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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랄라 Feb 21. 2020

다시 미국으로...

아빠! 아빠! 아빠!

미국에 있는 아빠와 화상 통화를 즐겨하던 20개월이 되어가던 아이가 아빠와 전화할 때면 핸드폰을 아래 위로 마구 흔들어 대곤 하였다.

“핸드폰은 흔드는 거 아니고... 아빠 얼굴 보는 거야.”라고 여러 번 이야기를 해도 아이는 어김없이 아빠의 얼굴이 핸드폰 화면에 비추면 핸드폰을 사정없이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바텐더도 아닌데 정신없이 핸드폰을 흔드는 아이가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옆에서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올케언니가


“아빠 나오라고 하는 거잖아... 핸드폰에 있는 아빠 흔들어서 나오게 하려고...”


‘아... 그런 거였구나...’

“그렇게 해도 아빠 거기서 안 나와, 아빠 어지러워.”라고 하면 이내 울음을 터트렸던 만 두 돌이 안 된 아이에게 저 멀리 있는 아빠의 존재를 이해시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차차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택시기사 아저씨에게도, 이웃집 할아버지에게도, 지나가던 동네 청소년에게도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왜 그랬을까? 사실상 볼 수 없는 아빠라는 존재의 그리움? 아니면 아빠를 받아들이는 정체성의 혼란? 그것도 아니면 그냥 까꿍처럼 <아빠>라는 소리의 유희 같은? 무엇이 답인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 시절 아무데서나 그리고 아무에게나 부르짖는 아이의 <아빠>라는 소리가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나?>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불러왔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인생의 중요한 선택과 결정의 저 너머에는 항상 <타이밍>의 절묘함이 있다.




미국에서 남편의 교통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트럭을 몰고 이사를 하던 도중 트럭 운전이 서툴었던 남편이 대학교 기숙사에 주차해 있던 차들을 차례차례 박아 버린 사건이었는데, 기숙사에 있던 대학원 생들이 모두 이 기이한 교통사고를 두고 이런저런 해석이 분분하였다고 한다. 술에 취했거나, 운전면허증이 없거나 아니면 약을 먹었거나... 그러나 기타 등등의 어느 카테고리 안에도 들어가지 않는 남편의 운전실력은 말 그대로 기이한 것이었다.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딸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로 나왔는데, 남편으로부터 또 전화가 걸려왔다. 교통사고를 처리하기가 이만 저만 힘든 게 아니라고 하였다. 자신이 밀어버린 차 중에 순수 영문학을 전공하던 대학원 <똘녀>의 차도 있었는데 그녀가 날마다 남편의 기숙사 문을 두드리며 보험처리의 진행 정도를 아침저녁으로 물어대고 있어 집에 들어가기가 겁이 난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본인의 기숙사 아파트 앞에 붙여둔 <I AM NOT AT HOME>이라는 메모도 그녀가 박박 찢어버리는 걸 옆집 대학원 생이 목격하여 남편에게 상세히 이야기해 준 상태였다.


   <똘녀: 영어로는 Psyco... 그녀가 이 별명을 얻게 된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TV 소음이 있거나, 주차를 좀 비틀게 했거나, 음식 냄새가 심하거나, 아이가 울거나... 등등의 아주 자잘하고 사소한 대학원 생들의 인간사가 벌어지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건 그녀가 불쑥 나타나곤 하였다. 그리고는 곧 ‘오만과 편견’의 대화체에나 나올법한 화려하며 현학적인 문어체 영어와 함께 쉼 없는 컴플레인을 속사포처럼 30분 이상 쏟아 낼 수 있는 가히 막가파적인 에너지를 발산하였다. 아마도 본인이 받는 박사과정의 모든 스트레스를 그러한 방법으로 푸는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녀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불운은 연속성을 다고 했던가? 똘녀의 등장으로 스트레스를 받던 남편이 대학원 축구부 경기에 나갔다가 다리가 와장창 골절이 되어 버린 사건이 발생하였다. 남편은 차를 쓰지도, 걷지도, 혼자 목욕하기도 힘든 상황에 처해 버렸고, 틈나는 대로 똘녀의 방문을 기습적으로 받아야만 하는 난감한 처지에 놓여 버렸다.


남편의 어이없는 교통사고와 함께 시작된 똘녀의 습격, 그리고 뒤이은 남편의 골절 난 다리 사건은 ‘제발 미국으로 돌아와 나를 돌봐다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일련의 사건 뒤에 함축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할 만큼 촉이 둔한 것도 아닌지라, 한동안 <돌아갈까? 말까?>를 고민하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어느 화창한 오후, 친정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딸아이와 함께 그 당시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운동장에서 놀고 있노라는 연락이었다. 퇴근하고 운동장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조금은 급하게 사무를 정리하고 학교 건물을 나와 보니, 축구 골대 주변에서 친정아빠와 딸아이가 노는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니 딸아이도 나를 향해 달려오는 듯하였다.


영화와 같은 한 장면이 될 수도 있었던 그 순간...


따사로운 봄 햇살에 아장아장 포실한 아기 걸음의 아이가 엄마를 향해 뛰어오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너그러운 미소와, 그 아이를 향해 달려가는 엄마의 온화한 발걸음은 적절한 배경음악이 가미된다면 영화나 광고에서 나올 만한 슬로 모션의 한 컷이 될 수도 있는 장면이었건만...


그래... 바로 그 순간...


딸아이가 내가 아닌...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는 6학년 남자아이의 발을 움켜 안는다.


아빠! 아빠! 아빠! 라는 외침과 함께...


너그러운 할아버지의 표정도, 온화한 엄마의 발걸음도, 발이 잡힌 남학생의 표정도 매우 애매모호한, 그리고 상당히 껄떡찌근한 야릇한 표정으로 변하는 그 순간... 바로 그 타이밍에... 결심이 선다.


<에잇! 미국으로 돌아가야겠다>


늦은 봄날 그렇게 인생의 선택을 결정짓는 그 타이밍은 영화처럼 나에게 찾아왔고, 여름방학이 끝나가는 그 시점에 두 돌이 넘어가는 아이와 함께 나는 다시 뉴욕 JFK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너 지금 미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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