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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Feb 27. 2024

프랑스 연구실에서 스키여행을 가다 (Day 1&2)

이제 프랑스에서 연구실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다. 2개월 전쯤, 그룹미팅을 할 때 누군가 겨울에 스키여행 가면 어떻냐는 제안을 했다. 스키를 좋아하는 보스는 좋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 보스는 매년 겨울 휴가로 스키여행을 간다.) 그렇게 한 명이 총대를 메고 스키여행을 진행했다. 먼저 인원을 확정하느라 신청자를 받고 가능한 날짜들을 투표했다. 그렇게 정해진 게 14명, 2월 1~4일까지의 3박 4일 여행이 되었다.


우선, 나는 스키를 못 탄다. 한국에서 스노보드를 몇 번 시도해 보긴 했다. 균형 잡는 것 자체가 어려워서 하도 많이 넘어져서 스노보드를 타고는 거의 일주일을 멍든 몸에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눈이 오고 길이 조금만 미끄러워져도 나는 걷는 것조차 두려워진다. 워낙 잘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키를 못 타서 스키장에 가더라도 스키를 탈 생각은 없었다. 난 아픈 게 싫으니까. 그저, 이곳은 어떤지 구경하고 연구실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가고-그저 나는 프랑스에 있는 동안 경험할 수 있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었다.


장비대여가 필요한 사람들도 모두 따져보느라 몇 번의 설문조사 메일들이 오고 갔던 것 같다. 그렇게 모든 게 정해지고, 마지막 일정은 가서 먹을 것이었다. 진행을 맡은 한 친구가 내게 그룹을 나눠서 하루씩 저녁을 담당하려고 하는데, 하루를 내가 전두지휘하며 해도 되냐고 물었다. 요리 잘하지 않냐고 하면서- 그래서 내가 그러겠다고 했더니 며칠 뒤 메일로 요리담당 그룹이 나눠졌다. 내가 속한 그룹의 이름은 “학위 보스” (물론 내 본명이 확 위는 아니다)였다. 첫 번째 그룹은 같은 프로젝트에 속한 사람들로 이탈리안 2, 스페인 1, 룩셈부르크 1, 레바논 1로 꽤 글로벌한 모임이었다. 두 번째 그룹은 프렌치 그룹이다. 보스를 포함한 정규직 3명의 어른들에 프렌치 포닥과 프렌치 박사과정생이었다. 마지막 그룹이 내가 속한 그룹으로, 가장 소수였다. 나와 루마니아인과 두 명의 이제 막 박사과정을 시장하는 프렌치들이었다.


무슨 요리를 하자고 할지 고민을 꽤나 많이 했다. 한국요리를 할까 싶어 메뉴를 골라보기도 하는데, 재료들을 다 챙겨가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다른 메뉴 옵션도 있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 한국 요리 2종류와 태국의 팟타이를 후보로 골라두고, 같은 그룹 멤버들과 상의했다. 만들기도 간편하고 사람들이 익숙해서 잘 먹을 것 같은 메뉴라며 팟타이를 선택했다. 가기 하루 전날 아시아마켓에서 장을 보고 필요한 재료들을 챙겼다. 팟타이를 위한 소스는 미리 집에서 만들어 준비했다. 평소에는 더 많은 스리라차 소스를 넣지만, 매운맛에 약한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 절반만 섞어 준비하고 따로 스리라차 소스를 챙겼다.


Day 1_보스의 차를 타고 4시간을 가다.

숙소에서 누구와 방을 잘 건지도 정해야 했고, 차 4대에 나눠 타고 가면서 누가 누구 차에 탈 것인가도 정해야 했다. 나에게 선호하는 거 있냐 그래서 나는 아무거나 된다고 했더니, 애들이 나를 보스 차에 타게 만들었더라. 보스가 타는 차에 다른 친구 한 명과 같이 가게 되어, 전날 보스에게 몇 시에 어디서 만날지도 확인하고 다음날 시간에 맞춰 약속장소인 일터로 왔다. 스키장에 가지 않는 동료들은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주 소수) 그 외에는 다른 곳에서 만나 출발하기로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보스와 함께 차를 타는데, 고맙게도 동료가 보스 옆자리 조수석에 앉아 나는 뒷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갈길이 멀었다. 4~5시간 보스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야 한다. 나는 친한 사람과는 말이 많은 편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말이 굉장히 없는 사람이다. 더군다나, 영어로만 대화를 하는데 영어를 할 때면 아무래도 약간의 언어장벽이 있으니 한국어처럼 자유롭지 않아서 더 말이 없어지는 편이었다. 거의 4시간 동안 보스와 옆 자리의 동료가 대화를 나누고 나는 뒷좌석에서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 어쩌다가 몇 마디를 곁들일 뿐이었다. 너무 그렇게 듣기만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잠시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우리가 가는 곳은 몽블랑 근처의 사모엥이었다. 가는 길이 스위스를 통과해서 가는 길과 프랑스로만 해서 가는 길이 있는데, 우리는 스위스를 통과해서 시간을 단축해서 도착했다. (다른 나라를 거쳐간다고 하기에 나는 여권까지 챙겨 왔다. 혹시나 검문이 있는 경우에 필요할 테니 말이다.) 스키장들이 곳곳에 있는지 점점 한국 강원도 같은 주변 풍경으로 바뀌고 산들이 눈에 덮여있었다. 그런 길들을 계속 따라가다가, 한쪽으로 꺾어 들어가니 나무 오두막 같은 여러 집들이 여기저기, 한국 강원도에 펜션들이 빼곡히 있는 것 마냥 빼곡하게 있었다. 우리가 예약한 곳 앞에 차를 주차하고는 주인을 기다렸다. 열쇠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았다. 총 3층의 나무집이었다. 나무로 되어 있어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창문들의 블라인드를 다 열으니 밝은 빛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집은 안락했다. 주방을 살펴보니, 주방에 거의 모든 게 다 갖춰져 있었다. 커피머신, 식기세척기, 오븐, 전자레인지, 토스터, 심지어 이튿날 하끌렛을 먹으려 했었는데, 핫끌렛 그릴도 이미 다 있어서 빌릴 필요도 없게 되었다.

30분이 지났을까 사람들 탄 차가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집에 들어오며 모두 반갑게 인사했다. 다들 4~5시간의 로드트립을 하면서 조금 지쳐있는 상태였다. 모두 잠시 휴식을 취했다. 숙소에는 닌텐도도 있어서 몇몇 사람들은 마리오카트를 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오고는 미리 장 봐온 물건들을 주방에 정리정돈을 했다. 노는 사람, 그리고 일하는 사람이 조금 나뉘기도 하더라.

프랑스는 한국보다 저녁시간이 늦은 편이다. 아마 대부분의 유럽이 그럴 것이다. 식당도 저녁 7시부터 연다. 연굿실 no.2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그녀를 기다렸다가 그녀가 도착할 때쯤 시간에 맞춰서 저녁을 하기로 했다. 7시쯤부터 레바논 친구가 사 온 후무스에 당근 같은 것을 찍어먹기 시작했다. 모두가 후무스를 좋아했다. 다들 배고프니 1 kg 되는 후무스를 금세 해치운 것 같다. 첫 번째 그룹이 저녁을 요리하기 시작하는데, 사람은 5명인데 실제 요리하는 인원은 2명이었다. 이탈리안이 오븐에 오븐 베이크 파스타를 만든다고 했고, 스패니쉬인 친구는 스페인식 오믈렛 (감자, 양파를 넣은)을 만든다고 했다. 이탈리안의 파스타라 기대했지만, 간편하게 요리하기 위해서였는지, 시판 토마토소스에 가지를 잘라서 한번 익혀주고는 그대로 익힌 파스타와 토마토소스, 그리고 사온 베샤멜소스를 섞고, 그 위에 프로볼로네 치즈를 얹어서는 오븐에 굽는 게 다였다. 아무래도 여러 명을 사람들을 위해 간편한 요리라 그랬던 것 같다. (조금은 아쉬움이 있었다.) 팬에 스패니쉬 오믈렛을 하나만 했기 때문에 아주 작은 조각으로 잘라 모두에게 한 조각씩 나눠주었다. 그냥 무난하게 알고 있던 맛의 스패니쉬 오믈렛이었다. 그다음으로 먹은 파스타는 베샤멜과 토마토소스를 섞었기에 한국에서 말한느 로제파스타의 맛이었고, 정말 무난하고도 무난한 맛이었다. 베샤멜이 조금 과한지 먹으며 조금 느끼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한국인으로 피클이라도 한 조각 먹고 싶었다.


저녁을 먹고는 술을 마시며 대화들을 나누었다. 프랑스인들이 2/3로 과반수를 넘어서 많은 대화가 불어로 진행되었다. 유일하게 불어를 못하는 나만 조금 많이 소외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불평할 수 없었다. 2년 동안 프랑스에 있으면서 불어를 배우지 않은 건 내 잘못이니까 말이다.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사람에게 내가 뭐라 하겠는가...


Day 2_남들은 스키장에, 나는 혼자만의 여유

잠을 굉장히 잘 잤다. 내방은 외부로 창문이 없어서 빛이 하나도 없어서 평소보다도 더 깊게 잠들었던 것 같다. 내가 자는 방은 두 개의 방의 중심에 화장실을 공유하는 형태였다. 화장실에 문이 두 개로 양쪽 방과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그렇기에 4명이 하나를 써야 하니,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마치고 조금 쉬다가 주방과 거실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미 사람들 절반이 일어나서 빵과 커피등으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착한 한 명이 모두가 먹을 수 있게 계란으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었다. 인상적인 것은 지금까지 본 사람 중 버터를 가장 많이 넣어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드는 거였다. 저렇게 버터를 많이 넣으면 당연히 맛있겠지-싶었고 역시나 그랬다. 각자 내키는 대로, 토스트를 먹던, 바게트를 먹던, 누텔라를 발라 먹거나, 버터를 발라먹거나, 바나나를 먹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하는 등 자기만의 아침식사들을 해결했다. 그 후 사람들은 스키장에 갈 준비들을 했다. 내가 스키를 타러 가지 않겠다 하니, 보스와 몇몇 사람들은 정말이냐며 계속 물었다. 스키를 좋아하는 그들은 내가 이해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 멀리까지 와서 안 탄다니 더 이해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저 아픈 게 싫을 뿐이다.


사람들에게 Have fun 하라고 인사를 하며 배웅을 하고 숙소에 혼자 남는다. 혼자 남으니 잔잔한 노래도 틀고, 커피도 새로 한잔 준비한다. 미리 챙겨 온 드로잉저널을 꺼낸다. 물붓과 펜, 고채물감을 모두 챙겨 왔다. 완성하지 못했던 지난 여행저널링을 한다. 2022년 것을 아직도 마무리하지 못했다. 에펠탑을 그리고 열심히 색칠하고, 빈 페이지에 새로운 내용 들어  채워 넣는다. 조용한 곳에서 잠시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고 나니 조금 졸려오더라. 피곤하니 방에 가서 낮잠을 청했다. 알람을 맞췄다. 방에 빛이 안 들어오니 까딱하면 남들 올 때까지 잘 수 도 있기 때문이었다. 두 시간가량 느긋하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다시 그리던 것을 계속 그리며 시간을 보낸다. 평화로운 휴식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혼자 여기에 남아있는 내가 조금 바보 같은가 싶기도 했다. 도전하지 않고 모험하지 않은걸 혹시 나중에 후회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날 저녁은 프랑스인들이 준비하는 라끌렛이었다. 치즈를 녹여서 감자, 햄, 작은 피클과 곁들여 먹는 것이다. 한국인들과 먹을 때는 더 다양한 채소도 준비해서 곁들이기도 했는데, 프랑스인들은 단호했다. 라끌렛은 이거면 된다는 거다. 양파도 위에 올려 굽는 것에 대해 질색하는 프렌치도 있었다. 그 옆에 다른 프렌치는 "나는 양파 괜찮아"라고 하기도 했다. 작은 피클은 꼬르니숑이라 하는데, 누군가 피클 좀 건네달라 하자, "이건 피클이 아니야. 이건 꼬르니숑이야"라고 하더라. 자기 나라 음식에 대한 고집이 보였다. 다시 라끌렛에 대해 얘기하자면, 라끌렛은 맛있다. 진한 치즈에 감자와 햄, 피클의 조합은 사실 정말 다른 게 필요 없을만하다. 여기에 와인까지 곁들이면 정말 맛있다. 한국에 돌아가면 라끌렛이 그리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모두 그렇게 한동안 라끌렛을 즐기며 와인을 즐겼다. 첫째 날에 주로 맥주를 마셨다면, 라끌렛을 마셔서인지 둘째 날에는 주로 와인을 마셨다. 나는 어쩐지 크게 잘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게 심심하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스키를 타는 동안 그렸던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내 나름대로 좋은 시간을 보냈음을 어필했다. 젊은 친구들은 (대부분 나보다 열 살 가까이 어리다) 보드게임을 하며 놀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마리오카트를 했다. 정말이지 둘 다 내가 안 좋아하는 것들이다. 나는 와인이나 마시며, 일부 사람들과 대화를 좀 나누다가 그들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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