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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Feb 24. 2024

아이들과 그림 그리는 토요일

나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한글학교 유아반 보죠교사로 매주 토요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보조교사이기에 메인 선생님이 주로 그날 할 일들을 정하시고 나는 그저 그 옆에서 필요한 걸 도와주는 정도이다. 그것도 사람이 많을 때에나 큰 도움이 되었지만, 이번 학기에는 유아반에 등록자가 세 명뿐이라 내가 과연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했다. 1월에 메인 선생님이 한국에 가신 후 아직 돌아오지 않으셔서, 한 주는 내가 홀로 아이들을 케어해야 했다. 한번도 내가 수업 일정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혼자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나마 모두 출석해도 아이들이 세 명 뿐이라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하겠다. 조카가 5명인 내게는 아이들 세명 정도는 이미 익숙하기는 했다. 하지만 조카들을 돌보듯 그냥 노는게 아니라 아이들이 뭔가를 배워가게 해야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압박감을 받았다.


주중에 주말에 뭘 해야할까 고민하여 유투브로 어린이 그림수업이나 어린이 창의력 게임과 같은 검색어들을 입력하곤 했다. 그러나 마스킹테이프로 그림처럼 붙여두고는 휴지심지를 잘라 펼쳐내고 색색 물감을 묻혀 불꽃처럼 표현하는 놀이를 보았다. 아이들과 함께하기 좋아보였다. 그렇게 물감놀이를 하고, 시간이 되면 한글 공부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계획을 세워두고는 토요일 당일이 되었다. 아침에 휴지심지와 물감, 스케치북을 챙겨서 한글학교로 향했다. 한 명은 한국어를 못하고 불어만 할 줄 아는 아이라 걱정했는데, 결석이었다. 한국어를 잘하는 만 3, 4세의 아이들 둘만이 있었다. 아이들을 반갑게 반겨주고 데려다 준 부모님들과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아 오늘은 불꽃놀이를 할거라 했다. 유투브에서는 건물들을 마스킹 테이프로 만들고 불꽃놀이를 했지만, 한글학교이니 아이들이 글자를 더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해 자기 이름들을 마스킹 테이프로 붙여둔 후, 물감으로 찍어서 꾸미고 글자로 붙여둔 마스킹 테이프를 떼어내기로 했다. 아이들은 자기 이름 쓰기를 좋아한다. 아직은 혼자서는 쓰지 못하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이라 그런지 자기애가 강한 것 같다.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고, 뭔가를 얘기하면 “나 그거 좋아하는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다. 이런 아이들을 볼 때면 나도 어릴 때 이랬을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면 종종 이들에게서 힘을 얻는다. 누군가는 쉬는 주말에 아이들 수업하고 그러면 힘들지 않냐고 묻곤 하지만, 오히려 일주일에 짧은 이 두시간이 힘들었던 한 주에서 오히려 내게 생기를 주는 시간인 듯 하다.

내가 혼자 한 주 수업을 잘 해내자 원래는 휴강하려던 그 다음주 유아반 수업을 홀로 맡아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다. 물론 가능하다 대답했다. 이번에는 내가 어릴 때 했던 데칼코마니를 해볼 생각으로 또다시 물감을 챙겨갔다. 이 날은 프랑스어만 할 줄 아는 아이까지 수업에 와서 세명의 아이와 함께했다. 불어만하는 Y가 수업에 들어올 때 아침에 짜증이 조금 있었는지 기분이 안 좋아보여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한국말로 설명을 하며 몸짓으로 보여주니 다 알아듣는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아이들은 데칼코마니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붓을 꺼내 붓으로 그림그리기를 하기로 했다. 4살인 J와 3살인 B는 한국말을 잘하고 둘이 친해서 서로 대화하며 그림을 그렸다. 한국말을 못하는 5살 Y는 차분하게 자기 혼자 집중하길 좋아하는 듯 하다. 그림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고, 조용한 듯 하지만 자기 주장은 확실했다. 좋고 싫음이 분명했다. 아이들이 한국어에 노출을 많이 시키는게 이 유아반의 목적이라 한국어로 말을 걸면서도 내가 그림그리며 힐링할 때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려고 차분한 배경 음악도 틀어주었다. 기분이 별로였던 Y가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들었다. 뿌듯함이 들었다. 아이들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혼자 아이들을 케어해야해서 걱정도 많았지만 아이들도 나도 좋은 시간들을 보낸 듯 하다. 귀엽고 평화로운 토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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