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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Mar 24. 2022

6화. 여행은 피노키오처럼

이탈리아 피렌체, 피사 여행


"오늘은, 피리 소리를 들으러 갈 거야. 내일은 학교에 가고 말이지. 학교에 가는 건 항상 시간이 있어!” 마침내 그 말썽꾸러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바람처럼 달려 길 아래로 내려갔지요.
(카를로 콜로디, <초판본 피노키오>, 이시연, 더스토리, 2021, 48쪽)

 



 이탈리아에 살았다는 한국인 친구를 만났다. 친구라기보다는 선생님에 가까울  같은데, 어쨌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우린 처음 만난  함께 피사를 여행했고, 피렌체 현지 맛집에 가서 티본스테이크를 왕창 먹었다. 생소한 장소에서 뜻밖의 인연을 만나는 , 내가 꿈꿔왔던 여행의 묘미였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탈리아 친구를 처음 만난  한인 민박이었다.  친구는 오후에 티본스테이크를 함께 먹으러  사람들을  있었다. 자신이 피렌체로 여행  때마다 가는 현지인 맛집이 있으니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티본스테이크로 인연을 맺은 우리는 그날 하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보냈다.


아름다운 피사



 우리가 가장 먼저  여행지는 피사의 사탑이었다. 피렌체에서 피사는 기차로 30분이면   있다. 우리는 만난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어쩐지 익숙한 느낌에 통성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수다를 떨었다. 한참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 앞에서도 입은 쉬지 않고 떠들었고, 동시에 잔망스러운 포즈를 취하며 카메라 셔터를 수도 없이 눌렀다. 사탑이 너무 많이 기울어 있다는 ,  무너질  틀림없다는 , 사람들이 많아 배가 고프다는  우리는   아닌 것들로 호들갑을 떨었다.   시간 정도 피사를 돌아다니며 웃고 떠들었더니 금방 피곤해진 우리는 돌아오는 기차에서 모두 곯아떨어졌다.


곧 쓰러질 것 같은 피사의 사탑




 숙소에 들려 잠시  후에 다시 모여 티본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 이탈리아 친구가 자주 오던 곳이라더니 정말 가게 주인이 친구를 알아봤다. 둘이 이탈리아어로 뭐라고 대화를 나누더니 갑자기 살라미  그릇이 서비스로 나왔다. 그리고 하우스 와인  병도! 우리는 좁은 가게에 앉아 볼이 빨개지도록 와인을 마셨고 턱이 아플 정도로 스테이크를 씹으며 만찬을 즐겼다.

 

티본 스테이크



 취기가 올라서인지 니면 여행 중이어서 그랬는지, 평소였으면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의 인생을 함께 논했다. 이탈리아 친구는 나보다  20년은  살았지만 친구가 되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같은 , 같은 숙소에서, 같은 장소인 피렌체를 여행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단단한 연결고리가 되어 주었다.

 여행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오던 사람들도 하나로 묶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일상에서 아주 벗어나는 경험들은 우리를  솔직하게 만들기도 한다. 잊고 있던 여행의 중요한 특징이 그제야 생각났다. 내가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선택한 것도, 이렇게 배낭을 메고 여행을 하는 것도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여행의 묘미를 깨달으면서 한층 기분이 좋아졌지만, 너무 무리한 탓에 다음날까지 두통이 심하게 왔다.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는 기쁨에 평소보다 많은 양의 와인을 마시고 다리가 아픈지도 모른 채 걸은  원흉이었다. 저녁을 먹고 산책할 때까지만 해도 마냥 행복했는데 숙소에 돌아와 씻고 나니 턱도 아프고 머리도 아팠다. 잠도   정도로 아파서 급하게 약을 먹고 겨우 잠들었다.


문제의 와인




 다음  이탈리아 친구는 먼저 피렌체를 떠났고 나는 피노키오를 찾아 돌아다녔다. 피렌체는 피노키오 책의 배경지여서 곳곳에 피노키오 인형들을 많이 팔았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수제 나무 인형 가게에 들렸다. 평소에도 피노키오를 좋아하던 나는 그곳에서 한참을 벗어나지 못했다. 커다란 꼭두각시 피노키오도 있었고, 피노키오가 춤을 추는 오르골도 있었고, 피노키오와 요정이 새겨진 자그마한 나무 자석도 있었다.


피노키오 오르골



 실제 피노키오 인형을 보니 정말 살아 움직일 것만 같았다. 모두가 잠든 밤, 신비한 기운이 흐르는 날에는 나무 인형이 삐그덕 대면서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만약 내게 찾아온다면 나는 말썽꾸러기 피노키오를 엄하게 혼내 줘야지. 낯선 사람이 사탕을 준다 해도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아야지. 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코가 긴 피노키오가 새겨진 나무 자석을 샀다.


피노키오 인형 가게



 피노키오 원작은 사실 꽤나 섬뜩하다. 피노키오는 강도에게 붙잡혀 불에 타 죽을 뻔도 하고, 나무에 목이 매달리기도 한다. 아이들을 당나귀로 변하게 하고는 강제 노동을 시키는 아동 학대의 장면도 나온다. 게다가 피노키오는 그렇게 사랑스럽지도 않다. 요정과 귀뚜라미가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고 매번 스스로 위험 속으로 들어간다.




 답답하고 무서운 이야기인데도 내가 피노키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원래 인형이었기 때문이다. 살아 숨 쉬는 것이 처음인 피노키오에게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재밌었을까? 이미 지구가 지겹도록 익숙한 나에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온갖 예술품이 가득한 피렌체 거리도, 이탈리아 특유의 둥그렇고 기다란 나무들도, 붉게 물들어 있는 거리의 지붕들도 피노키오는 모두 신기하고 궁금했겠지. 피노키오가 매번 속임수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에게는 모든 게 재밌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았지만, 유럽 여행을 하는  언제나 피노키오였다. 그냥  있는 나무도, 옛날부터  자리에 있던 집들도,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운하들도 모든  아름다웠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매번 다른 곳에서 자고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마치 피노키오처럼 새로운 세상에 태어나는 느낌이었다. 피노키오처럼 속임수에 넘어가 힘든 일을 겪기도 했지만, 모험은 언제나 그런 법이니까. 그래서 앞으로 남은 여행이 이제는 기대가 되었다. 실망하더라도 괜찮았다. 여행을 기다리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피노키오가 다녔을 법한 언덕에서의 피렌체 야경




11일차 : 숙소 - 피사의 사탑 - 티본스테이크 식당 - 미켈란젤로 광장 - 숙소

12일차 : 숙소 - 피렌체 대성당 - 폼피 티라미수 - Bartolucci - 밀라노 이동


- 여행 일정 -

프랑스 파리 5박 (12/24~12/29)

프랑스 니스 2박 (12/29~12/31)

이탈리아 베니스 1박 (12/31~1/1)

이탈리아 피렌체 3박 (1/1~1/4)

이탈리아 밀라노 2박 (1/4~1/6)

스페인 바르셀로나 3박 (1/6~1/9)

스페인 마드리드 2박 (1/9~1/11)


- 다음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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