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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랄라 Feb 17. 2020

기러기 가족

외로워지는 아이



생후 6주 만에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아이는 최연소 탑승객이라는 스튜어디스의 친절한 환대를 받고 한국으로 가는 귀국길에 올랐다. JFK공항에서 나리타 공항을 경유한 뒤 인천에 19시간 만에 도착한 우리 가족을 따뜻이 맞아 준 것은 청주에 사는 큰 언니 가족이었는데, 우선 지방으로 내려가는 비행기를 잡기 전에 언니네 집에서 좀 쉬고 갈 생각이었다. 남편은 비행기에서 안압이 올라 눈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고, 나 또한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서인지 알레르기를 동반한 비염 증상으로 눈물, 콧물이 비 오듯 나오는 상황이었다. 간호사 출신인 큰언니는 출산과 산후관리, 그리고 오랜 비행으로 지쳐버린 우리 가족에게는 그 당시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아기를 보자마자 따뜻한 물을 받아 숙련된 솜씨로 목욕을 시키고, 곧 상다리가 후들거릴 만한 진수성찬의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도착한 첫날밤, 언니가 끓여준 미역국은 <감사와 감동> 그 자체였다.


언니 집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우리 부부는 제주출신인지라). 

남편은 일주일 후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가급적 박사를 빨리 받겠다는 약속을 남겼고, 나는 남편이 박사를 받는 동안 복직을 하고 차분히 우리 가족이 지낼 만한 저축을 해 볼 심산이었다. 친정 부모님은 원체 <아가>라면 금은보화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셨고, 이층에 지내는 오빠 가족도 이제 갓 태어난 딸아이의 존재를 매우 소중하고 따뜻하게 품어 주었다. 


곧 복직을 신청하였고, 나는 오랜만에 하는 직장 생활의 즐거움에 푹 빠져 버렸다. 친정엄마가 매일 아침 챙겨주는 따뜻한 밥과 커피까지 든든히 얻어 마시고,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는 그 시간이 <새로 얻은 인생>처럼 기분 좋은 것이었고, 때마다 잊지 않고 들어오는 소정의 월급이 그 만족감을 더 해 주고 있었다. 근무하는 학교의 급식을 먹는 것, 아이들이 부르는 ‘선생님’이라는 소리, 직장 동료들과 아이디어를 맞대며 수업을 짜고, 새로운 업무를 배워가는 시간안에서 <일하는 보람>을 느꼈고, 적지 않은 흥분들로 하루하루가 채워졌다. 결혼 전, 친구들과 함께 술 퍼마시며 교육을 비판하고, 직장생활의 회의를 토로했던 내가 남편과의 유학생활 5년 만에 이런 행복감을 느끼다니... 참 알수 없이 흘러 가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그래서 어른들이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했던 것인가?



다 좋았다... 그런데 ...

내가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그즈음 나는 서서히 내가 낳은 딸아이를 잊어가고 있었다. 


아이의 핸드폰 사진을 틈틈이 보며 만족감을 느끼고 딸아이가 지낸 시간들을 체크하며 아이의 옷을 사고 장난감을 사 주며 엄마로서의 의무감을 다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아마 그 당시 우리 딸아이의 감각으로는 친정 집 이층의 조카들이 언니들이었고, 친정오빠, 올케언니를 본인의 부모로 인식했을는지도 모르겠다. 과거로 돌아가 나의 아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 딸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아이는 멀뚱이 나를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버리곤 하였다. 


그리고 그 시절의 상황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박사를 빨리 받겠다던 남편은 대학원 축구부에 본격적으로 들어갔고, 전화로 들려오는 소식은 같은 과 친구들과의 술자리, 모임, 여행과 관련된 것으로 당최 박사논문과는 관계없는 주변의 일들을 신나게 떠들곤 하였다. 아이가 태어난 지 6주 만에 아빠로서의 책임감에서 완전히 해방된 그의 모습은 자유를 찾아 떠난 젊은 날로의 회귀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가 이렇게 각자의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던 그 시절 , 우리 아이는 한창 부모와의 애착을 형성해야 할 그때에, 정작 부모로부터 많은 외면을 당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우리가 아이보다는 우리의 인생에 집중하고 있을 무렵, 다시 미국행을 결심하게 된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혼자노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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