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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Mar 27. 2022

8화. 드디어 완벽한 여행을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

"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라 마르 la mar'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바다를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스페인어였다. (…) 하지만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고, 큰 호의를 베풀어주거나 거절하는 어떤 존재로 생각했다. 만약 바다가 사납고 악한 행동을 한다면 그건 바다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리커버 특별판)>, 이인규, 문학동네, 2021, 71쪽)



 

 스페인. 빨간색과 노란색의 뜨거운 열정을 가진 나라.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안토니오 가우디 등 전 세계를 사로잡은 예술가들이 탄생한 나라. 영원히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살아 숨 쉴 돈키호테의 나라. 그리고 하루 종일 먹고 마시는 미식가들의 나라. 유럽여행 코스에서 결코 빠지는 법이 없는 스페인은 교환학생을 오기 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나라였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바르셀로나 공항 기차역



도착하자마자 우선 파에야부터 먹어야지.’

‘그리고 샹그리아도 먹어야지’

‘근데 일단 호텔에 좀 누워 있어야지’


 워낙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많은 스페인이라 기대하던 게 한 바가지였지만, 무엇보다도 스페인 여행이 가장 기다려졌던 이유는 숙소 때문이었다. 지금껏 다닌 여행 중 가장 좋은 숙소인 5성급 호텔로 예약했다. 3박에 280유로, 그러니까 하룻밤에 12만 원 정도 하는 호화로운 호텔이었다. 3명이 나눠 내니까 1인당 4만 원 언저리 하는, 가난한 대학생에게는 사치스러울 정도의 숙소였다. 가성비만 따지는 여행을 하다가 갑자기 비싼 호텔을 예약한 이유는 바르셀로나에서는 꼭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충 저렴한 숙소를 골랐다가 파리 민박의 아찔한 경험이 되풀이될까 봐 애초에 안전하고 좋은 곳으로 숙소를 잡았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부터 호텔의 푹신한 침대에 누울 상상을 했다. 드디어 편안한 여행을 하겠다는 생각에 두근거렸다. 숙소는 ‘에이샴플라’라고 하는 신시가지에 있었는데, 정말 새로 만들어진 구역인 걸 단박에 알아챌 수 있을 만큼 거리가 깔끔했다. 모든 길은 정사각형 블록으로 반듯하게 나뉘어 있었고, 가우디의 도시답게 독특하고 웅장한 건물들도 많이 보였다. 유럽에서는 처음 보는 반듯한 도시에 놀란 친구와 나는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이곳이 좋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호텔 내부는 당연하게도 넓고 깔끔했고 침대는 바로 잠에 빠져들 수 있을 정도로 아늑했다. 숙소 하나만으로 여행의 질이 아주 좋아질 수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번쩍번쩍한 숙소



 어느 정도 쉬고 스페인의 대표 음식, 파에야를 먹으러 갔다. 너무 배고픈 탓에 대충 구글맵을 보면서 찾아간 음식점이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맛있었다. 먹물 파에야에는 새우, 문어, 오징어, 홍합, 조개 등 각종 해산물이 들어가 있어서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났고, 까맣게 볶아진 밥은 고소하면서 달콤한 맛도 느껴졌다. 파에야와 함께 주문했던 샹그리아는 짭짤한 바다 냄새를 상큼한 과일 향으로 덮어주었고, 뜨거운 파에야의 열기를 식혀 주기도 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내고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동안 매일 파에야와 샹그리아를 먹겠다고 결심했다.


먹물 파에야




 오래간만에 아주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났다. 기분 좋은 아침이라고 생각하며 커튼을 걷었는데 곧바로 방 안이 온통 환해졌다. 잠깐만 빨래를 널어 두어도 바싹 마를 것 같이 해는 가까이에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었다. 콧노래가 나올 수밖에 없는 날씨였다. 상쾌한 마음으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얼른 준비를 마치고 바르셀로나 도심으로 향했다.


 바르셀로나 해변에 가까워질수록 거리는 반듯함과는 멀어졌지만, 골목골목이 그런대로 매력이 넘쳤다. 언덕길에 맞춰 삐뚤빼뚤 지어진 집들과 강렬한 햇살을 피하기 위해 파라솔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 가고 있는 방향을 헷갈리게 만드는 수많은 갈림길들. 목적지 없이 바르셀로나의 거리를 탐험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눈부신 바르셀로나



 해가 질 때쯤 바르셀로네타 해변에 앉았다. 모래사장 끄트머리의 낮은 돌 위에 앉아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스페인에서 새로 합류한 친구의 근황도 듣고 우리의 이탈리아 여행기도 들려주고, 지나가는 갈매기를 관찰하기도 하고 이따 먹을 저녁 메뉴를 회의하기도 했다. 그러다 해가 지는 하늘을 한참 바라보았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어디일까. 감히 내가 정의할 수 있을까. 어느새 깜깜해진 하늘과 빛을 잃은 바다는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되었고, 나는 그 까만 면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걱정까지 그곳에 두었다. 밤이 되어 켜진 가로등 아래의 주황빛 모래사장과 철썩이는 파도는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얼굴도 달래주었다.


푸른 바르셀로네타 해변



 그때서야 깨달은 사실인데, 나는 바다를 좋아하는 것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는 목적지를 정해 두지 않고 무한히 뻗어 나간다. 아무도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 바다는 스스로 확장하고 스스로 움직이니까. 바다는 내게 대단치 않은 사람이 되어도 괜찮다고, 무한히 거대한 건 자신이 하겠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아주 모자란 사람이 되어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이 편해진다.


경계가 보이지 않는 까만 바르셀로네타 해변




 한참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가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에 놀라  파에야를 먹으러 갔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이틀은 힘든 일이 하나도 없는 아주 완벽한 날들이었다. 언제  이렇게 한없이 행복에 젖어 있을  있을까 의심하며 도시를 돌아다녔다. 너무 완벽한 이틀이어서, 다음 날엔 필히 무슨 일이 생길  같다는 불안한 예감이  정도로 행복했다. 조심스레 이번은 정말 낭만스런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여행에 낭만은 없다!


바르셀로나의 광활한 도로




15일차 : 숙소 - 카탈루냐 광장 - 라 보케리아 시장 - Colom Restaurant - 바르셀로네타 해변 - Sensi Tapas - 숙소


- 여행 일정 -

프랑스 파리 5박 (12/24~12/29)

프랑스 니스 2박 (12/29~12/31)

이탈리아 베니스 1박 (12/31~1/1)

이탈리아 피렌체 3박 (1/1~1/4)

이탈리아 밀라노 2박 (1/4~1/6)

스페인 바르셀로나 3박 (1/6~1/9)

스페인 마드리드 2박 (1/9~1/11)



- 다음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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