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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May 29. 2024

‘댓까이 무스메’의 대학 입시 날

필기시험 전날 아이는 잠들지 못했다. 새벽 한 시, 잠들었으리라 여겨 살그머니 곁에 눕자,

“엄마, 잠이 안 와.”

하며 눈감은 채 떨리는 목소리를 전해 온다.

내일 아침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 필기시험 치러 가니 긴장이 되는 탓이다.

“추운데, 우리 함께 잘까?”

아이 곁으로 베개를 당겨 누우며, 이미 나보다 훨씬 커 버린 딸의 어깨를 안고 토닥거려 준다.

“준비가 부족한 거 같아.”

“준비는 네가 영어와 일본어를 처음 배운 날부터 시작한 거야. 마지막 며칠에 하는 게 아니라. 넌 충분히 했어.”

따뜻한 말 몇 마디를 건네다, 둘 다 고단하여 곧바로 잠들어 버렸다.   

  

2008년 11월 24일 월요일 아침, 시험장까지는 불과 전철 두 정거장이라 시간 부담은 없었다. 학교 부근 편의점에 연필 사러 들르자, 시험 치러 온 듯한 한국인 남학생과 어머니의 모습도 보이고, 학교에 가까워질수록 한국어가 자주 들린다. 올해는 대략 270명 이상 지원한 모양인데, 그중 30명을 필기시험으로 뽑아 수요일에 발표한다. 목요일에 면접 고사, 12월에 EJU(일본 유학 시험) 성적이 발표되면, 그 성적을 반영하여 최종 합격자 18명을 1월에 발표한다. 결국 오늘 시험으로 어느 정도 당락이 가름되는 것이다. 

    

아직 입장시키지 않아, 학교 담 따라 수험생들이 길게 줄 서 있다. 가장 떨리는 순간이다. 아이 표정에도 긴장이 역력하다. 

“우리 딸만큼 일본어, 영어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딸이 눈을 흘긴다. 주위 사람들 듣는데 그걸 농담이라고 건네는 엄마가 주책맞은 것이다.

드디어 수험생들이 입장하고, 아이가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아이의 등만 바라보고 있다가 돌아선다. 마치 바쁜 일 있는 사람처럼 서슴지 않고 학교 주변을 떠난다. 아이가 자기 일하는 동안에 나는 내 일한다는 자세로 늘 살아왔다.     


시험은 10시부터 11시까지 일본어 한 시간, 교내 휴식 1시간, 영어 한 시간을 친 후, 오후 1시에 끝난다. 내게 세 시간이 주어졌다.     


일단 커피숍에 간다. 와대 앞에는 벌써 내가 좋아하는 커피집도 생겼다. Goto-(고투가 아니라, 고또-). 18년 되었다는 이 커피집은 커피도 많이 주고, 일본 전역으로 배달되는 케이크도 맛있다. 커피를 큰 잔으로 한 잔 마시며, 오늘 다닐 곳을 지도에 표시해 둔다. 

커피숍을 나와 부근에서 가장 큰 서점으로 향했다. 책을 몇 권 사서 다시 한적한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방금 산 책들을 읽는다. 자꾸 아이 생각이 난다. 어제 마지막 비행기로 동경에 와서 고단하여 자꾸 졸리다. 결국 탁자 위에 엎드려 졸다 보니 1시 10분 전. 부랴부랴 계산하고 나온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편의점 들러 우산 살 겨를도 없다. 학교 문 앞에는 학부모들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인인 듯한 한 아버지는 한 손에 아이의 두꺼운 겉옷을 들고, 다른 손에는 우산을 든 채 고요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다. 그분의 기도하는 모습이 하도 경건하여 나도 덩달아 마음이 떨려 온다.

멀리서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보라색 겉옷을 입은 꼬맹이 모습도 보인다.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 가슴이 철렁했다.

‘침착하자. 설령 시험 망쳤다고 울어도 의연하자.’

가까이 다가온 아이는 얼굴이 상기된 채 싱긋 웃는다.

방금 전까지 온 힘을 다해 답안지를 써왔던 게 눈에 보인다.


“어땠어?”

“일본어 받아쓰기가 중간에 좀 안 들려서 한자를 몇 개 틀렸어.”

“제일 처음에 나온 남학생은 시간이 모자라 다 못 썼다고 하더라.”

“응, 나도 겨우 다 썼어.”

학원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EJU 만점 받아서 일본어 시험은 걱정하지 않았다. 

“영어는 생각보다 쉬웠어. 내가 일본 애들 영어 문제 갖고 공부해서인지 내용도 단어도 평이했어. 작문 문제는 ‘만일 내가 특별한 능력이나 초능력을 갖게 된다면 어떤 것을 갖고 싶은지, 그리고 그 이유를 써라.’여서 자신감 있게 답지에 빽빽하게 썼어.”

“뭐랬는데?”

“미술관에서 작가의 미술 작품을 볼 때 그 작가가 작품을 만들었을 때 의도와 심정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좋겠다. 거기에 살 붙여서.”

“괜찮은데? 창의성을 보는 문제이니까. 문학 작품은 책을 읽어 나가면서 의도를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지만, 미술 작품 앞에서는 나도 그런 생각 종종 했어.”

“적어도 내가 만일 투명인간이라면 따위는 아니니까.”

그러면서 씩 웃는다.

“그래. 설령 일본어 너보다 잘한 애 있더라도 영어는 네가 잘했을 거니까 일단 기대해 보자.”     

우리는 점심 먹으며 시험 문제를 다시 보고, 이제 그만 잊기로 했다.


오늘 놀고, 내일은 요코하마에 가고, 그리고 모레 오전 학교에 가서 발표를 본다. 여기에 합격하면, 아이는 2월에 치를 국립대학 오차노미즈 여자대학 입시를 여유 있게 칠 수 있고, 만일 떨어진다면 필사적으로 3개월간 다시 공부하여야 한다.     


2008년 11월 26일 아침 10시. 학교는 1차 합격자 30명을 웹사이트와 학교 게시판에 발표했다. 아이는 저도 모르게 눈물 흘린다.

“기뻐. 살아오면서 가장 기쁜 순간이야.”

“그렇게 성취감 맛보면서 하나씩 자신을 쌓아가는 거야. 그러다 좌절하고, 다시 노력하고, 성취하며 살아가는 게 삶이란다.”     

잘 자라주어 고맙다. 내 착한 딸. 내일 면접에도 끝까지 야무지게 잘하거라.    

 

오후에 신주쿠의 젊은 애들 가는 백화점 루미네에 가서 코트를 사주었다.

“모레가 생일이니, 미리 선물이야.”

“고마워. 가장 비싼 옷을 입어 본다.”

이 엄마 한국에서는 아이 옷 사러 갈 시간도 없었다.

여기는 입학식에는 정장, 면접에 단정한 차림으로 가야 하는 게 기본이다.      

단정한 원피스와 감색 코트를 입고 아이는 면접에 갔다. 아이들은 대부분 양복을 입고 왔다. 한국 애들이 80%이다. 한 10명쯤이 모 학원 소속이기도 했다. 서울에 정식으로 일본 유학 대비하는 학원이 딱 세 군데 있고, 그 학원들 모두 다녀 보아 선생님들도 다 안다.      


아이는 번호가 앞쪽이라 1시간 반 만에 나왔다.

“편안하게 잘 보고 왔어. 편안하니 말도 더 잘 되어서 준비한 말도 다 했어. 면접이란 건 상대가 질문하는 걸 기다려서 답하면 안 되잖아. 내가 질문을 유도했어. 당연히 처음에 지망 동기를 묻길래, 일본과 미술에 대한 질문이 나오게 대답했고, 미술 이야기가 나오자, 옳다 하고 준비한 말들 다 하고 왔어. 여러 가지 대화 나눴어. ”

“어디 어디 치느냐고 묻길래 솔직하게 말했더니, 우리 학교에 꼭 와달라고 했어.”

“하하. 교수가 면접 보면서 꼭 와달라고 했다니 대단한데?”

“에이, 그거야 일본 사람들 으레껏 하는 말이지. 암튼 다 잘 끝내서 마음이 편해.”


“근데 엄마, 나 오늘 상처받았어. 일본 아줌마들이 길에서 날 보고, ‘와, 댓까이!’ 그랬어.”

“댓까이가 뭐더라?”

“Huge! 그건 덩치도 크다는 말인데, 난 아니잖아.”

나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일본 사이트에 그 이야기를 했더니 댓글에서 사람들이, 옛날 사람들에겐 167이면 큰 키지만, 젊은 애들에게는 ‘음, 좀 크군’ 그 정도래.”

“일본 여자애들 작아도 움츠리지 말고, 니가 신고 싶어 하는 니하이 부츠(무릎 위 올라오는 부츠) 굽 있는 걸로 신고 당당하게 다녀.”     


일본 옥상(아줌마) 사이즈인 엄마. 댓까이 무스메^^로 딸 성공적으로 키웠다. 내 엄마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시집왔고, 이제 내 딸은 일본으로 유학 간다. 모녀 3대가 이렇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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