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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이승철 (Prod. by 이찬혁 of AKMU)

by someformoflove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얇은 빗줄기 사이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작은 우산 아래에서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꺼내는 순간, 우리 사이의 마지막 끈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울렸다. 우리의 공간을 덮고 있는 침묵을 찢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것은 슬픔도, 원망도 아닌, 그저 지친 체념이었다.


“우린,”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우린 사랑했죠.’

그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사실이 너무나 아팠다. 사랑했다는 과거형. 사랑하고 있다는 현재형이 아닌, 사랑할 수 없다는 미래형으로 남아버린 우리.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을 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순간, 고개를 돌린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거리와 흐려진 하늘, 그리고 멀리 사라져 가는 빗방울들뿐이었다. 그것이 우리였다. 한때는 가득 차 있었지만 이제는 텅 비어버린 무언가.


“그만하자.”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너무 조용해서, 나는 그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이미 그 말이 반복되고 있었다.


“너도 알잖아.”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빗방울이 우산 가장자리를 타고 떨어졌다. 그녀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붙잡는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우린,”

내가 말을 꺼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을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린 사랑했어, 우린 노력했어, 우린 행복했어. 모든 말들이 머릿속을 떠다녔지만, 어느 것도 현실과 맞닿아 있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한 걸음 다가갔다.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였지만, 그 손끝에서 느껴지는 것은 차가운 공기뿐이었다. 그녀는 한 걸음 물러섰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신호였다.


‘우리가 잊지 못하는 건 서로가 아니라 추억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와 나,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추억들은 점점 우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추억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우리가 이별을 견뎌야 하는 이유는, 더 이상 서로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나는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멈췄다. 빗방울이 더 굵어지고, 그녀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그녀가 돌아섰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우산 아래의 작은 실루엣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비가 점점 더 세차게 내렸다.


‘우린 사랑했어.’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무거운 침묵과 젖은 바람뿐이었다.


우리가 견뎌야 하는 것은 서로가 아니라, 이별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별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사랑했던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고통스러운 약속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가면서도 사랑했던 사람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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