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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Oct 11. 2021

사람다운 세상을 꿈꾸며

‘먼바다에서 고생하는 애비를 위해 큰딸은 살림 밑천 노릇해야지.’

중학교 졸업을 앞둔 손녀를 보며 아들을 걱정하는 시어머니의 모정.


8평도 안 되는 푹푹 찌는 공장에서 플라스틱 쪼가리 몇만 개 찍어내며

닦고 닦아도 마르지 않는 땀으로 온몸이 젖었건만

갤로퍼를 타고 느지막하게 등장한 사장은 불량품이 많다며 위세를 부린다.

한독 여상 원서를 내미는 딸내미가 공부 잘하면 독일 간호사 갈 수 있다며

대학을 안 가겠다는 말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3년 후에는 살림이 나아지겠거니, 지아비 고생 덜하겠거니

불현듯

딸 팔자 에미 닮는다고

평생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남 밑에 허리 굽히고 살아야 할 젊은 인생이

하염없이 딱하고 안쓰러워

숨을 막는다.


‘아지매 우리 아들이랑 동갑내기 딸내미 있다 했지예.

아지매 닮았으면 야무지고 일 잘하겠네.

공부에 재능 없는 우리 아들. 이 공장이라도 물려 주려 내 열심히 일한다입니까.

우리 아들이 나중에 사장되면 아지매처럼 열심히 일하는 직원 만나야 될 건데..

참! 주변에 성실하고 괜찮은 젊은 사람 있으면 데리고 와 주고예.

다음 달에 주문이 많습니더! 부지런히 찍어내소!’


생애 처음 동네 서점으로 달려가 서점 주인이 추천해 준 시집을 들고 가며

공장 인생 대물림을 몸서리치며

동네 어귀에서 봐 두었던 부업 전단지 한 장을 떼어 내며 꼭 쥐고 간다.

저녁 먹고 부업하면 인문고 등록비 조금 보태지지 않겠나.

지금 고생스러워도 에미 팔자 떼어 내고

너만큼은 훨훨 날며 살아가야지.


‘아지매, 시집 맨 앞장에 선물해 주는 사람 이름 쓸 수 있게 되어 있습니더.

거기에다 아지매 쓰고 싶은 말 쓰면 좋아할낍니다’

서점 주인의 말에 볼펜을 빌려

‘엄마가’라는 글자를 꾹꾹 눌러 쓰다 

손톱 밑 기름때를 본다.


얼른 가서

기름때부터 씻고 깨끗한 손으로 전해 줘야지.

뭐든지 정성이라 했는데 이래가꼬 되겠나.

집에 와 비누칠을 아무리 해도

몇만 개 찍어낸 기계가 화가 나서 남긴 흔적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딸내미 앞에 내민

비누향이 곱게 나던 손.

그리고

감추려고 애를 쓰던

김소월 시집 사이 손톱 밑 기름때.     



  엄마는 나에게 본인과 같은 노동자가 되지 말라며 공부해서 출세하라고 하셨다. 본인의 힘듦이 자식에게까지 이어지는 것이 너무나 마음 아프고 속상한 일이라면서 말이다. 공장 사장님이건, 회사 사장님이건 눈앞에서 부모님이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자식으로서도 힘든 일이었다. 연신 허리를 굽히며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몸으로 하는 ‘노동’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뉴스를 보았다. 연일 쏟아지는 대선 후보 간 경쟁적인 추문들 속에 현장실습생 사망에 관한 기사가 마음에 박혔다. 중학교 교사로서 특성화고로 진학지도를 하면서 이런 기사를 보면 늘 마음이 무겁다. 나의 일이자 곧 우리 아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중 3 담임의 가장 큰 업무는 진학이다. 현재는 많은 지역이 평준화이지만, 과거 비평준화 상황에서 고입 지도를 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웠다. 아이들이 원하는 학교와 현실의 성적이 불일치할 때 요행을 바라며 원서를 쓰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원하는 학교에 진학을 못하면 재수를 하거나 아니면 원거리의 학교를 가야 하니 아이도, 바라보는 어른들도 속상한 일이었다. 본인의 인생이라 선택도 직접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젊은 시절 나는 아이들의 인생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며 충고해 주는 것이 사명이라 여겼다. 성적에 따라 학교를 정해주고 공부가 부족한 아이에게 미래사회에는 ‘기술을 가진 자만 살아남는다’고 상고, 공고를 적극 추천하기도 했다. 숱한 상업계고의 홍보물과 기술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취업 수기들을 보며 제자들도 그러한 삶을 살겠거니 믿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았다. 코로나가 되고 나서는 취업이 더 어려워졌고, 꿈보다 현실을 택해야 하는 아이들의 속상함을 들을 때 마땅히 해줄 충고가 없어 궁색해졌다. 상업계고가 특성화고 혹은 마이스터고로 명칭이 변했고 기술 강조는 여전하지만 노동에 대한 가치는 여전히 폄하되고, 혹은 더 열악해졌기에 요즘에는 본인이 꼭 특성화고를 가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추천하지 않는다. 그게 더 양심적인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존경받는 동네 사람인 K는 택시 운전을 한다. 마을협동조합을 추진하고 사랑방을 운영하는 주축이다. 딸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을 다닌 관계로 알게 되었는데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 인연을 맺게 되었다. (벌써 12년 전이다.) 이들 부부를 만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편견을 마주하며 잘난 척했던 나의 속 좁음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며칠 전 K는 동네 사람들에게 지저분한 담벼락에 벽화작업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동사무소에 허가를 받아 함께 자원봉사처럼 하자는 것이다. 나는 그가 동네 사람들을 모아 벽화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보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온몸으로 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사람들과 연대를 하며 문제점을 해결해 가고, 삶과 가까운 공간에 문화를 만들어 내며 즐기고 확장해 나간다. 이런 K가 내 주변에 있어 고맙다. 그를 보면서 아이들의 일터에 이런 어른이 있기를. 그리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일터를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일구어가는 어른을 존경했으면 하고 바란다.

 나부터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되어 주어야 할 텐데... 

 나조차도 교육청이나 관리자들 앞에서 쪼그라드는 소시민이면서 말로만 공허하게 외치는 건 아닌지 자각을 해본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차별 없는 노동 세상에서 일할 수 있도록, 그리고 K와 같이 어른다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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