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나 생후 6주 만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던 아이는 다시 생후 두 돌이 넘어갈 즈음 미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순둥이의 모든 특성을 지닌 우리 집 아이는 잘 울지도, 징징대지도 않는 일명 ‘보살’과 같은 성격을 타고났다. 태명이 ‘복많이’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지었다.
복을 갖고 태어난 우리 집 복많이는 2년 만에 홀연히 본인이 태어난 곳으로 컴백하여 자신만의 독보적인 스타일로 희한한 에피소드들을 탄생시켜 갔다. 복많이의 2살 인생이 펼쳐진다.
# 거꾸로 하는 아이
*미국은 보육시설(daycare)이 비싼 관계로 부모가 일정기간 아이를 돌보는 경우가 많다. 그 당시 나 또한 공짜로 진행하는 많은 프로그램을 찾아다녔다*
<도서관 책 읽기 프로그램>
“ 여기서 앉아서 듣자, 제발 앉아라....”
말이 끝나자마자 거리낌 없이 일어선다. 그리고 저 구석 책꽂이 모퉁이에 앉는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자기가 누울 만한 이불 사이즈로 책을 가지런히 놓고 눕는다. 뒹글 뒹글... 딸기 표지가 보이는 책은 어김없이 핥아 가며...
“더러워... 에지 에지... 고만해.”라고 눈을 흘겨보지만 울지도, 보채지도 않는 우리 복많이 꿋꿋하다.
벌떡 일어나 책을 읽어주는 곳만 제외하고는 모든 곳을 돌아다닌다.
그 옆에 비슷한 한국 아이 발견... 이름이 세찬이다. 이 아이도 복많이와 비슷한 종자... 막 돌아다닌다.
<거금을 들인 음악교실>
“안 되겠어. 공짜 프로그램이라 막 돌아다니나 봐. 돈 좀 써서 좋은데 보내보자.”
“그러자.” 남편과의 합의 후에 우리가 선택한 곳은 한 학기에 200달러 하던 음악교실.
신나는 아기 동요와 함께 선생님의 제스처가 발랄하다.
“Everybody! follow me.” 선생님이 기타를 치며 발을 구른다. 모든 아가들이 발을 구르는데 우리 복많이는 손뼉을 친다. 점프를 하면 앉고, 빙글빙글 돌라고 하면 서고, 박수를 치라고 하면 발을 구르는 우리 복많이의 헛짓에 기타를 치던 귀여운 금발머리 선생님이 다시 한번 소리친다.
“Everybody. look at LUCY<복많이의 영어 이름>, and jump like LUCY.” 아이들이 복많이를 따라 점프를 하자, 복많이는 점프를 멈추고 이제는 혼자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돈 들여도 소용없잖아.” 남편의 불평이 나오고, 애가 왜 이러지?라는 궁금증에 한국에서 아이를 돌봐줬던 친정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애가 거꾸로 해.”
“원래 걔는 거꾸로 하는 애야... 기기 시작할 때도 뒤로 밀면서 기었어.”
딸이 그나마 가장 좋아했던 방울놀이
<야외 댄스 프로그램>
모든 아이들이 노래 부르며 춤추기 시작한다. 우리 복많이... 풀밭에서 꽃을 딴다... 말해 무엇 하리오!!!
#맛을 아는 아이
우리 복많이는 본능적으로 타고난 미각을 지녔다. 저녁 먹고 산책으로 자주 다녔던 학교 기숙사 저편에는 야생 자두나무가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가끔 안아서 올려주면 열매를 따는 재미에 빠져들던 아이가 파랗게 설 익은 자두를 먹기 시작하였다. “아야.. 시어서 못 먹어.”라고 이야기해도 연신 맛있게 쪽쪽 빨며 먹는 아이의 자두를 뺏아 살짝 맛을 보니 기가 막히게 달고 맛있는 것이었다.
봄철에는 딸기를 따러 다니고 가을철에는 사과를 따러 다녔다. 그리고 어김없이 우리 복많이는 항상 가장 달콤하고 맛있는 과일들을 땄고, 복많이가 딴 과일은 당분이 다른 과일보다 월등히 높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라산 중턱 출신의 남편도 어린 시절 산에서 밤이며, 고사리며, 산딸기며, 온갖 종류의 먹을 수 있는 것을 채취하는 데 월등한 능력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아마 그 유전 인자를 타고난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남편은 어느 나라를 가나 먹거리를 야생에서 채취하는 요상한 능력이 있는데, 포닥으로 간 영국에서는 그 동네에서 처음으로 명이나물을 근처에서 발견하여 동네 지인들에게 알려 주는 신통방통함으로 어른신들에게 사랑을 받았었다.
<이게 맛있는 거야>
#아이의 친구들
<수수, 세찬, 모모 그리고 댄의 아들>
아이와 함께 2살 인생을 장식했던 아이의 친구들은 남다른 개성을 자랑하였다.
수수는 캐나다 아빠와 한국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천사이다. 우리 복많이에게 신발을 신겨주고, 먹을 것을 항상 먼저 챙겨주고 손을 잡아 주었던 천사!
세찬이는 이름 그대로 세다. 가끔 밀고 때리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나 잘 제어해 나갔다. 뛰면서 아이들을 쫓아다니는 성질이 있어서 복많이와 수수의 다리 근육을 튼튼하게 해 주었던 고마운 친구! 한때 세찬 엄마가 빡빡으로 머리를 깎아 버려서 꽤나 웃음을 주기도 했던 귀염둥이이다.
모모는 우등생이다. 중국어, 한국어, 영어에 능통하다. 두 살 때부터 삼개국어가 가능한 아이인데 무엇을 못하겠는가? 엄마 아빠가 베이징 대 출신이라 그런지 남다른 두뇌의 소유자로 기억되는 똑똑이!
댄의 아들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댄의 아들은 아이돌보다 잘생겼다. 중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댄의 아들은 우리 복많이의 첫사랑이다.
알아 맞춰 보세요! 누가 누구일까요?
#수영복을 입고 수술대 위에 눕다
복많이가 Monkey bar에서 떨어졌다. 좀 울다 말겠지 했는데 계속 울었다. 뭔가 이상했다. 남편이 아이의 팔을 살짝 틀어 보니 웬만해선 잘 울지 않는 복많이가 엄청 울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하다! 응급실로 가자.” 남편이 이야기했고, 서둘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복많이에게 “우리 병원 가야 돼.”라고 이야기하니...
복많이가 핑크색 별이 박힌 하얀색 수영복을 들고 나왔다. 입고 간다고 난리다.
“왜? 도대체 왜? 병원인데 왜 수영복?” 하도 우겨서 만지기만 해도 아픈 팔을 조심해가며 수영복 입히기에 성공했다. 수영복을 입고 응급실에 도착해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니 팔이 골절되고 뼈가 부러져 있다고 하였다. 놀라고 속상하고 걱정이 가득이었는데 복많이가 마취를 위해 수술대 위에 누우니 의사 선생님이 웃는다.
“Wow, one of the most beautiful customs in this surgery room.”
남편도 웃고, 나도 웃고, 복많이도 웃었다. 그리고 우리 복많이 깔깔깔 웃으며 마취에 스르르 빠져 들어갔다.
수술은 성공이었고, 아이는 깁스와 수영복을 입은 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수영복을 가위로 잘라내야 했던 불상사가 있긴 했지만...
이렇게 미국에서 1년 남짓 짧은 시절을 보낸 복많이는 세돌이 되어갈 무렵 핑크색 깁스를 채 빼지 못한 채 영국으로 가게 되었다. 남편의 포닥 과정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