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랄라 Jan 24. 2020

스웨덴! 뭐가 좋아요?

공짜 수돗물 벌컥벌컥

스웨덴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한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김치를 한창 담그고 있던 나에게 물었다.


“엄마! 스웨덴에는 왜 오신 건가요?” 아이가 장난으로 인터뷰 놀이를 하는 것 같아 대충 대답하였다.

“스웨덴에 오기는 왜 왔겠니? 아빠가 영국에서 일 없으니까 여기 직장 얻어서 온 거지.”

“그럼 스웨덴에 와서는 뭐가 제일 좋은가요?”

“좋은 거? 모르겠는데… 아… 수돗물 공짜로 벌컥벌컥 마시니까 좋은 거 같기도 하고… 엄마 바쁘니까 저리 가서 놀아.”

믹서기에 김치 양념을 드르륵 돌리며 건성으로 대답하는 나에게 아이가 “알겠어요!”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김치 양념을 열심히 배추에 버무리기 시작하였다.


며칠 뒤, 학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학급 전체 학부모님 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이 왔다. 아이들이 이민이라는 주제로 그룹별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동영상을 만들어 인스타 그램에 올렸다는 것이다. 별생각 없이 아이와 함께 동영상을 클릭하였다.


 한 친구가 마이크를 잡고 반 친구들에게 질문을 한다.

“어디서 왔어요?, 언제 왔어요? 어디서 살고 있나요? 등의 질문과 그에 따른 대답들이 자유롭게 오고 가고 있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도 묻는다.

“스웨덴에는 왜 왔나요?”

아이의 대답이

“아빠가 영국에서 직장이 없어서요.”


순간 얼굴이 화끈 해 진다. 또 한 번의 질문이 더해진다.

“스웨덴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이 뭔가요?”

“우리 엄마가요. 좋은 거 잘 모르겠는데 스웨덴에서는 물을 공짜로 먹을 수 있어서 좋대요.”


이런! 이 동영상을 학급의 모든 엄마와 아빠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귀가 뜨거워졌다.


좀 멋지게 말할 것을…

내 학부모 인생 최대의 굴욕을 스웨덴에서 맞게 된다.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씻어내려 아이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사실은 엄마는 말이야. 스웨덴의 물이  좋긴 좋은데 공짜여서 좋은 건 아니고…(말하면서도 궁색하다) 물이 진짜 맑고, 너~~ 무 아름답잖아.”

“맞아요! 수돗물도 공짜로 막 먹을 수 있고…”

아이의 마음속에는 이미 <스웨덴의 좋은 점 = 공짜 수돗물 벌컥벌컥>이 등호 관계로 자리 잡은 것 같다.


곁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킥킥 대며 웃었다. 나도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웃으니 왜 웃는지도 잘 모르는 채 아이도  그렇게 그냥 다 같이 웃어 버렸다.

가족의 즐거운 웃음 안에서 공짜 수돗물 벌컥벌컥이 뭐 어때서? 라는 배짱도 생겨난다. 

 

어쩌면 스웨덴이 좋은 진짜 이유는

딸의 인터뷰에 무심코 나온 말처럼 공짜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자연과, 저녁시간 가족이 노을을 바라보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파스텔 오렌지 빛으로  물드는 좋은 저녁, 가족의 웃음소리가 유쾌하다. 

<저녁의 여유>


이전 13화 영국을 떠나오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