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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Apr 12. 2024

카페 보스코에서

  

김포에 이사 온 게 1999년 7월 30일이었다. 비를 맞으며 이삿짐을 보내고, 식구들은 기차 편으로 미리 보내고, 혼자 차 몰고 이사 왔다. 저녁 8시경 부산집을 출발하여 김포 아파트에 도착하니 새벽 3시가 넘었다. 혼자 밤을 지내며 생일을 맞았다. 피로와 졸음과 맞서 싸운 밤이라 잊히지 않는다. 그때만 해도 별명이 슈퍼우먼이었다.     



     

내가 사는 이곳, 김포는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차 타고 서울 시내 나갔다 귀갓길, 그냥 집에 돌아오려니 허전하여 일전에 한 번 들른 적 있는 카페 보스코에 갔다. 기억을 되살려 그곳을 찾아 마당에 차를 세우니, ‘OPEN’이란 작은 팻말이 걸려있고, 모든 문이 열려 있었다.  

   

내 올 하반기의 화두는 '곳'이다.

아버지는 전라남도 진도에서 태어나 중학부터 서울에서 공부하셨고, 어머니는 고향이 제주도인 재일교포였다. 일본에서 두 분이 연애결혼 하셨고, 나는 오사카에서 태어나, 결혼하기 전까지 서울과 부산에서 반반 살다, 결혼 후 쭉 부산에서 살았다.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좀 망설이지만, 스스로는 '부산 여자'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부산의 곳곳은 내게 안방처럼 편한 장소들이다. 서슴없이 드나들 수 있었던 해운대, 광안리, 남포동, 서면, 그리고 부산대 앞…. 그러다 어느 날부터 그 편하던 장소들이 모조리 반기를 들어 평화롭게 그곳들을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여러 가지 여건이 맞아떨어져 부산을 떠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차라리 홀가분했다. 그곳에서 과한 갈등들을 겪은 탓이다. 그래서 당분간 멀리 떨어져, 그곳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도 차에 붙은 '부산, 10부제 운행' 스티커를 떼어내지 못하고 아직 붙이고 다닌다.     


7월, 이미 오르기 시작한 서울의 집값, 전셋값에 기가 질려서, 나는 변두리로 눈을 돌렸다. 일산도 비쌌다. 아들 학교가 공항 부근이었고, 학교 선생님께서 김포 사우지구를 알려주셨다. 새로 입주하는 단지라 집이 깨끗하고, 학교까지 버스 한 번에 올 수 있는 곳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우리 형편에 맞는 조촐하고, 편한 집을 발견했다.     


이제 만 두 달이 되어가는 김포 생활.

엄마는 만족하고, 고 1인 아들은?

“그냥 그래.”

“뭐가 그래?”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어.”

“설명해 봐.”

“자전거 탈 수 있어서 좋고, 가까운 곳에 친구가 없어서 안 좋아.”

초등학교 3학년인 딸에게는 물을 필요도 없다. 

그 애는 외로워하고 있다. 아직 부산의 효빈이나 혜진이 같은, 제 말마따나 완벽한 친구를 찾지 못한 탓이다.

     

나는 주거지로서의 김포에 만족한다. 물론 시내 외출은 불편하다. 서초동 교대 부근 사임당길에 아침 10시까지 가려면 마을버스, 버스, 지하철, 또 지하철, 마을버스를 타야 하니 너무 지쳐 차를 몰고 가게 된다. 지난 월요일 폭우가 쏟아지는 출근길, 그곳까지 올림픽대로를 타고 43km 거리에 1시간 50분이 걸렸다.      


그러나 이곳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쾌적하다. 단지 내에 오락시설이라고는 아직도 간 크게 비디오 하나에 2,000원 받는 '좋은 하루'와 밤이면 요즘 왕새우 소금구이를 경쟁하듯 내걸고 파는 포장마차 몇 대를 제외하고는 노래방 하나 없는, 사람 살만한 동네이다.

     

서쪽으로 이사 온 동쪽 사람이 생경하고, 짜릿한 느낌을 갖는 때는 황혼 무렵이다. 추석 음식 다 장만해 놓고, 느끼해진 속을 달래려 강화 쪽으로 회 사러 달리던 내 앞의 풍경은 온통 황금빛이었다. 황금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김포 들판에 석양이 황금빛을 덧칠해 놓았다. 나는 하루의 마지막 금빛 세상에 황홀해하고 있었다.   

  

때때로 온 아파트를 물들이는 선연한 분홍빛 노을. 저녁 먹다 벅차서 숟가락 놓고 쪼르르 창가로 달려간다. 무지개도 본 적이 있다!

자연이 주는 이런 기쁨들 탓에, 

“도심에 굳이 살 필요 없던데요?”

하며 큰소리친다.     


카페 보스코를 처음 간 날 나는 또 다른 기쁨을 만났다. 숲 속에 있는 이 카페는 세련되고, 말끔한 장소에 거북해하는 내게 적절한 위안이 된다. 산책로, 작은 연못, 낡은 농가, 적당히 주저앉은 초록 체크 천 소파의 쿠션, 그 집에 있는 고색창연한 소품들, 높은 삼각 천장에 붙은 거미줄, 무엇보다 그 집을 둘러싼 널찍하고, 낡은 테라스. 그 테라스에 어울리는, 또 적당히 낡은 바퀴 모양 팔걸이를 단 나무 벤치.      


처음 간 날 그 벤치에서 밤의 숲을 보며 앉았었다. 오늘은 테라스에 아침 연인이 앉아 있어 실내로 피해 준다. 안에는 주인 할머니의 취향은 아닐 재즈가, 열린 창문에는 비행기가 흐른다.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란 노래 가사가 실감 나듯, 이렇게 나는 김포에 차츰 마음 한 자락씩 걸치게 된다. 

    

일요일 아침 같은 곳, 카페 보스코에서, 꼬낀느.     

(1999년 9월)       


        

사진 출처 : 김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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