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졸혼해야 할까, 각거와 심정적 졸혼도 있는데

by 꼬낀느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 선생은 내 대부의 아버지였다. 어릴 적부터 선생의 생활을 듣고, 커다란 사진 잡지(아마도 Life?)에서 그 작지만 꼿꼿한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때 내 눈길을 끌었던 단어는 해혼(解婚)이었다. 다석의 해혼은 ‘부부간에 혼인 생활은 하되 성생활은 끊는 것이다.’ 나는 그 뜻보다 해혼이라는 말이 경이로웠다. 혼인이라는 사슬에서 서로를 풀어준다는 의미가 너르고, 크게 다가왔다. 다석이 해혼 선언을 한 것은 무려 1941년이었다.


졸혼이란 말이 언젠가부터 자주 들렸다. 졸혼의 유래를 알고 싶어서, 그 말을 만들어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의 『낡은 결혼을 졸업할 시간, 졸혼 시대 (2004년)』를 읽었다. 감히 이 책은 졸혼을 이 시대에 결혼이 유지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로 본다.

더 이상 ‘서로는 서로의 것’이라는 암묵적 동의를 무너뜨리고, 그래도 역시 둘이 살아가겠다고 선택하는 것이다. 서로 방해하지 않고 독립하여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쿨하고, 세련되게 들린다.)

딸이 다 크면 우리 부부는 가끔 만나 ‘아, 오랜만이야!’라고 인사하는 사이가 될지도 몰라요.

(어쩌면 많은 부부의 소망이 아닐까.)

틀에 박힌 결혼을 졸업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뜻의 졸혼, 저는 이 말에 상쾌함을 느낍니다.

(상쾌함이라. 저는 복잡함을 느낍니다.)

(* 색이 다른 말은 책에서 인용한 문장입니다. - 글쓴이)


딸이 서른 살 무렵 결혼하면서 말했다.

“지금은 100세 시대니까, 우리는 무려 70년 같이 살아야 해.”

맞다. 이십 대 중반에 결혼한 우리는 이혼이나 재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이미 한 사람과 40년을 살아왔다. 일부일처제를 벗어날 수 없기에, 결혼의 모습은 다양해질 수 밖에 없다. 40년도 지겨운데, 어찌 70년을 한 사람과 해로할 수 있겠나. 결혼제도는 좀 더 똑똑하게 진화해야 한다.



60세, 별거 중인 남편에게 물었다.


“어떻게 별거하게 되었나요?”

아내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가 자식을 다 키웠어요. 돈 문제, 어머니 문제로 시간이 갈수록 불화가 잦아졌어요. 5~6년 전에 드디어 아내가 소름끼치더군요. 이혼은 아이들의 결혼 후로 미루기로 합의 보고, 아내는 친정으로 갔습니다.


“졸혼 합의서를 쓰지 않고 별거 중이면,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합의서 없이도 서로 간에 그 정도 믿음은 있습니다.


“아내가 아직 젊은데, 남자친구가 생겨도 질투하지 않나요? 기분 나쁘지 않을까요?”

도리어 축하할 일이지요. 가족인데. 잘 살기 바랍니다.


“이혼한 후 재혼할 생각인지요? 아니면 다시 합칠 가능성도 염두에 두시나요?”

또 결혼이라니. 전혀 그럴 생각 없습니다. 살다가 마음에 맞는 사람이 있으면 동거는 할 수 있겠지요. 아내와 다시 합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그쪽도 그럴 겁니다.


“지금은 어머니께서 식사를 돌보아 주시지만, 나중엔 혼밥을 해야 합니다. 늙어서 혼자 쓸쓸하게 먹게 되겠죠. 밥은 할 줄 아세요?”

밥하는 게 뭐 어렵나요? 요즘 일인가구를 위한 반찬들이 얼마나 잘 나오는데요. 주위에 저처럼 혼자 사는 남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간혹 술독에 빠져 살기도 하지요. 하지만, 대부분 혼자서도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그의 말들을 들으며, 아내에게 남자친구가 생겨도 축하해줄 정도의 사이라면, 졸혼하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혼은 이혼 전 과정일 뿐이다.


54세, 아내와 각거(各居) 중인 남편에게 물었다.


“혼자가 편하다고 했는데, 쓸쓸하지는 않나요?”

솔직히 편합니다. 일 때문에 나는 서울에, 아내는 아이들과 지방에 살고, 주말에는 집에 내려갑니다. 아내는 서울에 와도 제 살림을 건드리지 않아요. 저는 제 식대로 모든 살림을 정돈해놓고 살고 있어서, 아내는 터치 못해요, 저도 은근히 손대는 게 싫어요.

아내는 주말에 꼭 집에 오기를 원해요 제가 가면 도움이 되니까요. 전 요리도 하고,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는데, 그게 꼭 아내를 위해서 한다기보다 제가 재미있어서 해요. 지금 혼자 서울에 사는 주중의 날들이 제 인생의 마지막 황금기라 여깁니다.


66세, 심정적 졸혼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가 잦은 여행이나, 일로 밤늦게 집에 오면, 남편은 불만이 없나요?”

내가 60%쯤의 60대 부부들이 심정적 졸혼 상태라고 했지. 그건 아내의 입장이야. 최근에 여자 친구들이랑 단체 유럽 여행을 갔고, 제주도에도 자주 며칠씩 휴가 가잖아. 남편은 흔쾌히 받아들여. 그는 선비 타입이고 누구를 간섭하거나 그런 것 일절 없어. 우리는 상호 존중해. 물론 내가 내 생활을 잘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아이들 다 잘 커서 결혼했으니, 불만이 없는 것 같아. 내 생각에 나이 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의 경제적 독립이야. 나는 여행 다니면서 남편에게 지원받은 적 없어. 집에서 남편은 하숙생처럼 살지만, 나는 ‘심정적 졸혼’이 아니라 ‘실용적 졸혼’이라 생각해. 굳이 졸혼이나 이혼할 필요는 못 느껴.

평생 가족을 먹여 살렸던 남편은 마누라 안 때리고, 바람 안 피우고, 큰돈 안 날리면 졸혼 당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60대의 한국 여자들은 졸혼을 고려하는 것인가?

가장 큰 이유는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 남편 때문이다. 흔히 우스개로 ‘삼식이’인 남편들이 은퇴 후에도 돈 벌 때처럼 하루 세끼 차려주는 밥만 먹는다면 늙은 아내들은 고단해진다. 친정 식구들이나 친구들과의 여행으로 가끔 남편에게서 도망가는 게 유일한 해방이다.


62세, 남편이 은퇴하고 부부 둘만 사는 아내에게 물었다.


“그럼, 만약 남편이 스스럼없이 부엌에 들어가서 요리도 해주고, 설거지도 하고, 집안 살림 도와주면, 졸혼이나 이혼 생각 안 할까요?”

당연하지요. 내 남편 다른 점은 불만 없어요.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고. 나는 젊어서부터 남편을 뇌섹남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는 집안에서 존재만 하는 사람이에요. 집에 있을 때는 방에 들어가서 자기 할 일만 하지요. 나는 우리를 쇼윈도 부부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무리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도 내 몸이 힘든데야. 그러니 졸혼 생각도 해보지요.



졸혼의 형태

꼭 졸혼해야 할까. 한집에 살면서도 아내와 남편의 자아를 존중해주는 생활은 불가능할까. 굳이 졸혼이나 이혼이 아니어도 더 나은 결혼 생활이 있지 않을까.

다석은 해혼 후에도, 한 방에서 아내와 별거했다. 한집에 살면서 서로 각자의 생활을 존중해주며, 상대의 여행이나 외출의 자유를 보장해줄 수 있다. 문화평론가 김갑수처럼 졸혼이 아닌 각거의 형태도 있다. 정답은 없다. 이제 결혼은 모두 제각각 편한 형태를 택해서 살아가야 한다. 단, 상대를 풀어주겠다는 성숙한 ‘해혼’ 의식을 갖고 있다면 결혼 생활이 좀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맺음말)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나와서, 같이 늙어가는 친한 남자 후배들이 많다. 글을 쓰면서 그들의 솔직한 말(“누나에게만 하는 말인데.” ㅎㅎ)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고맙다. 내 이웃들.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지난 글이 조회수 만을 육박했다. 나는 거꾸로 사람들의 졸혼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첨예한가를 보았다. 그래서 2편을 쓰는데 엄청 부담 느꼈다. 글무게가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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