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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Feb 27. 2024

프랑스 연구실에서 스키여행을 가다 (Day 3&4)

Day 3- 하이킹을 하고, 내가 팟타이퀸이 되다.

첫날 스키를 마치고, 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음날도 스키를 탄다고 했지만, 절반의 사람들은 하루면 충분하다는 듯했다. 그렇게 셋째 날 아침이 밝았고, 전날과 같이 아침 식사에 사람들이 각자 내키는 대로 아침을 챙겨 먹고 있었다. 싸구려 커피믹스를 먹지 않는지 보스와 no.2가 내켜하지 않아서 전날 마트에서 더 사온 그나마 나은 캡슐 커피가 있었다. 그들의 까다로운 입맛 덕분에 맛없는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좋았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딱히 어디 갈 데가 있는 게 아니니 서두를 것도 없었다. 스키를 타는 사람들만 서둘러 준비하여 떠난 후, 대부분 아침을 먹던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아깝게 느껴서인지, 인터넷으로 주변에 하이킹을 갈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보곤 했다. 그들이 먼저 말한 것은, 몽블랑을 제법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케이블카 같은 것이 있는 곳을 가는 거였다. 하지만 가기 위해서는 한 시간 반 가량의 운전이 필요했고, 문제는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차가 없고 운전을 못해서, 운전을 하는 다른 이가 그것을 원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왕복 세 시간의 운전은 조금 피곤할 것 같다 하여, 이 첫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변 하이킹 갈만한 곳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두어 시간 지나도록 우리는 숙소에서 그대로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아무것도 안될 것 같아, 다들 한 마음으로 점심만 잘 챙겨 먹고 떠나자라고 정했다. 냉장고에 있는 첫날 남은 파스타, 전날 저녁에 먹다 남긴 하끌렛을 또 준비하여 남은 음식들로 배를 채웠다. 그런 후, 옷을 챙겨 입고 숙소를 나섰다.

차를 타고 15분가량 달렸을 까, 어느 산 옆의 주차장에 도달했다. 주차장에서부터 앞에서 나서는 친구들이 지도를 보며 길을 안내했고 난 맨 뒤에서 그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난 요즘 정말이지 운동과는 담을 쌓고 있다. 운동을 전혀 안 하고 있다. 이미 10분 뒤부터 나는 그만 걷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나마 초반에는 오르막길이 없었기에 그나마 괜찮았지만, 점점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어딘지도 모르겠고, 가파른 길에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했다. 그나마 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않아 다행이었다.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쯤에 폭포를 발견했다. 모두 함께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기록으로 남겼다. 계속해서 걸어간다. 산속 깊이 들어가니 햇빛이 들지 않아서인지 눈이 얼어있는 곳들도 있었다. 난 이런 길에 매우 취약한다. 정말이지 그만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힘들어하는 다른 동료도 계속해서 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만 그만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중간중간 정말 예쁜 곳들도 있었다. 다만 나는 자연을 그다지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라, (난 인간의 발명품들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한 5분이면 충분했다. 이 짧은 시간을 위해 이 힘든 시간을 건너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숲 속을 거닐며 자연을 만끽하니 개운함도 느껴지고 상쾌하기는 했다. 하지만 운동부족의 나에겐 조금 힘들어서 온전히 느끼기엔 체력적 한계가 문제였다. 그렇게 3시간 정도의 하이킹을 마치고 차가 주차된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가 어찌나 반갑덥지.

마지막 밤이 남아있는데, 전날 술들이 거의 끝났었기에 사람들이 마트에 들러서 장을 좀 보자고 했다. 장을 보러 가서 다들 술을 어마어마하게 사기 시작했다. 우리 연구실의 로고색이 주황색이다. 그래서 그 주황색과 동일한 Aperol Spritz를 우리는 우리 그룹 음료라고 장난 삼아 부르곤 한다. 그걸 좋아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서, 이 음료를 만들기 위해, 아 페로와 이탈리안 스파클링 와인인 프로세코를 골랐다. 1:1로 섞거나 1:2로 섞는 듯했다. 그러고 맥주를 좋아하는 친구는 맥주를 한가득 들고 오더라. 그러면서 누군가는 와인이 좋으니 와인도 들고 오더라. 과일도 사고 칩도 사고, 장바구니가 한가득이 되었다. 누군가는 술이 너무 많지 않냐 했다. 마지막 날이고 내일 또 4~5시간 운전을 해야 하는데, 숙취상태로 운전은 아니지 않냐는 거다. 그래도 다들 마시고 남으면 가져가면 된다고 하여 많은 술을 그대로 사들고 숙소로 향했다.


이날 저녁은 나와 3명의 동료들이 준비하는 팟타이였다. 사람들이 팟타이라는 메뉴 자체에 꽤나 관심을 보였다. 내가 아시아마켓에서 장을 봐온 넉넉한 쌀국수, 집에서 미리 만들어온 소스, 그 외에는 몇 가지 채소만 정돈해서 함께 볶으면 끝이었다. 가장 문제라면 14명을 위한 양을 계속해서 볶고, 볶으면서 음식을 따뜻하게 유지하고 모두 한 번에 서빙하는 거였다. 사람들은 아 페로를 마시면서 소 씨 송 (소시지), 감자칩, 팝콘들을 먹으며 게임도 하고 대화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우리 그룹 사람들과 우리는 요리를 시작했다. 우리 목표는 한 시간 안에 요리를 마치는 거였다. 채소 다듬고 썰어야 할 것 들을 선보이고 하라고 시켰다. 어차피 볶는 건 내가 혼자 해야 할 게 조금 분명했어서, 그들도 참여했다는 느낌을 느끼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양파를 자르고, 부추를 자르고, 숙주를 씻고, 닭가슴살을 자르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베지테리안을 위해 유부도 잘라 모두 준비했다. 내가 먼저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닭고기를 볶다가 익으면 양파를 넣고 볶은 후에 계란을 스크램블 에그로 만들어주고, 물에 불려둔 누들을 넣고, 소스를 넣고 볶아 익혀주고는 부추와 숙주를 넣고 마무리를 했다. 맨 처음 만든 것을 맛을 보게 하니 “나는 진짜 딱 좋은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울 것 같아”라고 하더라. 그래서 결국 소스를 반만 넣기로 하고 소금 간을 하고, 추가 매콤함을 원한다면 직접 소스를 추가하도록 소스를 같이 서빙하기로 했다. 그렇게 세 번에 나눠 누들을 잔뜩 볶아내고, 마지막으로 베지테리안을 위한 누들까지 완성했다.  큰 볼 네 개에 누들을 모두 담아 테이블 위해 두고, 토핑으로 다진 고수와 땅콩, 그리고 라임, 튀김 양파를 준비해 뒀다. 식사 준비가 끝났다. 사람들을 테이블로 불러 모은다.

사람들이 맛을 보기 전까지 나는 긴장감에 입맛조차 없었던 것 같다. 다들 어떤 반응일지 몰라서이다. 적은 양을 볶는다면 훨씬 잘 볶을 수 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조금 오버쿡이 된 느낌도 있고, 평소에 내가 넣는 소스의 양만큼 충분히 넣지 못하고 소금으로 간을 맞춰 감칠맛도 조금 부족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다들 굉장히 잘 먹더라.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척 추켜올렸고, 더 매운맛을 보겠다며 소스를 추가하기도 하고, 내가 준비한 토핑들을 모두 잘 곁들여 먹더라. 내 옆자리의 정규직 직원은 오늘 저녁이 팟타이라 하길래 되게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킨다며 만족해했고, 내 앞자리의 보스는 내게 “팟타이 퀸이구나”라고도 했다. 다들 매운맛도 챌린지처럼 시도하며 즐겼다. 각자가 입맛에 따라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 게 좋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식사가 성공적으로 마쳐지고, 준비한 요리가 정말 거의 다 바닥을 보였다. 뿌듯했다. 적어도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는 내 평판이 유지될 순 있을 것 같았다. 상을 모두 치우고, 마켓에서 사 온 디저트를 먹으며 생일인 친구를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후에는 마트에서 사 왔던 와인, 맥주 등의 술을 마시며 놀다가, 동료들이 비어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대체 비어퐁이 뭐가 재밌다는 지 모르겠지만, 같이 어울린다며 한 두 판은 함께 했다. 하지만 난 영 즐겁지가 않더라. 그들은 비어퐁을 신난다고 계속하며 즐기고, 카드게임들도 하더라. 카드게임이지 사실상 보드게임 같은 게임들이었다. 나는 그냥 술을 마시며 대화하고 그런 자리를 좋아하는데 어린 친구들이 많아서 그들은 액티비티를 좋아한다. 그렇게 마지막 날 밤이 깊어갔다.


Day4- 마지막 날, 다시 보스의 차를 타고 4시간을 달리다.

마지막 날은 바빴다. 오전 11시까지 모두 비우기로 집주인과 약속을 해두었기에, 대부분 8시 이후 느지막이 일어나니 서둘러 아침을 먹고는 모두 치워야 했다. 프랑스에 와서 지내며 알게 된 것은 한국에서 펜션을 쓴 후 정리하는 정도가 아니란 거다. 이곳은 처음 왔을 때와 거의 똑같은 상태로 정리를 해둔다. 쓰레기도 모두 쓰리게장 같은 곳에 갖다 버려야 한다. 바닥까지 쓸고 모두 깨끗한 상태를 만든다. 화장실의 쓰레기통도 비운다. 한국의 기준과 다르다. 이 사람들에게는 이게 당연한 거더라. 그래서 종종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서 에어비앤비를 쓰고, “더러운 게스트”라고 집주인이 후기를 쓰기도 하는 것 같다. 그들이 요구하는 청소의 정도와, 한국에서 떠나기 전 청소 정도의 기준이 다른 것 같았다. 이 숙소는 모르겠지만, 에어비앤비의 경우 청소비도 받으면서 이런 청소 정도를 요구한다는 게 조금 이상하고 웃기기는 하다. 뭐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다.


모두 정리를 마치고, 남은 음식들도 가져갈 것 버릴 것을 나누며 전부 정리했다. 돌아갈 때는, 보스의 차에 보스 외에도 No.2도 타야 하기 때문에 자리가 부족해졌다. 결국 내가 그들과 함께 가게 되었다. 진짜 맘 속으로 착잡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타고 조용히 가자고 생각했다. 차를 타고 떠나면서, 나는 정말 1시간 동안 두어 마디 한 것 같다. 졸지 않으려 했지만 존 게 아니라 거의 잔 것 같다. 서로가 모두 어색한 차 안에서의 4시간을 거쳐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했다. 기차역 근처에서 내가 트램 타고 갈 수 있도록 내려주며 인사를 했다. 여기서 더 30분의 트램을 타고 집에 가야 했다. 집까지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긴장감과 불편함에 몸이 피로감을 느낀 것 같다. 집에 도착하니 피곤해서 빨래만 돌려두고는 그대로 뻗어버렸다.


연구실 동료들을 평일 매일 만나지만, 이들과 이렇게 오래 같이 있어본 적은 없었다.  마냥 즐거웠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스키장 근처까지 갔지만, 스키는 타지 않았고 혼자만의 휴식을 즐겼다. 함께 하이킹을 했고 각 그룹이 만든 음식들을 즐기는 시간을 보냈고 많은 술을 마셨다. (한국처럼 취하게 마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각 그룹의 요리 중 무엇이 베스트였냐는 질문에 내 팟타이가 1등이 됐다. 뿌듯함은 남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한데 모여 즐겁게 노는 게임들이 대부분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라 그들처럼 즐기는 게 어려웠다. 이럴 때면 군중 속에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나도 그들처럼 즐길 수 있으면 삶이 더 편안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난 그냥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래도 끝까지 그들과 지내고 집까지 무사히 돌아왔다. 프랑스에서 하나의 경험을 더 한 거다. 그걸로 만족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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