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슬기로운 컴퓨터 생활 (1)
남편이랑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처음 컴퓨터를 만났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해줬다.
“당신, 이 이야기 글로 좀 써보면 어때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썼고, 지금까지 무려 40년 가까이 컴퓨터와 살아온 세대잖아요.”
그가 바로 살아있는 컴퓨터 사용자의 역사였다. 그래서 그가 이야기를 써주면, 내 문장으로 고치고 기록한다. 여기는 부부 브런치 스토리입니다.
대학에서 포트란(FORTRAN)과 코볼(COBOL)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다. 이해는 잘 못했지만, 학점을 취득하면서 막연히 컴퓨터를 이해하게 됐다. 그러다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1987년 7월 내 인생 첫 퍼스널 컴퓨터를 만났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부서 배치를 받고 근무를 시작하니 우리 부서에는 두 대의 컴퓨터가 있었다. 부서장의 옆 빈자리 기둥 뒤에 숨어 있던 삼성 컴퓨터, 또 같은 부서 상사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세운상가표 조립 컴퓨터 두 대였다. 조립 컴퓨터는 개인이 구매해서 사용하는 것이라 언감생심이었고 삼성 컴퓨터는 부서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라 개인이 사용 가능했고, 도트프린터가 연결되어 있었다.
담당업무 자체가 계산기를 항상 사용해야 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컴퓨터에 지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으나, 당시에는 신입사원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문서를 작성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시기였다. 부서원이 컴퓨터를 사용해서가 아니라, 자리는 비어 있었으나 계산기를 들고 일해야 하는 마당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눈치 보였기 때문이다.
입사 당시는 토요일에 오전 근무를 했기에, 모든 직원이 퇴근하고 난 토요일 오후가 나 혼자 컴퓨터를 만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컴퓨터는 도스(DOS: disk operating system) 환경에서 플로피디스크를 넣고 명령어를 입력해 부팅하는 시스템이었다. 에러가 있을 때는 부팅도 못하고 오후를 통째로 날리기도 했다.
그렇게 퍼스널 컴퓨터를 처음으로 익혀갈 무렵 부서에서 해외 근무 지원자를 모집했고 나는 입사 4개월 만에 해외 근무를 지원하여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에 있는 현장에 근무하게 되었다. 긴 비행 후에 비행기 트랜스퍼를 위해 야간에 사우디 다란에 도착했을 때 활주로에서 올라오던 그 뜨거운 열기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현장에는 IBM 8088(1981년 출시), 80286(1984년 출시) CPU를 가진 컴퓨터가 약 2인 1대로 배치되어 있었다. 부서에는 총 여섯 대 정도의 IBM 컴퓨터가 있었다. 나는 서울에서 토요일 오후를 컴퓨터 공부에 투자한 덕에, 업무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지장 없었다. 이미 사우디 현장은 발주처 및 대관 업무 시 모든 서류가 컴퓨터화되어 있었으며 자료 제출도 프린터 출력물로 대체되어 있었다. 지금도 IBM 80286에 연결된 도트프린터에서 출력물이 나오던 소리가 가끔 생각난다.
내 일은 업무 자체가 연산프로그램을 써야 한다. 현재는 연산프로그램으로 엑셀을 쓰고 있지만, 그 당시는 1979년에 개발되었던 비지칼크(VisiCalc)라는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을 초기에 사용하다, 이후 1983년 출시되었던 로터스(Lotus)를 사용했다.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말도 안 되는 불편함이 있는 프로그램들이었지만 그래도 스프레드시트의 연산기능은 훌륭해서 많은 업무의 짐을 덜어 주었다. 물론 당시 운영체계는 모두 도스였기 때문에 도스 바탕에서 부팅하고 프로그램을 동작시켜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다.
주말이면 리야드 컴퓨터 샵에 가서 새로이 프로그램이 나온 것이 있나 살펴보거나 (플로피디스크로 판매), 사무실에 출근해서 IBM 컴퓨터를 뜯어보거나 고장 난 것을 고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약 1년이 지나자 IBM 컴퓨터는 내 업무의 전부를 처리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컴퓨터는 사무실에서나 집에서나 언제나 내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