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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Mar 28. 2024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온다

 

지난밤 세찬 바람에 잠을 뒤척였다. 어제 아파트 담장에서 혹은 산업도로에서, 연분홍빛 눈같이 화르르 날려 눈을 시리게 하던 벚꽃. 마주 보이는 산 허리께 귀를 멍멍하게 하던 순수.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여 내다보다 깜짝 놀란다.

‘우박이 왔나? ’

꽃잎들이 우박처럼 땅을, 차 지붕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꽃이 지고 있다. 아름다움의 끝이다.     


바깥을 보고 있는데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온다.

달려가 품에 안는다.

아이에게서 바람 냄새가 난다. 

아이에게서 학교 운동장 모래 냄새가 난다.

아이가 웃으며 혀로 입술을 핥는다.   

  

“뭐 먹었어? ”

“어저께 400원 남은 거로, 쪽자랑 쮸쮸바 사 먹었어. ”

“두 개나? 어디서? ”

“학교 앞 문방구에서. 봉사 언니 볼까 봐 얼릉 사 들고뛰었어. ”

“봉사 언니가 보면 어찌 되는데? ”

“이름 적어. ”

“이름 적으면 어찌 되는데?”

“선생님께 말해서 혼나. 학원 다녀올게요. 안녕.”

다시 바람처럼 달려 나간다.     

 

능글거리는 미소와 함께 아들이 돌아온다.

무어를 툭 던진다.     


「온 세상이 밝아지는 꽃의 계절이구나.

  봄 색깔은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너처럼 예쁘기만 하다.

  언제나 봄처럼.

  고 마 워.

          도 덕 샘               」     

그리고 도서상품권 한 장.     


“왜 무슨 일인데? ”

“아니, 저번에 도덕 선생님이 부탁하시길래, 책 표지를 해드렸잖아요. 그랬더니 이걸 주시네. ”

“널 아주 이쁘게 보셨나 보다. ”

“처녀가 시집이나 가지, 남학생에게 이런 선물이나 하고. ”

그러면서 뭉툭한 말과 함께 쑥스러운 웃음 다시 한번.    

 

언제부터인가 화장을 마치고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만족한 웃음을 짓지 않는다. 감때사나운 여편네처럼 시큰둥하다. 그간 자신을 돌보아 오지 않은 벌이라는 걸 알면서도 쓸쓸하다. 

모든 것이 피고 또 진다.

꽃도 여자도, 그리고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지는 인생에 아이들이 있어 덜 쓸쓸하다. 아이들은 늘 나를 치료하는 약이다.     


(1998, 봄)         

 

나이 마흔의 나는 젊음이 다 져서 이제 끝이라 여겼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시작, 또 시작인데. 인생은 봄처럼 이쁨만 있는 게 아니다. 여름도 가을도 긴 겨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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