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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랄라 Oct 26. 2020

우리들만의 아메리칸드림

8년의 시간 안에서 우리가 누린 것

영국으로 간다. 새로운 나라를 향해 가며 지난 8년간(남편은 8년, 나는 6년) 우리가 미국에서 경험한 일들을 떠 올린다.


2년 여간의 한국 생활을 접고 아이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던 그 시절이 먼저 떠오른다. 2005년 스테이트 칼리지(State College)로 향하던 꿈 많고 설레던 신혼부부의 모습과는 달리 아이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엄마라는 정체성의 변화가 차분하게 느껴진다. 


남편이 박사 도중 학교를 옮기고 다시 대학원을 진학할때즘, 우리보다 1년 늦게 유학생활을 시작했던 절친했던 부부가 생각난다. 부인이 임신을 하고 유학생활을 시작한 신혼부부였는 데, 이제 곧 태어날, 돌봐야 할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당시 그 부부와 우리 부부의 가장 컸던 차이점으로 생각된다. 남편이 학교를 옮겨 새로운 학교에 지원을 하고 다시 시작하려던 그해, 우리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했던 아빠가 된 이웃집 유학생은 박사과정을 마치고 포닥에 지원하고 있었다. 


우리도 만약 그때 일찍 부모가 되었다면, 아마 남편이 학교를 옮기고 박사를 새로 받는 선택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선택의 가장 우선 순위가 부모를 온전히 의지해 태어난 소중한 아이에게로 향했을 것이고, 우리가 가는 인생의 항로역시 방향이 수정되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꿈을 꾸고 도전을 한다. 그리고 또 어떤이는 자신이 처한 현실의 물결에 꿈을 좇는 것조차 허락되지 못한채 가족들을 돌보며, 생계의 책임을 짊어지고 살아가기도 한다. 

사십대 중반을 지나보니 도전하는 패기도 아름답지만, 그렇게 묵묵히 삶을 버텨내는 우리의 이웃들의 삶이 더욱 깊이있게 다가온다. 


지나 보니 미국에서 우리가 얻은 것들은 애초에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은 다른 성질의 것들이었다. 학위를 바탕으로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명문대학의 선생으로 직업을 얻어 조금 더 나은 보수를 받고, 조금 더 인정을 받으려던 욕구는 시간이 흐를수록 서서히 퇴색되어 갔다.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즐겁고 유쾌했던 일들도 많았지만 어렵고 힘들었던 일들도 많았다. 학교를 옮겨가며 받은 남편의 8년간의 박사과정, 그리고 박사 후 포닥으로 영국에서 지냈던 시간까지 합해 본다면 남편이 온전한 직장을 갖기 위해 노력한 시간은 13년이 된다.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조건이 충족되는 직장을 갖기 위해 13년의 시간과 삶을 소비한다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애초에 우리가 가졌던 기대와 보상의 방향성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는… 

 

원하던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을 때

타인과 갈등이 생기고 예상 못한 문제들이 발생할 때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생각과 사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때, 

팍팍한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생활에 집중할 때,

떨어져 지내도 서로를 잊지 않을 때,

서투를 지라도 부모라는 책임을 가벼이 하지 않을 때,

 

미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이 8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남편이나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단순히 조금 더 나은 직장을 갖기 위한 스펙이 아니었다.

 

안개 같은 흐릿한 기억 안에서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American Dream을 꿈꾸었던 조급하고 철없던 부부에게 미국에서의 8년은  끈기와 집중, 타협과 이해, 생활과 책임이라는 성숙한 감정의 알곡들이 남들처럼 조금씩 여물어 가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미 대륙에서 우리는 우리들 만의 아메리칸드림을 성취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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