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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 Jul 15. 2024

7화

“나 너무 긴장돼.”


지은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자전거 안장에 겨우 엉덩이를 붙이고 두 발로 땅을 짚은 채 서 있었다. 지은의 다리 사이의 자전거는 그녀의 목소리만큼 휘청였다.


“걱정 마! 남들도 다 하는 거야. 우리도 할 수 있어.”

민지는 여유롭게 자세로 지은에게 말했다. 민지는 자전거 안장에 올라타 한쪽 다리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그녀의 오른발은 땅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지은은 민지의 말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지은은 민지가 자신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자전거는 지은의 것과는 타는 방법부터 달랐다. 그저 편안하게 앉아서 발만 굴리면 되는 생활형 자전거가 온몸을 숙인 채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로드형 자전거와 같은 입장일 수는 없었다. 지은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에휴, 왜 이런 걸 사가지고…”


“나도 사실… 무서워.”

두 사람을 향해 윤서가 말했다. 윤서는 자전거에 올라타기는커녕, 두 손으로 핸들만을 잡고 자전거를 끌고 왔다. 윤서는 세 사람 중 가장 겁이 많았다. 그녀는 얼떨결에 이 자전거 모임에 끼게 되었지만 후회가 막심했다. 매번 버스 시간에 맞춰 생활하는 것보다 자유롭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었으나 어쩌면 심리적 불안감만 조성하는 최악의 경우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윤서는 머릿속으로 직원이 안내해 줬던 자전거 환불규정을 되뇌었다. 구매한 지 겨우 5일째, 아직 페달에 흙먼지 하나 묻지 않았으니 전액 반환도 가능할 것도 같았다. 장기적으로 버스 이용으로 나가는 교통비보다 자전거 구매가격이 더욱 저렴했지만, 그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자칫 사고라도 나서 다리가 부러진다면, 그 후에 수반되는 병원비와 정신적 스트레스의 값은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윤서는 이런저런 생각에 점점 뒷걸음질 쳤다. 지금이라도 자전거를 깨끗이 닦아 매장으로 다시 가지고 가면, 협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가?”

민지가 윤서를 보며 물었다. 윤서는 당황한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아니 그게…”

윤서는 아주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민지는 지금 상황이 못마땅했다. 기껏 매장까지 찾아가 정신 사나운 직원을 상대하면서까지 사온 이깟 자전거에 23년 묵은 삶을 되돌아보다니, 기가 찬 노릇이었다. 민지는 큰소리로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그냥 자전거야! 다쳐봐야 얼마나 심각하겠어! 한번 타보자. “

”그래, 까짓 거. 해보자!”

민지의 말에 용기를 얻은 지은이 말했다. 그녀는 가장 먼저 두 발을 페달에 올리고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지은의 핸들이 흔들렸다. 지은은 핸들을 좌우로 움직였다. 핸들에 집중을 하다 보니 두 발은 페달을 굴리는 걸 잊었고, 그렇게 멈춰 선 자전거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지은아!”

민지가 외쳤다. 윤서와 민지는 각자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지은에게 다가갔다. 지은은 왼쪽 다리가 자전거에 깔린 채 땅에 누워있었다.


“나 괜찮아. 사실 아프진 않고 창피해.”

지은이 멋쩍은 듯 말했다. 이내 세 사람은 긴장이 풀려 함께 웃었다.


"아하하하하하!"

"나는 민지가 가장 먼저 도전할 줄 알았어."

"나도 그럴 것 같아서 페달을 밟은 거야!"

"하하하하하하!"


“네가 타는 걸 보니 기우는 쪽으로 핸들을 꺾으면 넘어지지 않을 것 같아.”

한참을 웃던 윤서가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녀는 지은의 동작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던 것이다.


“그래? 그런데 왼쪽으로 기운다 싶으면 곧바로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고 싶어 져.”

지은이 답했다.


“맞아. 자전거 타기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본능을 극복하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 사실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아? 문제를 회피하는 것보다 직면할 때 더욱 추진력을 얻기도 하잖아.”

윤서의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지은과 민지는 서로를 바라보다 참아왔던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하하하!”

“아하하하하하!”


윤서는 영문 모를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이를 눈치챈 민지가 윤서에게 말했다.


“얘, 너무 진지한 것 아니니?”

지은도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러니까. 자전거에 철학을 담았네. “


“아, 하하하. 내가 좀 심각했나?”

윤서는 멋쩍은 듯 헛웃음을 내며 물었다.


“우리가 다들 긴장했나 봐. 이제 아무 생각 말고 타보자.”

민지가 두 사람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 내가 넘어져보니까 아프지도 않더라!”

지은은 몸의 흙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좋아, 이제 해보는 거야!”


세 사람은 각자의 자전거로 돌아가 연습을 시작했다. 셰어하우스의 뒷마당은 어느새 소녀들의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으악!”

“조심해!”

“괜찮아?”

“우와! 이것 봐!”

“나 되게 멀리 갔어!”

“아앗, 비켜줘!”

“하하하하하하하!”


이때, 효성은 자신의 방에서 창문을 통해 뒷마당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자전거를 가지고 뒷마당에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엔 전화기가 쥐어져 있었다.


"여보세요? 내 말 듣고 있어?"

수화기 너머로 재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효성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답했다.


"아, 미안. 뭐라고 했지?"


재혁은 효성을 반응을 기대하며 다시 한번 말했다.

"나 다음 주에 휴가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아, 그래?"


효성의 대답은 무미건조했다. 재혁은 예상과 다른 효성의 태도에 의아하며 물었다.

"좋은 소식이 아닌가? 너도 그때 마침 중간고사 끝나지 않아?"

"미안. 내가 다른데 정신이 팔려서. 물론, 좋지!"


효성은 애써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고대하던 재혁의 휴가 소식에도 그녀의 마음은 자꾸만 뒷마당의 세 여자들에게 향했다. 효성은 그녀들이 자신이 집에 있다는 걸 알고 있을지 궁금했다. 엄연히 뒷마당에 효성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데, 그녀를 부르지 않은 세명의 여자들에게 서운함이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효성은 자꾸만 머릿속에 드는 속상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우스메이트들이 뒷마당에서 자전거 타기 연습을 하는데, 나를 부르지 않았어. 지금 창밖을 보니 굉장히 재미있어 보여."

"그랬구나."

재혁은 이제야 효성이 이해된 듯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게 왜? 너를 부르지 않아도 네가 나가면 되잖아."

재혁의 위로에 대한 효성의 답변은 그에게 실망으로 다가왔다.


"지금 그럴 수가 없잖아. 너랑 통화 중인걸."

"뭐라고?"

"너를 탓하는 게 아니야. 그저 내 감정을 설명하려는 것뿐이지."

"글쎄. 나는 오히려 네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걸 내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재혁의 말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그의 말끝에는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효성은 재혁을 달래기 위한 말을 이어갔다.


"그런 거 아니야. 그저 내 기분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기 위해 현재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 거지. 이런 유치한 일에 왜 네 탓을 하겠어?"

"그런 유치한 일에 넋이 나가서 지금껏 내 말을 흘려들은 건 너야."


재혁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효성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재혁의 마지막 말에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새하애 졌다. 두 사람은 한 동안 침묵했다. 효성은 계속해서 창밖을 보았다. 전화기에서는 재혁의 집에서 날 법한 소음들이 들려왔다. 효성은 그가 방을 정돈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재혁에게는 강박이 있다. 그는 자신의 주변 모든 사물들이 일정한 간격과 각도를 유지하는 것에 집착했다. 그는 특히, 심란함을 잠재우기 위해 정리정돈을 하곤 했다. 효성은 이내 한숨을 내 쉬었다.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난 다시 공장에 나가봐야 할 것 같아."

한참 자리를 비웠던 재혁이 다시 수화기를 통해 말했다. 효성은 그의 말에 차분히 답했다.


"그래, 알겠어. 일 마무리 잘하도록 해."

"응. 오늘 동수랑 윤서 씨랑 저녁 먹기로 했댔지? 좋은 시간 보내."

"응. 고마워."


효성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푹신한 베개가 그녀의 얼굴 전체를 푹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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