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특수교육은 통합교육이었다
A 선생님의 죽음 이후 들었던 물음을 좇다가 알게 된 것이 있다.
내 지난 24년 동안의 특수교육과 A 선생님의 특수교육에는 차이가 있었다.
A 선생님의 교육에는 희망이 있었다.
나는 교육적 문제들을 극복해 왔고, 선생님은 해결해 왔다.
어려움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는 것이었다.
A 선생님은 통합학급 담임 교사, 학부모,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 교육청에 적절한 지원을 요청했다. 지원인력 예산을 받아 활용하였고, 과원인 상황에서 학생의 학교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일반 학급 학생을 특수학급으로 재배치하였다. 재배치를 하지 않고 일반 학급을 유지하며 통합학급 담임 교사나 학부모와 함께 부담을 나눌 수도 있었다. 그렇게 1년만 버티면 후년에는 증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의 학교생활이 우선이었다. 아마도 A 선생님이 생각한 교사의 책임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통합학급에서 이른바 도전행동(자신이나 타인의 신체적 안전을 심각하게 해할 가능성이 있는 행동)으로 교육 활동 참여가 제한적이던 학생을 위해, 어느 날은 5분, 어느 날은 15분,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통합학급 수업 참여를 지속해서 시도하였다.
동시에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행동중재지원단의 컨설팅도 신청하여 사회 참여를 끌어내려고 노력하였다.
나 역시 과원 학급을 운영하였지만, 주 29시간의 수업을 하면서 어떻게 이 많은 지원과 업무를 추진할 수 있었는지 안타까울 정도다.
선생님 사망 이후에 학교에 방문하여 특수학급 교실을 둘러보았다. 교실 앞 작은 화분에는 바질이 잘 자라고 있었다. A 선생님께서 직접 심고 기르던 것이란다. 햇살 따스한 곳에 둔 화분 속 바질은 반질반질 윤기를 내며 꼿꼿하게 자라고 있었다.
햇살과 바람과 물을 주고, 정성으로 키웠을 그 화분을 보고 있자니, 선생님의 아이들 생각이 났다. 아이들도 그렇게 잘 키우고 싶었구나. 선생님은 아이들이 어디서든 소외되지 않고, 당당하게 참여할 수 있게 정성을 들이고 있었구나 싶었다. 바질을 보면서 눈물이 흘렀다.
ㄱ초 선생님의 죽음 앞에 나는 다시 생각한다.
선생님의 노력, 특수 교사로서 통합교육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였던 2024년의 흔적들을 보며 나를 돌아본다.
지금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교사일까?
나는 아이들의 삶을 지원하고 있는가?
다시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