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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랄라 Mar 14. 2020

캠브리지 교육 이야기

영국에서

반듯하고 단정한 교복에 칼라 있는 와이셔츠와 블라우스가 돋보이는 영국 캠브리지의 아이들... 만 네 살, 다섯 살의 어린아이들이 연음 없는 시크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린아이의 천진함과 사랑스러움을 넘어 그 에티켓에 감탄할 때가 있다. 유수의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들을 배출하고, 아름다운 캠 강의 물줄기가 흐르는 킹스 칼리지의 산책길을 걸어보고 캠브리지 주변을 여유 있게 산책할 때만 해도 미국과는 다른 그 경치에 한참을 감탄하곤 했었다.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까지의 상황이다.

남편이 포닥으로 캠브리지를 간다고 하였을 때 내심 좋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엄마로서 <아이의 첫 교육을 영국 캠브리지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야릇한 쾌감 같은게 있었는 데, 그 감정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마음 한편에 엄마라는 이름보다는 세속적인 부모의 숨겨진 로망이 존재했었던 것 같다. 아이의 기질과 성향을 생각지 아니하고 <캠브리지>라는 브랜드와 그 명성에 들떠 있었던 나날들을 지금 와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1) 영국식 교육을 거부한 자유로운 영혼

 

“내가 어디 가서도 가오가 죽지 않는 남자였는데...복많이(우리 딸 태명) 학교에만 가면 진짜....” 

남편이 아이를 데려다주고 또 씩씩 거리며 온다.

“왜? 무슨 일인데 또?”

“Miss. Wood가 복많이 카펫에 안 앉는다고 앞으로는 의자에 따로 앉힌대, 그리고 무슨 그룹을 별도로 만들어서 교육한다고.”


복많이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그랬다. 우리 복많이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규칙에 일단은 반기를 들어보는 <거꾸로 하는 아이>의 기질을 가진 아이인 데...

“엄마, 그렇게 안 하면 어떻게 돼?”라는 질문을 수없이 했던 아이에게 영국 학교에서 가르치는 기본생활 습관과 예절이 아이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식사할 때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두지 않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는 것, 줄을 설 때 벽에 기대지 않고 반듯이 서는 것, 가방을 흔들며 다니 지 않는 것... 많은 에티켓들이 복많이에게는 쉽지 않은 난관들로 자리했었던 시절이었고, 복많이가 마음먹고 <그렇게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자!>의 실험정신을 발휘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Miss. Wood로부터 “ I have something to say about Lucy(복많이의 영어 이름).”라며 시작되는 대화를 이어 나가야만 했다.


아이가 영국 캠브리지의 교육 시절 중 (어린이 집 ~초등학교 2학년) 가장 좋아한 시간은 학교 뒤뜰에서 키우던 닭들을 구경하고 풀 숲이 우거진 나무 위에 올라가 유유히 사색하는 시간들이었다. 종종 교실 테이블 밑에서 나오지 않고 교실벽만 보고 있는 날도 있었는 데 그런 날에는 특수학급에 가서 조지라는 친구와 편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복많이의 어린이집 시절>

 2) 학교에 불려가다


복많이가 학교의 비상벨을 전부 눌러 버렸다. 학교 비상벨의 소음에 맞추어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뛰쳐나온 일대 사건이 있어 났고 그 범인이 우리 복많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학교에 불려 갔다.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빠는 한껏 가오가 죽은 채...


교사 시절, 학급의 규칙을 무엇보다 강조했던 내가 딸아이의 교감선생님과 이런 만남을 하게 되다니... 인생은 정말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는, 맞추기 힘든 퍼즐 조각이라는 생각을 해 보며 상담실 문을 열었다.

나이 든, 조금은 딱딱해 보이는 교감 선생님과 귀여운 표정의 학교 상담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교감 선생님께서 학교 비상벨뿐만이 아닌, 이제껏 복많이의 수 많았던 <Misbehaviors>에 대한 브리핑이 이어져 나갔다.


남편과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We are very sorry... we will keep teach her appropriate manners as much as we can.”

부모가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사과와 고개 숙인 태도가 교감 선생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 녹였는지, 나이 든 그녀의 굳은 얼굴이 서서히 풀리면서 차 한잔 마시고 가라는 제안을 하였다. 그리고 본인이 손수 차를 타고 오겠다며 상담실 문을 나섰다.

교감 선생님이 상담실 문을 나서자 이제껏 교감 선생님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무언가를 기록하던 귀여운 표정의 상담 선생님이 작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소곤대었다.

“ Frankly with you……I really love her, she is very creative. Probably, this is just not right education for her.”


3) 캠브리지의 학교 상담


영국은 1년에 한 번 학부모 상담(Parents Evening)이 이루어지는데 학교 생활의 정보를 공식적으로 얻을 수 있고 자녀의 교과 성적 성취 정도를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선생님들은 아이가 이제껏 해 온 학습의 결과물들을 한편에 쌓아 두고 학부모들에게 보여 주고, 잘한 것은 칭찬하고 모자란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하는데 우리 부부에게는 이 날이 여간 곤역 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4년을 영국에서 보내며 네번의 학교 상담을 경험했는데, 아이의 학업성취 정도에 따라 그 역사가 달라진다.


첫 학부모 상담 (Nursery-어린이집)


“She is unusual.” 학교 상담에서 아이의 담임 선생님인 Miss Wood로부터 들은 첫 문장이다.

<아이는 학교 생활 부적응자로 문제 행동을 심히 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하고 최대한 우회적인 표현으로 돌려 이야기하는 데, 상담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남편과 말없는 한숨을 번갈아 가며 쉬었던 저녁이었다.

<복많이 따로 그룹수업 받다>


두 번째 학부모 상담 (Reception-0학년)


“She has unique characteristics for…”

그래도 작년보다는 나은 거 같다. 선생님의 우려의 소리가 감당할 정도다. 남편은 우리가 작년에 하도 맞아서 맷집이 생겨난 것일 수 도 있다는 얘기를 했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확실히 낫다. 상담이 끝나고 교실 문을 나가니 우리 다음 차례로 기다리고 있던 아이 친구인 Claudia 엄마가 환히 웃으며 교실 문을 들어선다. 벌써부터 알파벳의 필기체를 능숙히 쓸 줄 아는 아이 친구 엄마의 <“우리 애는 정말 잘하거든”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부럽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괜찮다...

<잘 먹고 잘 뛰는 복많이>


세 번째 학부모 상담 (Grade 1-1학년)


“She is working forward to…” 영국 교육 3년 차, 아이가 그래도 뭘 하긴 하나 보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아이의 학습 결과물들에 나름 글씨의 형체가 보여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아이가 가장 잘하고 우리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뭐가 있을까?라고 물으니 선생님께서 좀 머뭇거리다가 “ Oh. Lucy has been eating very well in cafeteria... she is adjusting food here and don’t worry about it.”

<아. 우리 딸이 학교에서 잘 먹는구나> 웃으며 교실문을 나섰다.

“그래도 복많이가 잘 적응하나 봐, 음식도 잘 먹고.” 남편이 “그 유전자는 나를 닮은 거지 음 하하.” 애써 긍정적인 아이의 장점을 찾아보는 우리 부부의 노력이 가상하다고 자체 평가를 내려보며 복많이를 데리러 갔다. 학부모들이 상담을 하는 동안 학교의 큰 강당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영화를 상영해 주는 데, 멀리서 우리를 바라본 복많이가 웃으며 나온다. 볼 살이 확실히 다른 애들보다 뽕뽕한 것이 귀엽다.

잘 먹어서 착하다. 우리 딸!!

<형체가 보이기 시작하는 글들>


네 번째 학부모 상담 (Grade 2 - 2학년)


“She is doing in the level of …very well” 아이를 맡은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의 학업성취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기 시작하였다. 뭔가 정상적이다. <Unusual, Unique, Working forward to…>가 아닌 <Doing and very well>이라는 영어 단어에 아무 말없이 듣던 남편이 이야기하였다.

“We are Lucy’s parents.” 남편이 선생님이 혹시나 다른 아이의 학습 결과물을 보며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대화에 담임 선생님이 웃었다. “Yes, I know…she is doing very well and please, trust me…”

선생님의 이야기에 고단한 유학생활 찌든 남편의 얼굴 주름이 펴진다. “Ha Ha Ha.. Really?” 그 미소가 그동안쪼그라들었던 남편의 가오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우리가 영국에서 4년을 살았으니 딱 네 번의 학교 상담을 경험했는 데 지난 4년간의 역사가 아이의 영국 교육 적응에 나름 상승 그래프를 그려 주어 다행이다라는 마음도 들지만, 아이의 자유로웠던 영혼과 그 무한했던 창의성이 캠브리지의 영국 교육의 권위와 질서 그리고 예절 앞에서 사그라든 것은 사실이다. 파릇파릇 생생한 배추에 소금을 뿌려 그 탱탱함을 삭여야만 김치를 만들 수 있듯이, 아이의 기발함이 더 성숙된 무언가로 탄생해 보기를 기대해 보지만, 마음 한편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임을 인정한다.

<Doing very well. Lucy>


4) 자유로운 영혼이 길들여질 때쯤


영국 생활 4년 차, 아이는 영국식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어엿한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되었다. 팔 뒤꿈치를 식탁에 대지 않고 식사를 하고, 줄을 설 때에도 반듯할 뿐만 아니라, 어린애 다운 발랄함보다는 어른 다운 차분함이 아이의 몸 가짐에 익숙해질 무렵, 아이는 School council (반 대표)이 되었다. 반 아이들의 만장일치 투표 결과를 이끌어 내며 화려한 등극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다시 어디 가서도 기죽지 않는 가오를 뽐내며 아이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학부모들과 유쾌한 대화를 하는 자신감 넘치는 아빠가 되었다.


나 또한 아이가 지닌 반듯한 매너와 학업 성취에 다른 학부모들에게 조언과 훈수까지 두는 엄마로 거듭났지만, 아이가 영국 교육에 적응하기 위해 분투한 시간들 속에서 적지 않은 상처를 받은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이지만, 만약 선택의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그 시절 아이를 위해 캠브리지 교육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자연과 산책을 사랑했던 아이에게 예절과 규율보다는 아이가 지녔던 자유로운 발랄함과 천진한 아이다움을 조금이라도 더 지켜낼 수 있을만한 방법을 고민하지 않았을까?

가장 좋은 교육은 명성도 브랜드도 아닌 <내 아이>에게 제대로 맞는 교육을 찾아내 실현해 가는 여정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행복한 아이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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