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에게 중산층의 삶이란?
영국친구 Penny는 키가 183cm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키 큰 친구 Penny는 심리 상담사 일을 하고 있다고 하였는 데, 똑똑한 영국 캠브리지 사람들 사이에서 학사 자격증을 가진 심리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하였다. 남편 Richard는 목수일을 하는데, 이것도 수입이 좋진 않다고 하였다. Penny는 부모가 자신의 이름을 잘 못 지어 가난하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Penny는 영국 영어가 서툰 나와의 대화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고, 자신의 말을 천천히 이어가던 Penny와 캠 강을 거닐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이 왜 자연주의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철학에서부터 삶의 가치관, 본인이 읽은 책을 많이 이야기해 주었다. Penny는 한국문화와 음식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특히 명상을 좋아해서 불교와 사찰음식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영국에서 교회를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한 나에게 들을만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산책을 할 때면, 이 풀은 먹을 수 있고, 이 풀은 넘어졌을 때 살살 문지르면 상처에 좋고, 이 풀은 독이 있어서 장갑을 꼭 끼고 만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곤 했는 데, 지금도 가끔 산책을 하다 그녀가 말했던 여러 식물들을 만나면 반가워진다.
그녀는 참 좋은 친구였다. 언어가 다른 외국인 친구를 부담없이 대해주던 Penny.
그런데, 그 친구에게서 그때 당시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는 데, 그것은 그녀가 하는 여러가지 선택들에 관한 것이었다.
Penny는 종종 여행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고 이번에는 돈을 좀 많이 모았다고 하였다. 4월 부활절 방학에는 아들 Harry를 데리고 런던에 가서 공연을 보고 오겠다고 하였다. 나도 좋은 생각이라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자신은 ‘라이언 킹’을 보고 싶은 데, 초등학교 1학년 Harry가 제목만으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선택하려 한다는 불평을 털어놓기도 하였다. Penny가 이번에는 런던에 가서 정말 공연을 보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뒤, Penny는 그 돈을 Brexit을 반대하는 London strike에 참여하는데 모두 쏟아부어 버리고 말았다. Penny를 만난 4년여간의 세월 동안 Penny는 늘 그런 식이 었다. 자동차를 수리할 돈으로 채식주의자들이 일 년에 한 번 모인다는 자연주의 캠프에 가서 명상을 하고 돌아와 사시사철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남편 Richard의 허름한 10년전 자켓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Harry의 교복이 터지고 길이가 짧아져도 꽤 오래동안 거기에 돈을 소비하지 않았다. 패스트 패션이 후대에 남겨야 할 우리의 환경을 얼마나 파괴 시키는 지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하였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긴 했지만, 좀 사서 입어도 될 것 같은 데...라는 생각을 완전히 떨쳐낼 순 없었다.
돌아보면, Penny가 소비하는 돈의 주된 흐름은 늘 그녀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관과 삶의 철학이 가장 큰 요소로 작용했었던 것 같다. 지나면 지날 수록 자신의 가치관을 행동으로 실천하려 했던 그녀의 의지가 멋있게 다가온다. 유럽인들에게는 중산층을 구분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 중에 하나가 일정 수준의 좋은 아파트나 차의 소유와 같은 물질적 소득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이 지닌 가치관을 지켜낼 용기가 있는가? 의 물음에 Yes!라는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Penny의 삶에서 Yes라는 답을 발견한다.
멀리 타국에서 온 외국인 친구에게 Penny는 말 그대로 진정한 영국 중산층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