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냥 사랑하며 살아 보아요!
영국 런던에서 겪었던 일이다. 한국에서 온 친한 친구와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어떤 중년의 영국 부인이 자신들이 먼저 왔다며 식당 직원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흠…우리가 먼저 도착했고, 정중하게 <우리가 먼저 도착하였다>라고 그녀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그녀가 우리의 시선을 피해 레스토랑의 벽을 보며 <No>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와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며 레스토랑 직원과 벽을 번갈아 보며 이야기를 펼쳐 나갔다. 그리고 얼마 뒤, 시선조차 동양인에게 두기 싫은 그녀에게 레스토랑 직원은 먼저 자리를 내어 주었다. 벽을 보며 얘기하는 그녀에게서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참으로 창의적인 차별의 방법을 선물 받은 날이었다.
가족이 런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웨이터를 따라 지정 받은 테이블로 다가가니 그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있던 우리 딸 또래의 아이를 둔 가정이 본인들의 테이블을 옮겨 달라고 레스토랑 직원에게 요구를 하였다. 식사를 하던 도중에 말이다. 레스토랑 직원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우리를 보기 시작했고, 우리도 기분이 언짢아 중국 식당으로 갔던 경험이 있다.
2016년 6월이었다. 브렉시트를 묻는 국민투표가 이루어지고 투표자의 52프로의 사람들이 EU 탈퇴의 결정을 내린 바로 그 날, 우리 가족은 평소처럼 마트에서 소소히 장을 보고 걸어가던 중이었다. 바로 그때 오픈카를 탄 4명의 대머리 남자들이 우리가 있는 인도 옆으로 차를 붙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Go back to your country... fucking.... ugly...."
갑작스러운 외침과 그들의 외형적인 모습에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며 남편은 장을 본 비닐봉지를 잽싸게 나에게 건넨 뒤 아이의 두 귀를 막고 <뛰어!>라고 외쳤다. 사색이 되어 뛰어가는데 뒤에서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최악의 경험이었고, 기분 나쁨을 넘어 공포감을 느꼈다. 그날은 우리 말고도 동양인들, 아랍인들, 인도 사람들이 심한 말을 많이 들었다더라... 등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아이의 학교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5, 6학년의 고학년 학생들이 어린 1, 2학년 아이들의 손톱에 매니큐어도 발라주고, 케이크도 팔고, 스티커와 페이스 페인팅 같은 아기자기한 활동들을 준비하여 기부금을 마련하는 행사였다. 동전을 챙겨간 만 다섯 살이 된 딸아이가 학교 행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매우 재미있는 것을 배웠다는 듯이 자신의 손가락을 양쪽 눈으로 가져가 쭉 찢어 대면서 계속 웃는 것이었다. 자초 지종을 들어보니 유일한 동양 아이였던 딸아이가 6학년 반에 가자마자, 6학년 학생 중 한 명이 양 손으로 눈을 찢고 웃어 대었고, 그중 또 대여섯 명의 친구들이 딸아이를 향해 손가락으로 눈을 찢으면서 놀린 것이었는데, 아이는 뭣도 모르고 자기랑 재미있게 놀아준다고 생각하며 자신도 눈을 찢는 표정을 따라 짓자 그 반에 있는 학생들이 박장대소를 하였고, 아이는 이것을 'So Cool'한 장난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물론 학교에 가서 적절한 항의도 하였지만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었다.
인종차별... 매해 설날이나 추석이 찾아오는 것처럼 잊혀질 만할 때 즈음 항상 자신의 존재를 상기시키며 예상치 않은 곳에서 위풍 당당히 찾아오곤 했던 그것!
해외 살이를 통해 겪게 된 여러가지 인종차별은 정도에 따라 신체적 위협과 공포를 느끼는 적극적인 차별부터 꽤 오래 생각해야 당했다는 것을 깨닫는 교묘하고 소극적인 인종차별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와 성격이 매우 다양하다. <다름을 틀림> 으로 인식하고, 정체불명의 폐쇄성으로 자신들을 무장해 버리고 타인에게 아픔을 주는 과오가 계속되는 것이 안타깝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영어를 전혀 못하던 미국 생활 첫해, 교통신호를 어겨 경찰에게 잡혔던 경험이 있다.
"You can't turn right on a red light, Where do you come from?."
"YES!"
"Can you show me your drive license?"
"I HAVE MY HUSBAND."
말이 전혀 안 통하는 동양 여자를 짠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나이 지긋한 경찰관이 한숨을 푹 쉬며 " Please, drive safe, and good luck to you"라는 말과 함께 손을 흔들어 주었던 그는 확실히 자신과 매우 다른 타인을 긍휼함의 시선으로 거두어 드린 여유와 관대함이 있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는 성경의 구절처럼 많이 서툰 인간에게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주신 것이 아닐까?라는 따뜻한 상상을 해 보며 이 글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