 세상 이치를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한시름을 놓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아 딸은 중학교 선생이 되었다. 선생이 된 딸은 이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딴짓하고 애먼 짓 하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인 것인지를 훈화하며 자신의 삶과 임용고시 성공을 이야기한다. 여유로움과 지성인 다운 면모와 기품, 인자함을 뿜어내며!

이전 02화 도깨비 언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