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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May 17. 2024

9세 딸의 뉴욕 적응기

      

<9월 7일 목요일, 아이의 일기>

      

오늘은 개학식. 참 떨린다. 미국에 온 지 이제 1주일. 친구들과 헤어진 게 참 슬프다. 교실에 엄마와 이모와 같이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잠시 후, 조그마한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이름이 ‘잭’이란 남자아이였다. 엄마와 이모는 학부모 모임 때문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젠 잭이란 아이와 나만 남았다. 그 아이는 작은 걸 보니, 4학년인 모양이었다. 10분쯤 지나자, 아이들이 몰려 들어왔다. 큰 애, 작은 애, 뚱뚱한 애, 흑인, 백인……. 넋이 나간 채로 나는 하루를 넘겼고, 집에 가는 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5분, 10분, 15분이 지나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30분째, 드디어 엄마가 왔다. 나는 뛰어가 엄마 품에 안겼고, 엄마 또한 날 꼭 껴안았다. 그리고 내 눈엔 눈물이 흘렀다.        

   

<9월 7일, 엄마의 메모>

      

학부모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살짝 아이의 교실에 들르다. 화장실에 가던 아이가 날 보고 다가와 작은 소리로 묻는다.  

“엄마.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 말 듣고, 뭐 쓰고 있는데, 나 뭐 해?”

마주 잡은 아이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그날 오후 엄마 역시, 아침에 이모부의 차를 타고 학교에 처음 갔었기에, 오후에 혼자 아이의 학교를 찾아가다 길을 잃고 헤매어서 늦었다.   

        


스쿨버스 기사, 라저 아저씨  

   

개학 후 며칠 동안은 아직 무서워서 혼자 바깥에도 못 나가는 아이를 한 블록 떨어진 곳까지 데리고 가서 차 태워 보내고, 오후에는 마중 나가곤 하였다. 우리 딸 이쁘게 봐달라고, 무뚝뚝하고, 무섭게 생긴 흑인 기사에게 매일 웃으며 인사도 챙기다. 

“얘, 엄마가 로저에게 인사해도, 로저는 웃지도 않더라.”

“로저, 아니야. 라저야.”

Roger Venerus. 

일주일 만에, 이유(離乳) 하듯 등 하굣길 스쿨버스를 혼자 타고 오게 하다.           


<9월 14일 목요일>

 

아침에 아이를 혼자 보내어, 오후에 집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리다, 아이가 오지 않자 집을 나서다. 아이는 아파트 위치도 알고, 열쇠도 갖고 있건만. 로저 아닌 라저는 차 정차하는 곳에서 엄마가 기다리지 않자, 5분가량을 아이를 못 내리게 하고 붙들고 있다가, 내가 다가가자 아이를 내려놓고 급출발한다. 다음 날 역시 아이가 늦어 이상해서 나가보자, 이번에는 우리 집 모퉁이에 차를 세운 채 아이를 붙들고 목을 빼고 나를 기다린다. 

“한 바퀴 더 돌아오려 했다!”

투박하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외치더니 감사 인사도 받지 않고 성큼성큼 가버린다. 

“열쇠 있다 그러지! 집 안다 그러지!” 

“말할 새도 안 주던걸?”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는 우리말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결국 다음 주에 라저에게 작은 메모를 한 장 써서, 아이에게 들려 보냈다. 

“혜정이 이젠 집 혼자 찾아올 수 있어요. 열쇠도 갖고 있어요. 아이를 정차하는 곳에 내려 주셔도 되어요. 고마워요.”

그 후, 아이의 등하굣길은 순조로웠다. 가끔 내가 마중을 가면, 역시 웃음 없이 무뚝뚝하게나마 고개만 끄덕이는 라저. 


얼마 전. 스쿨버스 안에서 북새통을 치는 개구쟁이 녀석들 중 한 명이 아이를 괴롭힌단다. 한두 번은 참으라 하다, 며칠 거듭되자 화가 났다. 하굣길, 버스를 기다려 라저에게 말한다. 

“혜정일 버스 안에서 누군가 계속 괴롭힌다. 머리도 잡아당기고.”

그 순간 라저는 차에 브레이크를 탁 걸며 일어났다. 

“누구냐?”

내가 차에 오르려 하자, 나를 저지하며 혜정이만 올라오란다. 그리고 그 기차 화통 삶아 먹게 큰 목소리로, 녀석에게 왈왈거리며 나무라는 소리가 버스 바깥까지 들린다. 정작 피해자인 혜정이 그 큰 소리에 놀라, 얼굴이 노래져 내린다. 우리는 배꼽을 쥐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 날. 

“라저가 아침에도, 오후에도 묻더라. 내게 신경을 좀 써주던데?”

그리고 녀석은 혜정에게 정중히 사과하였단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그에게 작은 선물을 할 작정이다.     

 

<개학 한 달이 지난 요즘>      


딸이 다니는 학교는 이 부근에서는 active 한 가르침으로 이름나 있는 좋은 학교이다. 엄마는 학교를 믿는다. 그래서 학교에 가지 않는다. 초등학교 교실에는 가지 않아야, 아이가 제 힘으로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대신 학교에 기부금을 낸다. 이모의 이름으로 100불을 내면, 회사에서 200불을 보태어, 도합 300불이 학교에 기부금으로 간다. 엄마는 아이가 미국의 보통 아이처럼 자라기를 바란다. 그래서 도시락도 싸주지 않는다. 하루 1불 하는 점심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식당에서 먹기 바란다.   

   

아이는 그림을 잘 그린다. 수업을 아직 다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writing 시간이면 혼자 한 달 동안 만화 캐릭터를 그렸다. 다른 친구들은 아이의 만화 그리는 솜씨에 경이로운 시선을 보냈다. 어느 날 한 녀석이 용기를 내어 다가왔다. 

“나, 그림 한 장만 그려줄래?”

용기를 얻은 다른 아이들이 모두 줄을 서서 기다려, 그날은 무려 10장 넘게 만화 캐릭터를 그려주어야 했단다. 

“늘, yes 하지는 말아라.”


한 달 동안 아이는 수학 숙제만 해갔다. 그리고 ‘쓸모 있게 도움 되는 사람’인, 제 이모와 매일 한 시간씩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요즘은 과거를 배우고 있다. 한 달이 지난 후, 우리는 이제 word 숙제와 writing 숙제도 힘들지만 해간다. 물론 엄마나 이모와 함께. 첫 word 숙제를 해간 날 공책에는 ‘good!’, 선생님의 코멘트가 적혀 있었다. 받아쓰기를 잘한다. 첫 받아쓰기에 반을 맞더니, 엊그제는 15문제에 3문제를 틀렸단다. 

“carry가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발음 듣고 적어서 맞았고, enough는 틀렸어.”

“딸! 엄마는 우리 어린 한국인이 자랑스럽다.”

어제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아이가 말한다. 

“포켓몬 중에, 여기 이름은 ‘딕렛’인데, 한국에서는 ‘디그다’라고 하는 몬스터가 있거든. 근데, 그 말은 영어와 우리말의 합성어인 거 같아.”

“?”

“ ‘디그 dig'가 파다, 란 뜻이잖아. 그러니 디그와 파다.”


그 무렵 아이 모습



“엄마. 언제 한국에 돌아갈 거야?”

“지금으로선 모르겠어. 가고 싶니?”

“응. 엄마를 위해서 참고 있는 거야.”     


2000년 10월 14일





만 1년이 지나기 전에 아이는 완벽하게 적응했다.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를 했고, 자유롭게 대화했다. 길도 잘 찾아다녀, 혼자 맨해튼의 코리아 타운까지 지하철 타고 가서 만화를 빌려 오기도 했다. 아이는 아무 문제 없었다. 단지 내가 귀국할 때 아이를 거기 두고 올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늘 어른이 문제다. 어른은 아이처럼 그렇게 수월하게 적응 못 한다. 살아갈수록 더 적응력은 떨어지는 것 같다. 그저 변함없는 것에 기쁨과 행복을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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