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8화

by 유수

가게 밖으로 나온 세 사람은 고민에 빠졌다. 자전거를 구매했으니, 자전거를 타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자전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민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가게 앞은 아무래도 사람도 많고 공간도 좁으니, 자리를 옮길까? “ 민지의 제안에 따라 셋은 자전거를 끌고 큰길이 나올 때까지 걸었다. 큰길이 나오자, 이번엔 윤서가 말했다. ”그런데, 커브길은 조금 어렵지 않을까? “ 세 사람은 다시 자전거를 끌고 걸었다. 이제 윤서, 민지, 그리고 지은을 기다리는 건, 셰어하우스가 있는 골목까지 죽 이어진 직진 도로였다. 그들은 더 이상 뱉은 말을 무를 수 없음을 인지했다. “무서워.” 지은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 남들도 다 하는 거야. 우리도 할 수 있어.” 민지가 말했다. 지은은 민지의 말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지은은 민지가 자신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자전거는 지은의 것과는 타는 방법부터 달랐다. 그저 편안하게 앉아서 발만 굴리면 되는 생활형 자전거가 온몸을 숙인 채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로드형 자전거와 같은 입장일 수는 없었다. 지은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에휴, 왜 이런 걸 사가지고…”


“나도 사실… 무서워.” 두 사람을 향해 윤서가 말했다. 윤서는 세 사람 중 가장 겁이 많았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직원이 안내해 준 환불규정을 되뇌었다. 구매한 지 약 20분이 지난 시점, 아직 페달에 흙먼지 하나 묻지 않았으니 전액 반환은 가능했다. 윤서는 슬슬 뒷걸음질 쳤다. 아무리 학교가 멀어도, 버스의 배차 간격이 길어도, 만에 하나 자전거를 타다 당할 사고에 비하면 견딜만한 여건이었다. 지금이라도 자전거를 매장으로 가지고 가면,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구할 수 있었다. “어디가?” 민지가 윤서를 보며 물었다. 윤서는 당황한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아니 그게…” 그녀는 아주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민지는 윤서와 지은을 번갈아봤다. 불안한 윤서의 눈동자는 가만히 있지 못했고, 지은은 고개를 떨군 채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기껏 매장까지 찾아가 정신 사나운 직원을 상대하면서까지 사온 자전거 하나에 좌절하다니, 기가 찬 노릇이었다. 민지는 큰소리로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그냥 자전거야! 다쳐봐야 얼마나 다치겠어! 한번 타보자. “


민지의 말에 지은은 고개를 들었다. 민지는 다시 한번 말했다. ”천천히, 조심하면 될 거야. “ 지은은 눈썹을 찌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곤 우렁차게 말했다. ”그래, 까짓 거. 해보자!” 그녀는 두 발을 페달에 올리고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은의 자전거는 느린 속도로 앞으로 전진했다. 윤서와 민지는 지은의 갑작스러운 행보에 숨죽이며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페달의 속도가 느린 탓에 지은의 자전거는 크게 휘청였다. 당황한 지은은 핸들을 좌우로 움직였다. 하필 핸들에 집중을 하다 보니 두 발은 페달을 굴리는 걸 잊었고, 멈춰 선 자전거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지은아!” 민지가 외쳤다. 윤서와 민지는 각자의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지은에게 뛰어갔다. 지은은 왼쪽 다리가 자전거에 깔린 채 땅에 누워있었다.


“괜찮아?” 윤서가 지은을 일으키며 물었다. 지은은 멋쩍은 듯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응, 괜찮아. 사실 아프진 않고 창피해.” 민지는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지은의 자전거를 바로 세웠다. 이내 세 사람은 긴장이 풀렸는지 함께 웃었다. "나는 민지가 가장 먼저 도전할 줄 알았어." 한참을 웃던 윤서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나도 그럴 것 같아서 페달을 밟은 거야!" 지은이 맞장구쳤다. “그렇게 바로 도전하자는 말은 아니었어.” 민지가 말했다. 세 사람은 너무 웃은 나머지 배를 부여잡고 있었다. “우리가 다들 긴장했나 봐. 이제 아무 생각 말고 타보자.” 민지가 두 사람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 내가 넘어져보니까 아프지도 않더라!” 지은이 거들었다. 세 사람은 각자의 자전거로 돌아갔고 거리는 금세 아우성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으악! “ “조심해!”“괜찮아?”“우와! 이것 봐!”“나 되게 멀리 갔어!”“아앗, 비켜줘!”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셰어하우스가 보이는 골목 앞까지 온 지은은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뒤따르던 윤서와 민지도 자전거에서 내렸다.


둘은 자전거를 끌고 지은에게로 다가갔다. “왜 멈췄어?” 윤서가 물었다. 지은은 말없이 손가락으로 셰어하우스를 가리켰다. 현관이 열려있었고, 신애가 앞마당에 나와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는 웬 남자가 풍성한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오!” 윤서는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민지는 재빨리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세 사람은 눈앞의 광경을 숨죽여 바라보았다. 지은은 침을 꼴깍 삼키며 신애와 남자의 입모양을 유심히 관찰했다. 남자는 신애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듯했고, 신애는 수줍어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꽃다발을 건네자, 신애는 고맙다는 말을 하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긴장한 남자는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신애에게 무언가 물어보았다. 신애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두 주먹을 꽉 쥐고 “와!”라고 외쳤다. 남자는 뛸 듯이 기뻐하고 있었다. 그는 환한 미소로 신애에게 인사를 했다. 신애도 남자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천천히 현관문을 닫았다. 남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는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한참을 서 있던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골목 밖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세 사람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어떡해? 이리로 오고 있잖아!” 민지가 속삭였다. “숨을까?” 윤서가 민지의 손을 치우며 말했다. “숨을 곳이 어디 있어! 그냥 자연스럽게 행동하자. “ 지은은 윤서에게 핀잔을 주고는 자전거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윤서와 민지는 하는 수 없이 지은을 따라갔다.


골목길에 들어선 지은은 자신을 지나치는 남자를 곁눈질로 훔쳐봤다. 그는 키가 크고, 하얗지도 까맣지도 않은 피부에 살짝 곱슬기가 있는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진한 쌍꺼풀에, 오뚝한 코, 숱이 많은 눈썹으로 보아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입은 옷은 평범했다.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은 그의 전체적인 실루엣은 운동과는 거리가 먼 듯했다. 지은을 지나 윤서와 민지도 그를 힐끔거리며 셰어하우스에 도착했다. 세 사람은 재빨리 자전거를 울타리에 묶어두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신애의 방에 노크를 해댔다. 똑. 똑. 똑. 문을 열고 신애가 나오자, 세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묻기 시작했다. ”방금 그 남자 누구야? “ ”둘이 무슨 이야기한 거야? “ ”너 좋아한대?”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