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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Feb 27. 2024

프랑스인들과 설날 맞이 비빔밥!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한글학교에서는 설날과 추석에 행사를 한다. 사람들과 함께 한국의 명절을 함께 축하하는 자리를 갖는 거다. 주로 사물놀이 공연이나, 설날의 경우 어린 학생들이 부모님에게 세배하는 자리를 갖는다거나 이런 문화행사와 음식을 같이 준비하여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갖곤 한다. 그렇기에 매번 이런 행사 전에는 한글학교 선생님들끼리 이번엔 어떤 음식을 준비하는 게 좋을지 매번 한참을 고민하곤 한다. 이번에도 선생님들이 이런저런 의견들을 냈는데, 우리가 고려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학교의 강당에서 요리를 하는데 전기사용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전년도 설날에 떡국과 만두를 빚어 만두를 찌기로 했는데, 전기가 약해 물이 제대로 끓지 않아 모든 게 힘겹게 진행되었었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끓이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전이었다. 명절이란 콘셉트에도 잘 맞고, 함께 만들고 함께 부쳐먹으면 좋지 않겠냐는 거였다.  


그렇게 메뉴가 정해졌는데, 나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제 곧 떠나는데, 뭔가 내가 여기 사람들을 위해 선물로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고민하여 생각한 것이 비빔밥이었다. 내가 비빔밥을 준비해 간다고 말하자. 그러자 비빔밥 좋은 생각이라고, 하지만 혼자 준비하시긴 힘들 테니 함께 준비하자고 하더라. 사람들은 가끔 친절함에 내가 원하는 것을 놓치곤 한다. 나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힘들지 않다. 나에게는 여러 명을 위한 요리를 준비하는 것들이 재미이고 성취감을 준다. 그런데 걱정해 주는 마음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기에 알았다며 함께 나눠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누고 나누니 내가 할 일이 그다지 많지도 않더라. 괜히 내가 비빔밥 얘기를 꺼내서, 선생님들만 고생스럽게 뭔가를 더 준비하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설날이 되었다. 내가 가져갈 것은 양념고추장, 간장소스, 무생채, 소고기뭇국, 무나물 정도였다. 설날 행사를 하는 강당에 가서 먼저 테이블들을 세팅하고, 선생님들이 도착하는 대로 음식 재료들을 꺼내두면, 한쪽에 비빔밥을 위한 세팅을- 다른 한쪽에는 전을 위한 세팅을 했다. 비빔밥 재료는 다양하게 준비되었다. 먼저 시금치나물, 버섯나물, 소고기볶음, 당근볶음, 무나물, 계란지단, 호박나물, 숙주나물, 무생채가 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나눠서 준비해 온 밥들이 있어서 밥도 한 곳에 모아두었다. 그릇 하나에 비빔밥 하나를 세팅하여 이렇게 챙겨가서 먹으라고 안내가 되도록 준비했다. 어느 정도 세팅이 끝나기 전에 나는 먼저 자리를 잠시 떠야 했다. 행사 시작을 알리는 사물놀이 공연에 참여하기 때문이었다.  


연습실로 가서, 사물놀이 동료들과 두어 번 마지막 리허설을 했다. 나는 장구를 담당하고 있다. 두어 번 하면서도 계속 틀려서, 아 공연에도 틀리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난 생각보다 무대에서 떨지 않는 사람이다. 담담하게 무대에 올라갔고, 연습부족으로 실수를 했지만 공연자체의 분위기는 꽤나 좋게 흘러갔다. 사람들의 박수가 울려 퍼졌고, 그렇게 무대에서 내려온 후 나는 다시 비빔밥과 전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해졌다.  

전은 세 종류를 하기로 했다. 동그랑땡, 호박전, 두부 전이 전부이다. 동그랑땡이 가장 복잡하다며 나에게 부탁을 하더라. 그래서 내가 동그랑땡을 맡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전 아뜰리에가 있다고 안내를 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보다는 비빔밥에 관심을 갖고는 비빔밥 쪽으로 가서 음식을 챙겨다 먹기 시작하더라. 식전메뉴로 한 선생님이 준비해 온 김부각도 아주 인기였다. 그렇게 대부분은 먹고, 일부 사람들은 전을 만드는 곳에 와서 관심을 보였다. 동그랑땡을 위해서는 두부도 으깨고, 당근도 다지도, 마늘, 파도 다져야 했다. 사람들에게 참여하도록 직접 다지도록 했다. 그렇게 다진 재료들은 돼지고기 다짐육과 섞고,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마쳤다. 이제 전을 부쳐야 하는데, 전기가 갑자기 다 나갔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잠시 기다려야 한다고, 기다리는 동안 비빔밥 코너에 가서 비빔밥을 먹으라고 안내를 하여 사람들이 다시 떠나갔다. 전 아뜰리에는 전혀 성공적이지 않았다. 전기가 다시 들어왔지만 일부 사람들 5명 이하만 끝까지 전하는 곳에 있었다. 한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는 프랑스 아이 하나가 가정 열정적이었다. 호박전도 끝가지 혼자 다 부치고, 동그랑땡 부치는데도 아주 열심히더라. 재밌는 모양이었다. 좋은 일꾼이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동그랑땡을 부치는데 계란이 부족하여, 남은 것들에 간장, 설탕, 참기름을 넣어 떡갈비스럽게 만들어 추가로 부쳐냈다. 사람들이 이게 더 맛있다고 했다. 맛있게 동그랑땡이 완성되었지만, 아마 한 20명 정도만 맛을 본 것 같다. (총 80명이 넘는 사람들이 왔었다.) 안타까웠다. 항상 전기가 문제였다.  

그래도 예상보다 많은 80여 명의 사람이 있었는데, 음식들이 부족함이 없었고, 내가 맛을 봐도 맛이 다 괜찮았다. (선생님들에게 재료 손질과 양념까지 사실 다 안내하긴 했으니, 내 입맛에 맞게 모든 것을 준비한 편이었다. 그래서 내 입맛에 맞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참가했고, 일단 모두가 배부르게 먹고 떠났다는 점에서는 성공이라 하겠다. 하지만 메인인 전 아뜰리에가 전혀 메인이 되지 못했고, 내 제안으로 어쩌다 준비한 비빔밥이 이날의 메인이 되어버렸다. 나의 마지막 한글학교 단체 행사였는데, 뜻대로 모든 게 진행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삶이란 내 뜻대로 모두 다 풀리는 게 아닌걸… 그저 사고 없이 잘 마무리했음에 감사하고 더 나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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