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졸혼도, 이혼도 하지 않는다 (2)

by 꼬낀느


어제 오래간만에 돌이켜 본 과거의 아픈 기억들에 관한 글을 쓴 후 온몸이 아팠다. 나는 이제 오늘이 즐겁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과거도, 미래도 멀리 두고 싶다. 그래서 빨리 글을 마무리한다.


만 20년 전에 이혼 일기를 썼다. 두 달 전 브런치에 들어와서, 많은 이혼 일기들이 올라온 것을 보고 놀랐다. 그 글들을 꼼꼼히 읽었다. 예전과 현격히 달라진 점은 이혼 사유가 전적으로 부부 둘 사이의 문제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혼은 여전히 전업주부에게 녹록하지 않은 상황을 던져준다. 나는 마흔 살이 넘도록 전업주부로 살아오다, 아무 준비 없이 덜렁 이혼했다. 나 자신이 경제적, 심리적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혼하여 너무 무서웠고, 독립해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실패를 했다.

그래서 이혼하려는 여자에게는, “먼저 경제적 능력을 갖춘 후에 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권했다.


다시 그때를 돌이켜 봐도 이혼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때 그 선택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아마 이혼하지 않고 계속 살았다면, 오십을 넘기면서 졸혼이나 이혼했을 것이다. 그게 내 한계였으리라.




나는 이혼 후 공부했고, 독립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내 천성이 직업이 되어 뒤늦게 성공했다. 여유가 생겨 압구정으로 이사도 하고, 자식도 거기서 학교와 학원을 보냈고, 유학도 보냈다.


재혼은 딸이 유학 가고 난 후 했다. 혼자 사는 게 외롭고 싫었다. 바쁘게 살다 명절이 되어 아이들도 아빠에게 가고 나면, 나 혼자 보내는 연휴가 끔찍하게 적막했다. 그 시간을 아줌마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이해는 하지만, 내겐 마치 잔인한 농담같이 들렸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막내였고, 아이들은 미국에서 공부 중이었다.

“나 횡재했어. 애들도 없고, 거기다 막내야!”

막 자랑하고 다녔다.

모두의 축복 속에 가족과 가까운 이들 몇십 명만 초대하여 참 아름다운 예식도 했다. 행복의 정점에 있었던 2009년 여름이었다.


그러나 오십이 넘어 만난 사람들이 서로 적응하기 쉽겠는가. 사랑해서 결혼했어도, 몇 년 동안 갈등을 겪었다. 어느 나이의 이혼이나, 이혼 후, 그리고 재혼은 결코 곁에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한 때는 농담 삼아 이런 말도 한 적 있다.

“이혼 후에 기울인 노력의 반만 이혼 전에 했어도.”


이제 우리 부부도 재혼 십사 년이 지났다. 둘이서 세 명의 자식을 유학시키느라 집만 달랑 남았을 때 아이들 공부가 끝났다. 자식들은 제 나름의 자리에서 일하고 있고, 우리는 둘만 이 산속에 산다.


십 년 전 구로구 항동에 살 때 집 앞에 푸른수목원이 있었다. 수목원에서 식물에 눈을 뜨고, 함께 꽃과 나무, 먹거리들을 기르면서 우리는 평화를 찾았다. 부부가 취미가 같다는 것은 관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정원에서 우리는 사이좋은 동료가 된다. 각자 말없이 일을 찾아 하며, 서로의 그을린 얼굴과 땀으로 더러워진 옷에 웃기도 한다.


나는 이제 졸혼도, 이혼도 하지 않는다.


함께 저녁 먹으며 그날 하루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어 기쁘고, 그가 약속이 있는 오늘 같은 저녁에는 수업을 마치고, 마라탕집에서 혼자 느긋하게 먹을 수 있어 만족한다.


며칠 비가 왔다. 무섭게 올라오는 잡초들은 내 일거리이다. 험난했던 과거를 덮고, 내 발밑과 오늘 할 일에만 몰두하는 날들이다. 이렇게 계속 늙어가기를 소망한다. 보이차를 끓는 물에 슬쩍 헹궈 내고, 진하지 않게 한 잔 마신다. 나는 이렇게 오늘을 누리며 살 거다. 어떻게 얻은 평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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