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노년 freshman
며칠 전 서귀포 천문대에서.
“무료입니다. 도민 입장료는 천 원인데, 올해는 58년생부터 무료입니다.”
연금을 제외하고, 노년의 혜택이 처음으로 내게 주어졌다.
‘나도 천원 내고 싶은데.’
묘한 심정으로 중얼대었다.
나는 올해 노년의 시작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방구석 지키는 늙은이로 살지 않고, 앞으로도 우리 부모들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부모 세대와 우리는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새로운가. 노년 신입생으로서의 각오를 짚어본다.
1. 아직까지 일한다.
우리 부부는 지금도 현역으로 일한다.
“아직도 월급 받고 일해?”
하고 친구들이 놀리지만, 건축가인 남편은 일흔 살이 될 때까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할 것이다. 나도 예전보다 규모는 줄었지만 영어 학원 선생으로서 학생이 단 한 명이 될 때까지 일하려 한다. 남편은 더 늙으면 골프장 잔디 관리를 하는 알바를 하고 싶어 한다. 골프를 좋아하고, 정원관리를 잘하는 자신의 특성을 살리고 싶어서이다.
우리는 연금이 단단하여 지금 일을 그만두어도 살 수 있지만, 일은 재미고 보람이다. 하지만 65세에 정규직으로 부부가 일 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원할 때 일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2. 큰 병이 없다.
매년 대학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는다. 몸이 조금씩 낡아서 약을 먹기도 하지만, 아직 아프지 않다. 건강검진은 병이 생기면 치료를 앞당길 수 있기에 투자비용 값을 한다고 믿는다.
내 남동생은 암이고, 친구 남편도 암이다. 그들은 암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의학은 그들이 수술받고, 항암치료를 마친 후 일상생활이 불편하지 않게 해 주었다. 이제 암은 당장 죽는 사형선고가 아니다.
3. 평생 공부한다.
우리 부모님은 고등학교까지 나왔는데, 그 시대에는 고학력이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대졸 이상이다.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우리 부모님들의 교육열은 ‘대학을 왜 가는지’ 의미를 따져보기 전에, 반드시 가야 하는 곳으로 여기게 했다. 무사히 대학에 들어갔지만, 게으르게 살며 젊음을 날로 먹다가, 마흔 넘어 대학원에 진학하며 제대로 공부했다. 그때부터는 공부가 재미있어서 늘 우등생이었다. 10년 전부터는 식물에 눈떠서 꽃과 나무, 정원 공부를 하고 조경기능사, 종자기능사와 유기농업 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올해는 스페인어를 공부한다.
“평생 해도 싫증 안 나는 것은 공부밖에 없어.”
제자들에게 이 말을 하면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러면 다시 진지하게 그 말에 대한 내 경험과 생각을 전해준다.
4. 여행을 자주 간다.
우리 부부는 한 철에 한번 짧은 여행, 1년에 한 번은 휴가를 모아서 일주일 이상 긴 여행을 간다. 나는 혼자서 세상의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파리에 혼자 일주일 여행을 다녀왔다. 매년 가을의 긴 여행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 해를 살았다.
그러다 건강에 자신이 없어져서 남편과 함께 다닌다.
“아무리 바빠도, 여행은 거르지 맙시다.”
언제 아파 눕게 될지 모르는 나이이다. 돌아다닐 힘이 있을 때 부지런히 다닌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것은 옛말. 풍경 하나하나,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과 글자들은 무시로 떠오르며 나를 새롭게 한다.
5. 디지털에 강하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잘 쓴다. 새 기술이나 기기에 대한 흥미도 높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 컴퓨터까지 모두 적절하게 잘 쓰고 있다. 아버지가 기술을 좋아하셨다. 늘 신기술을 찾아 일본 책을 읽으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컴퓨터도 아버지를 통해 처음 접했다. 인터넷은 초창기부터 여러 활동을 하며 살았다. 우리 세대는 아마 컴퓨터를 잘 다루는 첫 노인 세대일 것이다. 남편은 엑셀에 강자이고, 나는 교재 편집을 한 20년 이상 했더니 한글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쓴다. 물론 모든 기능이 다 필요하진 않기에 내가 필요한 것만 잘 쓴다. ‘스마트폰이 어려운 어르신을 위한 스마트폰 기초 강좌’는 우리에게 해당사항 없음!
6. 늘 외국어를 공부한다.
내 자매들은 미국과 독일로 유학 갔고, 내 딸은 일본 유학을 했다. 미국으로 유학 간 동생은 미국인과 결혼했고, 독일에 공부하러 간 동생은 한국계 독일인과 결혼했다. 집안에 국제결혼 한 부부가 많아서 할 수 있는 외국어가 여럿이다. 엄마도 결혼 전까지 일본에서 살아서, 부모님들은 늘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꼭 그 영향은 아니지만,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외국어 공부를 좋아했다.
우리가 고등학생 때는 소질이나 적성을 고려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더구나 나는 맏이라 내가 문과 적성인지 이과 적성인지도 몰랐다. 나는 언어를 전공했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아주 느지막이 깨닫게 되었다.
이제 몸의 세포도 늙고, 뇌세포도 줄어드는 노년이다. 저녁 퇴근길 노을을 바라보며,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어도 좋아.’
하고 내 인생에게 속삭인다. 인생의 속뜻을 좀 알 것 같으니, 어느새 죽을 날이 다가온다.
하지만 나의 노년은 올해부터 시작이다. ‘은퇴 후 10만 시간’의 핵심은 ‘평생 현역’이라 한다. 이 ‘현역’ 개념이 반드시 일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나에게나 세상에 많은 걸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주춤하지 않는다. 지금도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新 노년 프레시맨이다.
맺음말)
3월 13일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두 주 동안 브런치를 탐독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꾸려갈지 혼자 골똘히 생각했지요.
후배가 그러네요.
“골프나 자전거를 하다 보면 코치들이 힘 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편하게 쓰셔도 돼요.”
그 말에 부담감을 버리고, 오늘 첫 글을 보냅니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차차 더 보태어 내보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