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나를 세상으로 끌어내 준 사람들이 있었고,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어느 새벽의 기록.
유튜브에서 남매아티스트의 인터뷰를 보았다. 누구나 설명만 들으면 바로 아! 하고 알만한 그들인데. 최근 몇 년, 동생이 우울증이 심했던 모양이다. 우울증으로 폭식도 잦아지며 급격한 체중 증가도 있었고, 노래하는 것까지 즐겁지 않았다더라. 그렇게 세상을 등지고 방에서 혼자 히키코모리처럼 지내가며, 가족들이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만나는 것도 꺼려졌었다더라. 괜히 걱정만 끼칠 거란 생각에서 말이다.
나 또한 그랬다. 지금도 우울이 조금 올 때는, 가족들과 연락을 잘 하지 않는다. 나를 걱정하는 맘을 아니까, 차라리 그들을 모르게 하고 싶었다. 우울이 심했던 예전은 거의 잠수타듯 연락을 하지 않곤 했었다. 그런데 그 시절의 기억이 엄마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은 모양이다. 그 옛날 모든 연락을 거부하던 시절 내가 좋지 않았던 것을 아는 나의 엄마는- 내가 연락이 잘 되지 않는 순간, 나의 의도와 다르게 내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는 걱정되는 맘으로 나의 언니에게 연락을 하신다. 나 괜찮으냐고 말이다. (언니가 알리가 없는데) 그러면 언니가 내게 계속해서 연락하기 시작한다. 계속 연락이 오면, 아직 완전히 우울상태로 넘어가지 않았기에 마지못해 그 연락을 받으며- 나는 조금 더 힘을 내고 다시 세상으로 나간다.
동생은 그런 자신에게 오빠가 다가와 파묻힌 자신을 헤집어서 끌어냈다고 했다. 함께 살자고 제안하며, 생활습관부터 함께하며 동생을 보살폈다고 했다. 그 후 나온 오빠의 인터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다가, 먼 미래에 동생이 자신에게 "왜 그때 날 가만히 뒀어?"라는 원망의 소리를 할 것 같았다고 하더라. 그 미래를 먼저 보고 나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에게는 언니가 그러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글을 썼던 내용이다. 내가 우울증으로 휴학을 하고, 언니, 오빠와 함께 살던 시절이다. 나는 방에서 누워만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저 잠을 통해 세상을 벗어나고 싶었다. 잠에 든 순간에는 세상에서 살아있는 것 같지 않으니- 그 단절이 좋았다.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해서 다시 깨어나는 것이 싫었다. 그런 나를 언니는 방문을 열고, "야 얼른 옷 갈아입어."라며 나를 다그쳐 일으켰다. 내가 싫어해도 끝까지 지긋지긋할 정도로 닦달하여 마지못해 옷을 갈아입고는 며칠 만에 밖으로 나가곤 했다. 언니도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그 당시 남자친구가 있어 서로 데이트하기도 바빴을 거다. 나를 일일이 챙기기 어려웠을 텐데, 언니는 나를 데이트에 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영화관에 자주 갔는데, 언니가 가운데 앉고 양옆으로 나와 언니의 남자친구가 앉았다. 언니의 남자친구와 난 친하지도 않았다. 서로 낯가림이 심해, 마주치면 고개만 꾸벅 서로 인사만 나눌 뿐이었다.
그 당시 영화관에서 언니의 옆에서 봤던 영화 중 기억에 남는 게 힛걸이 나왔던 영화 [킥애스]였다. 처음에 포스터를 보고, 울적한 기분 속에 '내가 이런 걸 왜 봐야 하지...'란 생각이었는데, 그 영화가 재밌었다. 그렇게 언니는 나를 데리고 맛있는 곳도, 재미난 곳도 데려갔다. 점점 언니가 옷 갈아입으라 하면- 전보다 빠르게 갈아입었고 함께 나갔다. 계속해서 자기만 하던 잠은 점점 줄었고, 집에서 홈트레이닝으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대략 5kg 정도 감량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병원도 다니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큰 힘이 된 것은 나를 다시 세상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내가 나의 세상 속에 잠식되지 않게 나를 헤집어 끄집어낸 나의 언니 덕분이다.
이런 기억 속에서, 우리가 꼭 가족만이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 휴학을 한 내게 꾸준히 연락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전화를 받기 싫어 몇 번은 피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 친구는 꾸준히 연락을 해왔다. 나는 '우리가 그 정도로 친한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 친구는 "잘 지내? 다음 학기 복학할 거지?"라며 그저 안부를 물을 뿐이었다. 언니 덕분에 나아지면서, 나는 다음 학기에 복학을 했고- 그 친구는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쩐지 그 친구와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 친구들이 모여있는 단톡방 속에서 존재감이 컸던 친구였는데- 어쩐지 요즘은 나타나질 않는다. 조용히 우리의 메시지들을 확인만 할 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언가 자신의 삶 속에서 어려움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예상만 할 뿐이다. 나는 겁쟁이라, 그 친구에게 부담이 될까 하는 생각에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있다. 문득, 이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 우울이 심하던 때에 연락이 오는 것이 싫었다. 그 친구도 혹시 그때의 나와 같은 상태라면 전화받기 싫을 테니까-란 마음으로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럼에도 내게 닿으려 애쓰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해 주었다. 그게 지금도 난 기억에 남아있다. 그 친구에게 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귀찮게 전화를 계속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다고. 그건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를 가만히 두는 것이 배려일까, 다가가는 것이 사랑일까
나에게 다가와주었던 친구다.
어쩌면 지금은 내게 다가가야 할 차례인 것만 같다.
그냥 괜찮게 되기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될 것 같다.
남매그룹의 오빠가 동생과의 먼 미래를 상상으로 경험하고,
괜찮다고 생각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했다.
자신은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오늘 해가 뜨면, 무심하게- 아무 일 없는 듯, 인사를 할까 보다.
엄마가 있는 내 고향이 쭈꾸미가 유명한데, 어쩐지 그 친구에게 무심하게
"쭈꾸미 좋아해?"라고 묻고는- 쭈꾸미를 보내줄까 보다.
모닝페이지의 기록
아무래도 요즘 어려움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때 내게 해주었던 그런 관심과 사랑을 기억하고 있으면서도-그저... 불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핑계 삼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괜찮아지면 돌아올 거라 생각하며 말이다. 이게 맞는 걸까? (2026.04.02. 모닝페이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