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트 칼리지(State College)를 벗어나 뉴헤이븐(New haven)으로 옮긴 후, 나도 남편의 학교 근처 주립대에서 특수교육 석사과정에 지원을 하였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계절도 바뀌어 갔다.
그즈음,분주하고 살뜰히 자신의 삶을 챙기던 한국의 친구들에게서도 결혼, 출산, 집 마련 등에 대한 소식들이 간간이 들려왔다. 남편과 나도 공부 외에 출산과 집에 대한 화제가 대화의 주제가 되곤 하였다. 매달 내는 월세와 각종 공과금이 만만치 않았다.
뉴헤이븐의 첫 번째 집은 대학교가 소유한 부동산 회사에서 학생들에게 렌트를 제공하던 아파트였는데, 아침마다 창문을 열면 옆 건물의 허름한 벽면이 눈 앞에 활짝 펼쳐지곤 했다. 이 야릇한 전망권을 지닌 뉴헤이븐의 첫 아파트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쥐가 떠오른다. 철마다 관리인이 쥐덫을 갖고 방문하던 신기한 곳이었는 데, 우연히 손님이 올 때마다 쥐덫에 걸린 쥐가 ‘찌익 찍찍찍’ 함께 환영을 해 주며 손님을 맞이하곤 했다. 오랜만에 놀러 온 절친했던 친구 가족이 <허걱> 하며 놀랐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모두가 웃었고, 겨울에 난방 하나는 또 끝내주게 잘 되는 집이었다. 미국 동부의 시리고 추웠던 겨울철 칼바람에도 반팔티셔츠를 입고 지내던 따뜻한 집이었다.
그다음 집은 렌트비가 750달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사를 결심한 이유는 순전히 렌트비 때문이었다. 좀 더 저렴한 가격의 집들이 우리를 유혹했다. 첫 번째 쥐 나오던 집은 1000달러를 넘어갔는데 두 번째 집은 이보다 저렴하니 이사할 가치가 있었다.
렌트비가 저렴했던 그곳은, 당시 뉴헤이븐의 소위 슬램 가라고 할 수 있는 마을의 경계에 자리 잡은 집이었는데, 아랫집 청년의 마리화나 냄새가 자주 올라왔다. 괜찮을 거야! 좀 조심하며 지내면 되지 뭐...라고 자신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어디에서 실탄이 발견되었다는 소식,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집 근처에서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쳤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휴지통에서 누군가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뒷날 아침 보도 되었다.
어찌 보면 미국에서 살았던 여러 집 중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
근데 이게 참 인생의 묘미인가 싶다.
무섭고 위험했던, 그리고 제일 저렴한 렌트비를 지불했던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가장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