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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Mar 26. 2022

7화. 걱정은 잊고, 여행!

이탈리아 밀라노 여행


"예상치 못했던 일이 주는 즐거움.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여름의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던 행복의 찰나들."
(백수린, <<여름의 빌라>>, <흑설탕 캔디>, 문학동네, 2020, 70 p.)




 여행의 절반이 훌쩍 지났다. 벌써 여행 12일 차였다. 걱정했던 3주 배낭 여행은 나름대로 잘 흘러가고 있었고, 힘들었던 지난 기억은 자연스레 예쁜 추억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여행이 잘 풀리는가 싶던 그때,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나타났다. 바로 여행 경비가 떨어진 것이다. 파리에서 숙소를 급히 바꾸느라 예상치 못한 지출이 컸고, 이탈리아에 맛있는 음식이 많다 보니 식비로도 돈을 꽤나 썼다. 앞으로 일주일은 더 여행해야 했고, 심지어 스페인 숙소는 결제하지도 않은 상태였는데 수중에는 십만 원도 남아 있지 않았다. 70유로밖에 없는 통장을 보며 당황하다가 밀라노에서의 하루가 어영부영 지나갔다.


‘여행 책에 돈 걱정에 대한 이야기는 안 쓰여 있었는데…'


 한숨을 크게 쉬고 한국 계좌 앱을 열어서 갖고 있는 돈을 확인했다. 교환학생 오려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라 어느 정도 남기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다. 큰맘 먹고 600유로, 약 80만 원 정도를 네덜란드 계좌로 송금했다. 행 경비를 아끼려고 캐리어 대신 배낭을 메고, 일반 항공 대신 저가 항공을 타고, 호텔 대신 민박을 예약하고, 대중교통 대신 1시간씩 걸어 다녔는데도 돈이 부족했다. 여행이란 건 기본적으로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거였다. 여행에 낭만이 있으려면 돈을 아주 많이 모아야 한다고 친구에게 불평을 늘어놓은 후에 돈 생각은 그만하기로 약속했다.


마음과 달리 감미로운 밀라노 거리




 그래도 다행이었던  밀라노는 가차 없는 현실세계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히 유혹적인 도시였다. 르네상스 회화가 가득한 브레라 미술관도, 해가  때면 분홍색으로 빛나는 두오모 성당도, 눈물 나게 맛있는 젤라토도 돈을 흥청망청 써도 괜찮을 것만 같은 황홀감을 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이었던  코모 호수였다. 코모는 밀라노에서 기차로  시간 정도 걸리는 작은 도시로,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경계쯤에 있다. 밀라노에 가면 코모 호수를  보고 오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전해 듣고는 즉흥적으로 코모 호수를 찾아갔다. 계획은 지켜지지 않을  비로소 완성되는 법이다.  기대 없이 가서 그랬는지 호수는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웅장한 브레라 미술관



 그날 오전은 계속 흐렸는데, 우연히도 코모 기차역에 내릴 때쯤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더니 호수 앞에 다다르자 파란 하늘이 맑게 빛났다. 하늘과 호수 사이를 가르는 산이 없었더라면 어디가 호수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이 안 갈 만큼 파랗고 파아란 광경이었다.


‘이러려고 여행하는 거지’


아름다운 코모 호수



 전날까지만 해도 돈이 부족하다며 울상이었는데,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자연 앞에 서니까 내가 했던 고민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나는 참 아등바등하며 살아왔는데, 이곳은 언제나 맑고 푸르구나.'


 호수는 가만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인데, 먼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이 호수를 보기 위해 찾아온다. 가만히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빛나는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쓸데없는 걱정이 가득찰 때면 코모 호수 사진을 꺼내 볼 것이다. 모든 걸 다 품고 정화해줄 것 같이 맑은 호수가 내 걱정도 모조리 가져가 씻겨줄 것이다.


작은 관람차에서 찍은 코모 호수




 코모에서 다시 밀라노로 돌아와 두오모 성당을 보러 갔다. 밀라노 대성당이 있는 두오모 광장에는 여전히 크리스마스 마켕시 열려 있었고, 반짝반짝 빛나는 거대한 트리도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2주가 지났는데도 천진난만한 두오모 거리를 보면서 나도 같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겼다. 백색 대리석의 밀라노 성당도 아직 크리스마스를 기뻐하는 듯 스스로 밝은 빛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밀라노 성당은 피렌체 성당과는 다르게 하얀 대리석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그란 돔 없이 여러 개의 정교한 첨탑이 높이 세워져 있다. 가톨릭 성당 중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고 하는데, 정말 이 앞에 서면 사람이 아주 작게 느껴진다. 분명 사람이 만든 건축물인데도 말이다.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며 아름다운 성당 사진을 눈에 가득 담았다. 다음 날 밀라노를 떠나기 전에도 들려 햇빛에 반짝이는 성당을 마지막으로 구경했다. 다채로운 색깔 없이 그저 하얀 대리석만으로 이렇게 화려한 빛을 내다니. 햇살 때문인지, 대리석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즐거운 여행자의 시선이어서 그런지, 밀라노 대성당은 신의 선물이라고 느껴질 만큼 아름다웠다.


분홍색 밀라노 두오모 성당



 밀라노에서의 2박 3일은 짧았지만, 그래도 평생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광경을 많이 담아갈 수 있었다. 스페인으로 넘어가기 직전, 이탈리아에서의 6일 간 여행은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손꼽을 만하다. 비록 다리가 퉁퉁 붓고 옷은 다 해졌으며 어깨는 뻐근했지만 여행의 순간순간은 즐겁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져서 힘들지만 그래서 더 즐거운 법이다. 걱정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 같은 순간이 매번 펼쳐지는 게 여행이니까.


이탈리아를 떠나며




13일차 : 숙소 - 브레라 미술관 - 코모 호수 - 두오모 광장 - 숙소

14일차 : 숙소 - 두오모 성당 - Casa Lodi - 바르셀로나 이동 - Restaurant Bodega Joan - 바르셀로나 숙소


- 여행 일정 -

프랑스 파리 5박 (12/24~12/29)

프랑스 니스 2박 (12/29~12/31)

이탈리아 베니스 1박 (12/31~1/1)

이탈리아 피렌체 3박 (1/1~1/4)

이탈리아 밀라노 2박 (1/4~1/6)

스페인 바르셀로나 3박 (1/6~1/9)

스페인 마드리드 2박 (1/9~1/11)


- 다음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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