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하고 단정한 교복에 칼라 있는 와이셔츠와 블라우스가 돋보이는 영국 캠브리지의 아이들... 만 네 살, 다섯 살의 어린아이들이 연음 없는 시크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린아이의 천진함과 사랑스러움을 넘어 그 에티켓에 감탄할 때가 있다. 유수의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들을 배출하고, 아름다운 캠 강의 물줄기가 흐르는 킹스 칼리지의 산책길을 걸어보고 캠브리지 주변을 여유 있게 산책할 때만 해도 미국과는 다른 그 경치에 한참을 감탄하곤 했었다.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까지의 상황이다.
남편이 포닥으로 캠브리지를 간다고 하였을 때 내심 좋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엄마로서 <아이의 첫 교육을 영국 캠브리지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야릇한 쾌감 같은게 있었는 데, 그 감정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마음 한편에 엄마라는 이름보다는 세속적인 부모의 숨겨진 로망이 존재했었던 것 같다. 아이의 기질과 성향을 생각지 아니하고 <캠브리지>라는 브랜드와 그 명성에 들떠 있었던 나날들을 지금 와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1) 영국식 교육을 거부한 자유로운 영혼
“내가 어디 가서도 가오가 죽지 않는 남자였는데...복많이(우리 딸 태명) 학교에만 가면 진짜....”
남편이 아이를 데려다주고 또 씩씩 거리며 온다.
“왜? 무슨 일인데 또?”
“Miss. Wood가 복많이 카펫에 안 앉는다고 앞으로는 의자에 따로 앉힌대, 그리고 무슨 그룹을 별도로 만들어서 교육한다고.”
복많이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그랬다. 우리 복많이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규칙에 일단은 반기를 들어보는 <거꾸로 하는 아이>의 기질을 가진 아이인 데...
“엄마, 그렇게 안 하면 어떻게 돼?”라는 질문을 수없이 했던 아이에게 영국 학교에서 가르치는 기본생활 습관과 예절이 아이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식사할 때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두지 않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는 것, 줄을 설 때 벽에 기대지 않고 반듯이 서는 것, 가방을 흔들며 다니 지 않는 것... 많은 에티켓들이 복많이에게는 쉽지 않은 난관들로 자리했었던 시절이었고, 복많이가 마음먹고 <그렇게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자!>의 실험정신을 발휘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Miss. Wood로부터 “ I have something to say about Lucy(복많이의 영어 이름).”라며 시작되는 대화를 이어 나가야만 했다.
아이가 영국 캠브리지의 교육 시절 중 (어린이 집 ~초등학교 2학년) 가장 좋아한 시간은 학교 뒤뜰에서 키우던 닭들을 구경하고 풀 숲이 우거진 나무 위에 올라가 유유히 사색하는 시간들이었다. 종종 교실 테이블 밑에서 나오지 않고 교실벽만 보고 있는 날도 있었는 데 그런 날에는 특수학급에 가서 조지라는 친구와 편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2) 학교에 불려가다
복많이가 학교의 비상벨을 전부 눌러 버렸다. 학교 비상벨의 소음에 맞추어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뛰쳐나온 일대 사건이 있어 났고 그 범인이 우리 복많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학교에 불려 갔다.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빠는 한껏 가오가 죽은 채...
교사 시절, 학급의 규칙을 무엇보다 강조했던 내가 딸아이의 교감선생님과 이런 만남을 하게 되다니... 인생은 정말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는, 맞추기 힘든 퍼즐 조각이라는 생각을 해 보며 상담실 문을 열었다.
나이 든, 조금은 딱딱해 보이는 교감 선생님과 귀여운 표정의 학교 상담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교감 선생님께서 학교 비상벨뿐만이 아닌, 이제껏 복많이의 수 많았던 <Misbehaviors>에 대한 브리핑이 이어져 나갔다.
남편과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We are very sorry... we will keep teach her appropriate manners as much as we can.”
부모가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사과와 고개 숙인 태도가 교감 선생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 녹였는지, 나이 든 그녀의 굳은 얼굴이 서서히 풀리면서 차 한잔 마시고 가라는 제안을 하였다. 그리고 본인이 손수 차를 타고 오겠다며 상담실 문을 나섰다.
교감 선생님이 상담실 문을 나서자 이제껏 교감 선생님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무언가를 기록하던 귀여운 표정의 상담 선생님이 작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소곤대었다.
“ Frankly with you……I really love her, she is very creative. Probably, this is just not right education for her.”
3) 캠브리지의 학교 상담
영국은 1년에 한 번 학부모 상담(Parents Evening)이 이루어지는데 학교 생활의 정보를 공식적으로 얻을 수 있고 자녀의 교과 성적 성취 정도를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선생님들은 아이가 이제껏 해 온 학습의 결과물들을 한편에 쌓아 두고 학부모들에게 보여 주고, 잘한 것은 칭찬하고 모자란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하는데 우리 부부에게는 이 날이 여간 곤역 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4년을 영국에서 보내며 네번의 학교 상담을 경험했는데, 아이의 학업성취 정도에 따라 그 역사가 달라진다.
첫 학부모 상담 (Nursery-어린이집)
“She is unusual.” 학교 상담에서 아이의 담임 선생님인 Miss Wood로부터 들은 첫 문장이다.
<아이는 학교 생활 부적응자로 문제 행동을 심히 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하고 최대한 우회적인 표현으로 돌려 이야기하는 데, 상담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남편과 말없는 한숨을 번갈아 가며 쉬었던 저녁이었다.
두 번째 학부모 상담 (Reception-0학년)
“She has unique characteristics for…”
그래도 작년보다는 나은 거 같다. 선생님의 우려의 소리가 감당할 정도다. 남편은 우리가 작년에 하도 맞아서 맷집이 생겨난 것일 수 도 있다는 얘기를 했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확실히 낫다. 상담이 끝나고 교실 문을 나가니 우리 다음 차례로 기다리고 있던 아이 친구인 Claudia 엄마가 환히 웃으며 교실 문을 들어선다. 벌써부터 알파벳의 필기체를 능숙히 쓸 줄 아는 아이 친구 엄마의 <“우리 애는 정말 잘하거든”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부럽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괜찮다...
<잘 먹고 잘 뛰는 복많이>
세 번째 학부모 상담 (Grade 1-1학년)
“She is working forward to…” 영국 교육 3년 차, 아이가 그래도 뭘 하긴 하나 보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아이의 학습 결과물들에 나름 글씨의 형체가 보여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아이가 가장 잘하고 우리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뭐가 있을까?라고 물으니 선생님께서 좀 머뭇거리다가 “ Oh. Lucy has been eating very well in cafeteria... she is adjusting food here and don’t worry about it.”
<아. 우리 딸이 학교에서 잘 먹는구나> 웃으며 교실문을 나섰다.
“그래도 복많이가 잘 적응하나 봐, 음식도 잘 먹고.” 남편이 “그 유전자는 나를 닮은 거지 음 하하.” 애써 긍정적인 아이의 장점을 찾아보는 우리 부부의 노력이 가상하다고 자체 평가를 내려보며 복많이를 데리러 갔다. 학부모들이 상담을 하는 동안 학교의 큰 강당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영화를 상영해 주는 데, 멀리서 우리를 바라본 복많이가 웃으며 나온다. 볼 살이 확실히 다른 애들보다 뽕뽕한 것이 귀엽다.
잘 먹어서 착하다. 우리 딸!!
네 번째 학부모 상담 (Grade 2 - 2학년)
“She is doing in the level of …very well” 아이를 맡은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의 학업성취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기 시작하였다. 뭔가 정상적이다. <Unusual, Unique, Working forward to…>가 아닌 <Doing and very well>이라는 영어 단어에 아무 말없이 듣던 남편이 이야기하였다.
“We are Lucy’s parents.” 남편이 선생님이 혹시나 다른 아이의 학습 결과물을 보며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대화에 담임 선생님이 웃었다. “Yes, I know…she is doing very well and please, trust me…”
선생님의 이야기에 고단한 유학생활 찌든 남편의 얼굴 주름이 펴진다. “Ha Ha Ha.. Really?” 그 미소가 그동안쪼그라들었던 남편의 가오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우리가 영국에서 4년을 살았으니 딱 네 번의 학교 상담을 경험했는 데 지난 4년간의 역사가 아이의 영국 교육 적응에 나름 상승 그래프를 그려 주어 다행이다라는 마음도 들지만, 아이의 자유로웠던 영혼과 그 무한했던 창의성이 캠브리지의 영국 교육의 권위와 질서 그리고 예절 앞에서 사그라든 것은 사실이다. 파릇파릇 생생한 배추에 소금을 뿌려 그 탱탱함을 삭여야만 김치를 만들 수 있듯이, 아이의 기발함이 더 성숙된 무언가로 탄생해 보기를 기대해 보지만, 마음 한편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임을 인정한다.
4) 자유로운 영혼이 길들여질 때쯤
영국 생활 4년 차, 아이는 영국식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어엿한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되었다. 팔 뒤꿈치를 식탁에 대지 않고 식사를 하고, 줄을 설 때에도 반듯할 뿐만 아니라, 어린애 다운 발랄함보다는 어른 다운 차분함이 아이의 몸 가짐에 익숙해질 무렵, 아이는 School council (반 대표)이 되었다. 반 아이들의 만장일치 투표 결과를 이끌어 내며 화려한 등극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다시 어디 가서도 기죽지 않는 가오를 뽐내며 아이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학부모들과 유쾌한 대화를 하는 자신감 넘치는 아빠가 되었다.
나 또한 아이가 지닌 반듯한 매너와 학업 성취에 다른 학부모들에게 조언과 훈수까지 두는 엄마로 거듭났지만, 아이가 영국 교육에 적응하기 위해 분투한 시간들 속에서 적지 않은 상처를 받은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이지만, 만약 선택의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그 시절 아이를 위해 캠브리지 교육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자연과 산책을 사랑했던 아이에게 예절과 규율보다는 아이가 지녔던 자유로운 발랄함과 천진한 아이다움을 조금이라도 더 지켜낼 수 있을만한 방법을 고민하지 않았을까?
가장 좋은 교육은 명성도 브랜드도 아닌 <내 아이>에게 제대로 맞는 교육을 찾아내 실현해 가는 여정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행복한 아이가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