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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Jun 26. 2024

제 장래 희망은 만화가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취미가 가위질, 그림 그리기였고, 초등학교 3학년 때 혜원이를 만나면서 만화에 대한 관심이 커져, 4학년 때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유는 그저 하나였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것만큼 즐거운 것은 내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화를 그릴 때면 아무리 슬프고 힘든 일이 있었어도 금세 잊어버리고 만화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다 보면 나날이 늘게 되는 실력에 성취감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꿈을 말할 때면 항상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데 왜 아깝게 돈 못 버는 만화 쪽으로 가려고 하냐.”

“갈 거면 만화 쪽보다는 미술 쪽이 낫지 않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됩니다. 실제로 만화는 큰 히트를 치지 않으면 가난하게 살아야 하고, 설사 큰 히트를 친다 해도 만화를 그리느라 온종일 ‘앉아서 그림만 그려대는 단순 노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만화를 손해가 막대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겠죠.


그러나, 저는 만화를 ‘창조’의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고, 만화 하나를 그릴 때 그 작품의 배경, 인물, 내용, 모든 것을 처음부터 제 손으로 창조해 낼 수 있으니까요. 한 마디로 제가 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고, 그 세계의 조물주가 곧 저라는 것이니 그처럼 두근거리는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장래 희망은 만화가입니다.

다른 만화가 지망생들은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어서’와 같은, 남을 위해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자신을 위해 만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좀 더 나아지기 위해서, 
더 많은 세상을 창조할 수 있어서,
만화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저는 만화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사 와서 컨테이너에 넣어 두었던 짐을 모두 꺼내 정리하였다. 딸은 연습장에 수학 문제와 영어 단어들 틈 사이 군데군데 메모를 적거나, 그림이나 만화의 캐릭터를 끄적거리거나 해두었다. 그런 공책이 10권이 넘는다. 아이의 성장 과정이 담겨 있는 그 낡은 노트들을 딸의 방 책꽂이 하단에 졸업 앨범들과 함께 꽂아 주다 우연히 이 글을 발견하였다. 아마도 중3 때 쓴 글인 듯하다.     


이 글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간다.

그렇다.

나는 딸의 꿈이 만화가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줄곧 동조하지 않았다.

일 가진 여성과 안 가진 여성의 차이를 잘 알고 있었고, 그 일에 따라 받는 사회적 대접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았기에 딸에게 기왕이면, 하고 줄곧 욕심을 내어 왔었다. 부모로서 세련되고,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양 보였지만, 그러면서도 딸에게 은근한 압박감을 주어 내 의도대로 이끌어 왔을 것이다.

내 욕심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딸은 이제 스무 살이 되고, 대학 1학년을 마치면 자신의 뜻에 따라 전공을 택할 것이다.

새삼스럽게 나는 딸에게 다시 한번 자신의 길을 물을 것을 권하기도 한다.

“미술사를 전공하러 간 것이지만, 언제든 더 마음에 끌리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걸 공부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대학생이 되었기에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를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해 볼 수 있으리라 믿기에.     


만일, 지금도 만화가가 되고 싶어 한다면?

난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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