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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Jul 05. 2024

나의 가장 친한 친구, 딸의 결혼식

    

2022년 4월 16일 토요일은 딸의 결혼식 날이었다.

제주가 늘 천국 같은 날씨가 아니다. 도리어 쨍하게 맑으면서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이는 날이 흔하지 않다. 그러나 결혼식 날은 기온이 적당하고 바람도 없어 포근했다. 예식장은 제주 중문의 컨벤션센터. 나더러 고르라 했으면 어차피 코로나라서 하객도 100명이 안 될 것이니, 독채 스몰 웨딩 하우스를 골랐을 것인데, 사돈이 그쪽의 오래된 주주라서 그곳으로 정하길 원했다. 하지만 사진을 보니 입이 안 다물어질 정도라 나도 대만족 했다.     


5층 식장은 주례석 쪽이 바다를 향해 열려 있었다. 바다를 보는 예식장은 서울에서 온 하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인어공주를 닮은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내가 이제까지 본 딸의 모습 중에서 가장 아름다워서 바라만 보아도 싱글벙글해졌다.     

 

“오늘 울지 마.”

남편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내가 왜 울어, 이렇게 좋은 날.”

그렇게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너르게 자리 한 예식장의 의자 수와 하객 수가 얼추 맞아 붐비지 않았고, 예식 후 식장 바로 옆에서 뷔페 스타일로 한 식사도 업그레이드했더니 음식도 모두 신선했고, 12시에서 2시까지 시간을 넉넉하게 주어서 느긋하게 먹고 마시다 헤어졌다. 저녁에는 멀리서 온 손님들을 위한 피로연이 다시 한번 내 제자네 돼지고깃집에서 열려 밤까지 즐겁게 어울렸다. 나는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말을 많이 하고 웃은 날이었다.      


사위는 신랑 신부 맞절할 때, 90도로 고개를 숙이더니 갑자기 엎드려 큰절을 해서 모두 놀랐다. 

“내게 시집와 줘서 고마워요.”

하고 외치는 듯한 모습에 나도 덩달아 웃음을 터뜨렸다. 주례 없이 신랑 신부가 혼인서약서에서 서로의 각오를 읽어나가는 동안 여러 가지 기억들이 떠올랐다.  

    

4kg 넘게 태어나 건강했고, 어릴 때도 병원 가서 주사 맞을 일도 없던 딸이다. 이가 튼튼해서 치과를 두려워하지 않던 딸이다. 어려서부터 노래 잘하고, 목소리가 또랑또랑했던 딸이다. 그림도 잘 그리고 옷도 잘 입는 감각 있는 딸이다. 영어를 잘해서 내 일터에 학생들을 몰아주었던 딸이다. 늘 가장 친한 친구처럼 내 곁에 있었던 딸이다. 그 딸이 이제 아빠 엄마를 대신해 줄 한 남자의 손을 잡는다.     



아내의 얼굴에 매일매일 웃음꽃이 피도록 해주겠습니다.

남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사랑스러운 아내가 되겠습니다.

남편으로서 믿음을 주고 신뢰를 줄 수 있는 든든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아내로서 당신의 힘듦과 서러움슬픔과 진심을 이해하고 담아낼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같이 살고 싶은 남편이 되겠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같이 살고 싶은 아내가 되겠습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지금 자신 있게 다짐할 수 있는 뭉클한 말들이었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그제야 눈물이 나왔다. 이제까지 숱하게 베개를 적셨던 눈물이 아닌, 벅찬 눈물이었다. 

‘인생의 할 일 중 1/4쯤 해냈구나.‘

이제 딸의 임신과 출산을 도우며 늙어갈 것이다. 내가 내 머리를 한없이 쓰다듬어 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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