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화

by 유수

주말 아침. 평소 늦잠을 자는 하우스메이트들은 부지런히 외출준비를 했다. 민지, 윤서 그리고 지은은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서로에게 소리쳤다. “준비 다 했어?” “10분 안에 출발하자.” “조금만 더 기다려줘!” 효성은 방문을 굳게 닫고 벽을 통해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오늘도 그녀는 아침을 재혁과의 통화로 시작했다. 재혁은 가끔 주말에 공장으로 출근을 했다. 아직 일을 배우고 있는 중인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효성은 재혁이 주말에라도 차를 몰고 자신을 보러 와주길 내심 바랬지만, 그의 미래에 대한 투자에 훼방을 놓고 싶지 않았다. 효성은 기지개를 켜며 재혁에게 말했다. “좋은 아침이야.” 재혁은 차 시동을 걸며 대꾸했다. “좋은 아침. 날씨가 참 좋네.” 효성은 창밖을 바라보며 맞장구쳤다. “그러게. “ 재혁은 핸들을 꺾으며 말했다. ”오늘 같은 날 약속 없어? 하우스메이트들은 뭐 해? “ 효성은 고개를 돌려 닫힌 방문을 봤다. 문 너머에 있는 세 여자들의 일과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누군가 효성에게 하루종일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을 시 1억 원을 주겠다는 조건을 걸어도, 효성은 1억 원을 포기할 아이였다.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한 그녀는 제안을 거절한 자신을 스스로 원망했다. “아, 하우스메이트들은 오늘 자전거 매장에 간대.” 효성의 말에 재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너도 같이 가지 그래?” 효성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같이 가자고 했는데, 그냥 거절했어.” “왜?” 금요일이 채 되기도 전에 주말 계획을 짜던 그녀였는데, 재혁은 효성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짧은 대답 한마디뿐이었다.


효성은 윤서와의 통화 이후 제대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 적이 없었다. 동수와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막았던 자신의 처신에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윤서가 동수를 자신에게서 빼앗아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수는 효성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편안한 등굣길, 강의실 옆자리, 과제 보조, 그리고 점심 식사 동료까지. 그런 안정적인 학교 생활을 잃을 수 없었다. 이전엔 민지와 이 모든 걸 할 수 있었지만, 효성의 전과로 인해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어쨌든, 이기적인 이유로 친구의 연애를 방해한 훼방꾼이 되어버린 효성은, 더욱이 윤서에게 먼저 다가갈 수 없었다. 그녀에게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연을 알리가 없는 재혁은 계속해서 효성에게 물었다. “그냥? 윤서랑 또 싸운 거야?” 효성은 살짝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야. “ 재혁은 조금 미안해졌다. 그는 어쩌면 효성이 여자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라도 나가서 같이 가자고 해봐.” 재혁은 효성을 달래며 말했다. 재혁은 주말에 효성을 만나러 가지 못하는 죄책감을 최대한 덜어내고 싶기도 했다. 자신이 없어도 효성이 알찬 하루를 보낸다면 한결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효성의 답변은 그의 감정을 꼬집기만 했다.


"지금 그럴 수가 없잖아. 너랑 통화 중인걸." 그녀의 차가운 말에 재혁은 발끈했다. "뭐라고?" 효성은 차분히 덧붙였다. "너를 탓하는 게 아니야. 그저 상황이 그렇다는 걸 말하는 것뿐이지." 효성의 설명에도 재혁의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글쎄. 나는 오히려 네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걸 내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효성은 재혁을 달래기 위해 다시 한번 차분히 말했다. "그런 거 아니야. 애초에 윤서랑 일이 있기도 했고, 당장 너와 통화를 끊고 나가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 한 말이야." 재혁은 침묵을 택했다. 그는 자신이 화가 난 이유가 효성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실로 효성의 말에 가시가 있었는지를 따지고 있었다. 재혁은 스스로가 예민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릴 적 젊은 남자와 바람이 나 가족을 버리고 떠난 엄마에 대한 증오가 그 원인이었다. 재혁은 언제나 ‘여성’과 자신의 ‘엄마’는 다른 인격체임을 되뇌며, 절대 자신의 예민함으로 효성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재혁에게 효성은 그만큼 특별한 존재였다. 아무도 대체할 수 없는, 남다른 여자.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난 이제 공장에 도착했어." 재혁이 먼저 말했다. “그래. 열심히 해.” 효성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푹신한 베개가 그녀의 얼굴 전체를 감싸 안았다.


현관문이 벌컥 열리고 세명의 하우스메이트들이 골목길로 나왔다. 지은은 셋 중 가장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녀는 민지와 윤서를 향해 말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두 발로 걸어가지만, 돌아올 땐 페달을 밟고 있을 거야.” 민지와 윤서는 지은을 바라보며 웃었다. 두 사람은 지은이 다소 흥분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매장에서 나오자마자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생각해?” 민지가 지은에게 물었다. 지은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못할 건 뭐야?” 윤서는 지은의 자신감에 감탄하며 말했다. ”대단한걸? 쌩쌩 달리는 모습을 기대할게. “ 지은은 뿌듯한 얼굴로 가장 앞장서서 걸었다. 그녀는 왠지 자전거에 대한 예감이 좋았다. 어쩐지 자신의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줄 것만 같았다.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디자인이나 제품이 있나요?" 세 사람이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직원은 그들 앞에 나타나 크게 인사했다. 격한 환대에 한껏 위축된 그녀들은 직원의 눈을 살짝씩 피하며 우물쭈물거렸다. ”저희는 자전거를 사러 왔는데요..." 셋 중 윤서가 가장 먼저 용기를 내어 말했다. "네 그러시겠죠. 여기는 자전거 매장이니까요!" 직원은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윤서는 직원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직감했다. 그녀의 얼굴이 민망함에 발갛게 달아올랐다. 이어서 옆에 있던 지은이 말했다. "저희 모두 자전거를 처음 타봐요. 그래서…" "아! 그러면 제일 기본적인 스타일 어떠세요?" 직원은 지은의 말을 끊고 세 사람을 진열대로 끌고 갔다. 입구에 세워진 화려한 자전거들을 지나 무채색의 평범한 자전거들이 세워져 있었다. 직원을 따라가던 지은은 뒤를 돌아


민지가 마지막으로 세 명을 대표해 직원에게 말했다. "혹시 제품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희가 학생이라 가격도 중요하거든요." 민지의 말에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네, 물론이죠." 그는 진열대 맨 왼쪽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이건 하이브리드 자전거예요. 제 생각이지만, 가장 무난하게 도시에서 타고 다닐 수 있는 모델입니다. 가볍고, 안장에 앉는 자세도 안정적이라 초보자에게 인기가 높죠. 가격도 제일 저렴한 제품이랍니다." 직원의 말에 윤서는 솔깃했다. 그는 전문적가의 분위기를 풍기며 정확한 발음으로 자전거를 설명해 주었다. 민지는 직원의 머릿속에 대본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윤서는 조심스레 직원의 옆으로 가 자전거의 안장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직원은 윤서를 향해 자전거를 밀어 보이며 말했다. "안장도 넓고 푹신해서 편하답니다." "네..." 윤서는 외마디와 함께 자전거의 핸들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핸들의 브레이크를 당겨보고, 기어도 만지작 거렸다. 사실 윤서는 자전거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그저 직원에게 쉬운 상대로 보이지 않기 위해 열심히 연기를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매장에서 가장 저렴한 자전거를 사더라도, 자신이 현명한 소비를 지향하는 고객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직원은 몸을 완전히 윤서에게 돌려 말했다. "손님, 참고로 핸들에 바구니도 달 수 있답니다." 그의 말에 윤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전 이걸로 할게요." 윤서는 민지와 지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지은은 다른 자전거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민지가 팔짱을 끼고 자신을 한심하다는 듯 보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다른 자전거도 볼 수 있나요?" 민지가 직원에게 물었다. 네 사람은 매장을 가로질러 다른 진열대로 향했다. 직원은 마찬가지로 제일 왼쪽의 자전거를 꺼내 보이며 설명했다. "이건 생활 자전거, 또는 여성용 자전거로 알려진 모델이에요. 유럽풍 영화의 한 장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느낌, 아시죠? 바게트 빵을 바구니에 넣고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페달을 밟으며 도시를 누비는 거요. 여배우가 치맛바람 날리며 타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그런 자전거예요." 직원은 손을 들어 올리며 스쳐 지나가는 영화의 한 장면을 붙잡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전 이거요.” 민지가 자전거를 바라보며 말했다. 라탄소재의 귀여운 바구니와 연한 갈색 안장, 은은한 노란빛을 띠는 아이보리색 몸체, 얇지만 우아한 바퀴, 그리고 옷장에 있는 파란 시폰 원피스가 머릿속에 함께 그려졌다. 민지는 직원의 손짓에서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도는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탁월한 선택이군요! 그럼 마지막 한분은 어떤 자전거를 선택하실 건가요?" 직원은 미소를 띠며 지은에게 고개를 돌렸다. 혼자 한참 매장을 둘러보던 지은은 손가락으로 한 자전거를 가리키며 직원에게 물었다."저런 거는 얼마인가요?" 지은의 손가락이 향한 건 매장 벽에 걸려있는 로드용 자전거였다. 신애가 평소 타고 다니는 자전거와 같은 종류였다. 직원은 의외라는 듯 지은을 바라보며 답했다. "아, 저건 로드용 자전거예요. 타는 자세가 일반 자전거와는 좀 다른데, 괜찮으시겠어요? 대신 빠른 속도를 보장하죠." 직원의 말을 들은 지은은 굳게 다짐하듯 말했다. "네, 저는 저걸로 할게요." 직원은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내리며 지은에게 말했다. “네 손님, 그런데 이건 초보자들이 타기에 조금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직원의 경고에도 지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네. 괜찮아요.” 그녀는 신애와 견주어 자전거를 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바람을 가로지르며 도로를 누비고, 좁은 골목길도 쌩쌩 달리며 어디는 누구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이다. 그리곤 언젠가 신애를 추월하며 그녀에게 씩 웃으며 말하고 싶었다. '먼저 갈게!'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