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One Time Bestseller

넬 (NELL)

by someformoflove

유진은 창밖으로 뻗은 겨울 하늘을 바라보며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미지근해진 커피의 온도는 어쩐지 그녀의 마음 같았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저 무심하게 식어가는 온기. 그녀의 맞은편에는 준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유진을 보지 않았다. 대신 앞에 놓인 잔을 지긋이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아니, 어쩌면 둘 사이의 마지막 만남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을 거면 왜 보자고 했어?”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흔들림이 스며 있었다. 준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때 자신을 가장 이해해 주던 사람의 얼굴이 이제는 낯설게 느껴졌다.


“유진아, 우리 정말 여기까지 일까?” 준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그는 여전히 희미한 가능성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유진은 이미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준, 우린 너무 멀리 와버렸어.” 그녀는 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처음엔 서로에게 전부였던 우리가, 지금은 서로를 지치게 하고 상처만 주고 있어.”


그들은 한때 누구보다도 뜨겁게 사랑했다. 함께한 시간은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베스트셀러 같았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빠르게 펼쳐진 사건들, 숨 막히게 설렜던 장면들, 그리고 가슴 아리던 갈등까지. 하지만 그 베스트셀러의 이야기는 지금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차이가 사랑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준의 거침없는 성격은 유진의 안정감을 흔들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었고, 유진의 조용한 깊이는 준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차이는 점점 골이 되어 갔다. 준은 유진의 침착함이 자신을 밀어내는 듯 느껴졌고, 유진은 준의 열정이 자신의 감정을 깎아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 우리 둘이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지친 한숨이 섞여 있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우린 서로에게서 도망치고 있더라.”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느끼고 있었다.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애쓸수록, 그들은 서로를 더 멀리 밀어내고 있었다. “처음엔 우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어. 이런 사랑은 누구도 못 할 거라고.” 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속삭였다. “근데 지금은 우리가 그저 흔한 결말로 향하는 게 아닐까 싶어.”


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그녀를 다시 붙잡을 힘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도 알잖아. 우리 노력 많이 했어.” 유진이 말했다. “하지만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그럼 우린 여기서 끝내는 게 맞는 거야?” 준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는 그 질문의 답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유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이야기는 정말 아름다웠어. 한때는 나한테 전부였고, 앞으로도 기억 속에서 그렇게 남아 있을 거야.” 그녀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도 언젠가 마지막 장을 넘겨야 하잖아.”


준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시선을 돌렸다. 창밖에서는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유진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들의 시간은 순간이었고, 그 순간은 더 이상 영원이 될 수 없었다.


카페를 나서며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마지막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사랑의 흔적을 간직한 인사였다. 유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준은 그녀가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다.


“우린 정말 끝인가…”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유진은 멈추지 않았고, 준도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은 이렇게 끝이 났다. 수많은 웃음과 눈물로 가득했던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한 편의 수필처럼 기억의 책장 속 어딘가에 자리 잡았다. 시간이 흘러 먼지가 쌓이겠지만, 그들은 언젠가 그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날 이후, 준과 유진의 길은 완전히 갈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한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베스트셀러의 마지막 장은 비록 닫혔지만, 그 여운은 그들 각자의 삶에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keyword
이전 21화밤,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